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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굶어 죽는다" 관광천국 유럽도 속수무책

조회수 2020. 5. 22. 18: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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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마을’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생의 막바지인 1890년 5월 정신질환이 악화돼 요양차 이 마을에 온 고흐는 죽기 전까지 70일 간 70여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하숙집, 시청, 교회, 밀밭… 마을 곳곳에 고흐의 유명한 그림 속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에 매년 30만 여 명이 찾아옵니다.

5월 13일 찾아간 오베르쉬르우아즈는 썰렁했습니다. 평소라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마을 전체가 쥐죽은 듯 고요하고, 고흐의 그림으로 유명한 시청 앞 광장도 텅 비었습니다.


광장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마을주민 루헝 씨(41)는 생면부지의 기자에게 다짜고짜 하소연부터 했습니다. 


“식당을 운영해왔는데 요즘 할 일이 전혀 없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15개 식당 모두 마찬가지예요. 정부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아직 안 나왔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코로나 피하려다 굶어 죽을 판”

지금 전 유럽의 주요 관광지들은 모두 비슷한 상황입니다. 내국인과 해외 관광객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3월부터 국경을 닫고 자국민 이동제한령을 발령했기 때문입니다.


경제 악화가 심각해지자 유럽 각국은 5월 중순부터 씨가 마른 여행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 이탈리아: 6월 3일부터 해외 관광객 입국 허용

- EU 외교장관들: 점진적으로 역내 관광 재개 선언

- 터키: 20일부터 영국, 네덜란드 등 31개국 여행객 입국 허용

- 독일: 25일부터 국경 맞닿은 프랑스, 오스트리아와의 이동제한 점진적 해제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상황, 섣부른 개방이 위험하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20일 기준 러시아와 스페인 확진자는 각각 30만 명에 육박합니다.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각각 20만 명이 넘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터키에서도 모두 15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각국이 봉쇄를 풀려는 건 ‘돈’ 때문입니다. 2018년 기준 세계 관광객 14억 100만 명 중 절반인 7억 1000만 명이 유럽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전 세계적 관광객 수 자체가 3~4억 명으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추정됩니다.


프랑스는 최근 국내 호텔의 95%가 문을 닫는 등 관광산업 연쇄도산이 가시화하자 관광업에 총 180억 유로(약 24조2000억 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영국 역시 올해 해외 관광객이 54% 줄어 관광수입이 15억 파운드(약 2조26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자 대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연간 약 8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스페인은 관광업 타격 여파로 올해 초 14%였던 실업률이 남유럽 재정위기 후폭풍이 거셌던 2012년(27%) 수준까지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고용의 20%를 관광업에 의존하는 그리스가 16일부터 전국 해수욕장 5000여 곳을 개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무리하게 여행제한을 해제해도 관광산업 정상화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봉쇄령을 해제해도 여행 중 감염될 수 있다는 관광객들의 우려가 상당해 관광업 회복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전염병 시대, 여행업의 미래는?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유럽연합 인구의 60%인 약 2억 7000만 명이 연 1회 이상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1개월 이상의 긴 여름휴가가 이들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여행, 특히 여름휴가는 힘든 일상을 견디게 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파리 15구에 사는 헤이몬드 씨(44)는 “유럽인들은 1년 내내 여름휴가 생각만 하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올해 휴가를 다녀오면 곧바로 내년 여름휴가 계획을 짠다. 그것이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행하는 낙으로 살았던 유럽인들, 이제는 어디서 즐거움을 찾아야 할까요. 르몽드는 항공을 통한 해외여행이 아닌 국내 야간열차 여행, 자전거 여행 등 일상 속 짧은 여행을 즐기는 ‘마이크로 어드벤처(micro-adventure)’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프랑스인 장 폴 씨는 “올해 스페인에 놀러갈 계획을 포기했다. 집 근처에서 자전거 타기, 산책, 낚시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게임을 통한 가상여행 콘텐츠도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4일 영국관광청은 온라인에서 영국의 유명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히 이번 사태가 과도하게 많은 관광객이 특정 장소에만 몰리거나, 문화유적지에서도 소셜미디어용 사진만 찍어대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폐해를 상당 부분 줄여줄 것이란 기대도 나옵니다. 환경 훼손 및 거주민 피해도 대폭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변화는 비단 유럽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미 CNN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관광의 형태를 영원히 바꾸거나, 더 나은 관광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느리고 사려 깊은 관광, 지역 사회와 거주민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관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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