90년생 '태권 트롯맨' 나태주 "하루 2시간밖에 못 자지만.."

조회수 2020. 7. 14. 10: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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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나태주’를 검색하면 ‘풀꽃’이란 시로 유명한 시인이 가장 상단에 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청년 트롯 가수의 프로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1990년생으로 21년째 태권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9세에 태권도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했다. 2010년에는 영화 ‘히어로’로 스크린에 데뷔하기도 했다. 


이후 ‘더 킥’(2011)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고, 2015년 개봉된 휴 잭맨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팬’으로 해외에 진출한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올 들어 ‘미스터트롯’ 출연을 계기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사진=박해윤 기자

-트롯 가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스터트롯’ 출연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태주만을 사랑해주는 팬들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무도인을 넘어 내가 원하던 꿈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 일정이 빡빡해 잠잘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돼 너무도 기쁘다.”


-이제는 나태주 하면 트롯 가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래전 네이버에 프로필이 등록됐는데 내 이름을 치면 항상 나태주 시인이 먼저 떴다. 그렇게 저명한 시인에게서 영광스럽게도 먼저 연락이 왔다. ‘늘 응원하고 있다. 같은 나씨로서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얼굴도 꼭 보자’고 하셨다. 최근 발간된 시집도 3권이나 보내주셨다.”

-무도인이면서 배우이고 가수이기도 하다.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태권도로 김연아, 손연재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 첫 번째, 이소령처럼 마샬 아트적인 면을 가진 배우가 되는 것이 두 번째 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간직한 꿈이 트롯 가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트롯 가수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소속사(K타이거즈)에 태권도 시범단으로 들어간 것이 14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때인데 19살이 지나면서 대표님에게 처음으로 한 간청이 ‘트롯 앨범을 내주십시오’였다.”


-1990년생이 어떻게 트롯을 좋아하게 됐나.


“아버지가 노래 좀 하신다. 고모 여섯 분 가운데 트롯 봉사 공연을 하는 분도 있다. 그 영향으로 생활 속에서 댄스나 발라드보다 트롯과 스킨십이 더 많았다. 부모님의 유전자도 한몫했을 거다. 전라도 분들이라 뽕짝 특유의 꺾기가 유연한 편이다.”


-트롯 가수가 된 데는 ‘미스터트롯’에 함께 출연했던 장민호 씨의 영향도 있었다고 들었다.


“민호 형과는 9년 전 연예인 봉사단 컴패션으로 인연을 맺었다. 차인표 선배님도 활동을 함께했다. 어느 날 봉사 공연을 하던 중 트롯 한번 불러보고 싶어 양해를 구하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민호 형이 ‘트롯에 소질이 있다. 형이 도와줄 테니 마음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당시 형은 트롯 가수로 막 데뷔할 준비를 하던 터였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다 소속사의 권유를 따랐다. 


민호 형처럼 그 무렵 데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그런 감정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선물을 이번에 받은 것 같다. 인내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사진=박해윤 기자

-태권도 시범단과 배우 활동을 겸하면서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있나.


“태권도 종주국임에도 태권도인에게 주어지는 달란트나 일자리가 많이 부족하다 보니 유명한 팀에 들어가지 않는 한 보상이 열악했다. 부상도 잦았고 내가 앞으로 이 이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선수 생활을 빨리 접으려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수입도 비수기, 성수기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배우로 데뷔해 쉽게 ‘알바’를 구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버스비가 없어 운동하러 못 간 적도 많다. 다 커서 집에다 손 벌리기엔 눈치가 보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무엇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견뎠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나중엔 빛이 조금이라도 비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태권도가 큰 버팀목이 됐다. 남는 시간에 운동하고 후배들 육성하며 잘 견뎌냈다.”

사진=박해윤 기자

-잠이 부족하진 않나.


“하루 2시간 정도 자는 것 같다. 매일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오늘도 2시간 자고 왔다. 거의 못 쉬기 때문에 차로 이동할 때 쪽잠을 잔다. 집보다 차가 좋다. 하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신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팬들이 촬영현장에서 보내주는 응원 함성과 팬카페에 올리는 응원 글이다. 그 덕분에 모든 일정을 즐겁게 소화하고 있다. 팬카페에 종종 들어가 팬들이 올린 글을 본다. 팬카페 이름이 ‘날개 달린 태권트롯맨’이다. 날개 달고 훨훨 날라는 의미다. 거기에 1분마다 글이 올라올 정도로 사랑을 듬뿍 주셔서 많이 웃는다. 나도 팬카페의 ‘태주가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한다.”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선물은?


“팬들이 보내준 모든 선물이 다 소중하고 감동적이지만 특히 손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 하나하나를 다 읽어본다. 팬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먹먹하다. 예전에 여자친구에게 손편지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과 감동이 밀려온다.”


-살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다. 그때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좌우명이 있나.


“태권도를 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은 ‘겸손하자’와 어떤 순간에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밝고 건강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또 그런 반응이 선순환을 일으켜 늘 몸과 정신에 ‘겸손’과 ‘긍정’ 에너지가 배어있게 하는 것 같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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