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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상사는 안 변하더라" 밀레니얼 세대 대리들의 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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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비상의 언덕배기에 있는 직급이 대리다. 근속연수로는 4~8년, 연령대로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사이의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이 언덕배기에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다. 대기업 계열 헬스앤드뷰티(H&B) 업체 6년차 직장인 홍희정(가명·29) 씨도 대리가 돼서야 비로소 생존의 문법을 익혔다.


“사원일 때는 수동적으로 진행되는 업무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회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불만이 강했어요. 대리가 되니 책임이 주어졌고, 업무 설계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방향성 없이 일하던 사원 때와 달리 경영진이 원하는 바를 더 정확히 확인해 성과와 퍼포먼스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출처[동아DB]

산업화 시대건 4차 산업혁명 시대건 대리가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다. B2C(Business to Consumer)건 B2B(Business to Business)건 기업 현장에서 고객을 가장 많이 접촉하는 사람은 대리다. 현장에서 뛰는 대리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오고, 거기서 신제품·신사업이 잉태한다.


홍 대리는 “실무에 있어 가장 날카롭게 촉이 서 있고, 예민하며, 말단의 비효율까지 인지하고 있는 직급이 대리”라고 표현했다. 대리는 회사의 중추신경이다. 

직장 생활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tvN 제공]

대리로 승진하기까지 혼란과 방황이 없었을 리 없다. 컨벤션(convention) 기획업체 7년차 직장인 유선혜(가명·32) 대리는 입사 초 빈번히 번민에 휩싸였다. 입사 동기 5명 중 3명이 반년 안에 퇴사했기 때문이다. 동기들은 입사 뒷날부터 불합리와 부당을 말하다 사원증을 반납했고, 결국 남은 사람이 소수자가 됐다.


“과장, 차장 등 실무급에 있는 선배들은 오히려 나간 동기들을 두고 ‘차라리 일찍 진로 선택 잘했다’고 했어요. 그럼 남은 사람은 뭐가 돼요? 팀장과 본부장은 남은 사람을 따로 불러 밥을 사주면서 ‘잘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혼란스러웠어요. 의지가 생기기는커녕, 내가 잘못 살고 있나 싶었습니다. 나간 사람은 소신껏 제 갈 길을 현명히 택한 사람이 되고, 남은 사람은 윗사람의 ‘감언이설’에 속아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취급받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이혁진, ‘누운 배’ 중)
“밀레니얼, 점심 따로 먹는 게 익숙한 세대”

밀레니얼 세대는 ‘집단 vs 개인’ 구도에서 후자에 무게중심을 둔다. 호봉제는 연봉제로 바뀌었지만 불만 따위는 없다. 중견 건설업체 7년차 직장인 배세희(가명·31) 대리는 “본인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에 걸맞은 직급과 연봉을 받을 뿐”이라고 ‘쿨’하게 답했다.


평생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에 희생하고 헌신해야 할 이유는 없다. 중견 제조업체 6년차 직장인 이석준(가명·32) 대리는 “회사에 애착은 있다”면서도 이렇게 부연했다.


“직원이 회사에 기여하는 바와 회사가 직원의 발전에 기여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이 서로 플러스 방향으로 일치할 때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회사의 성장과 직원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앞날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죠. 회사에만 의존하면 회사에 끌려가게 됩니다.”

이해관계의 차이는 사소한 데서도 드러나곤 한다. 영·유아식품업체 김진희 대리는 “밀레니얼 세대는 정시 퇴근이 당연하고 점심을 따로 먹는 것이 익숙한 세대”라면서 “회사에서 이런 사항이 지켜지지 않으면 본인의 기본권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 대리들은 상사와 몇 마디 나누다 별달리 소통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으면 입을 닫는다. 중견 건설업체 배세희 대리는 “대화로 상사를 이해시키려 할수록 서로 평행선을 그으면서 다툼으로 번지고, 결국 대리가 굽히는 쪽으로 결론 나는 일이 잦으니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밀레니얼 세대는 충성심이 없다’고 단언하는 건 금물이다. 대기업 유통업체 문지성 대리의 말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있지만, 회사로부터 받은 복리후생 때문은 아니에요. 회사에서 내가 이뤄낼 수 있는 성취, 수년간 알고 지낸 동료들과의 관계가 회사에 대한 애착을 키우는 주효한 요인입니다.”

충성의 대상은 ‘나를 고용한 조직’이 아니라 ‘내가 이뤄내는 성취’다. 게임업체 6년차 직장인 박성우(가명·33) 대리는 “‘공동체의 성공’보다 ‘개인의 성공’이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회사에서 내 성공에 밑받침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얻고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최선의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게임업계의 경우 한 회사에서 10년 뒤 과장, 20년 뒤 부장을 바라보기에는 프로젝트 실패, 팀 해체, 회사 인수 등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금전적으로 보더라도 한 회사에서 정해 놓은 연봉 테이블에 맞춰 얻을 수 있는 상승 폭보다는, 지금 가진 능력을 다른 회사에 어필해 이직 시 얻을 수 있는 상승 폭이 훨씬 크죠.”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은 2019년 4월 9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


“한 직장에 30년 다닌다고 고수가 되는 건 아닙니다. 축적이 아니라 퇴적될 가능성이 도리어 높죠. 직장이 아니라 각 태스크(task) 중심으로 나름의 개념설계를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그런 환경에서 커온 사람이라면 연차가 5년이건 10년이건 고수라고 할 수 있어요.”

3월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대기업 사무실 모습.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컨벤션 기획업체 유선혜 대리는 휴무일마다 이 특보가 쓴 ‘축적의 길’을 유심히 읽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축적이라는 낱말로부터 찾는다.


“포럼과 전시를 기획하고 개최하다 보면 자연스레 포트폴리오(portfolio)가 쌓여요. 제가 일하는 업계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그거 한 줄’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한 줄을 위해 회사 생활을 하는 거예요.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적을 거듭하다 보면 고수가 될 테고, 그때 제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곳이 제가 충성해야 할 직장이겠죠.”


중견 제조업체 이석준 대리 역시 “회사에 기대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온전히 나의 힘으로 성취와 보상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했다. 중견 건설업체 김세은 대리는 “회사 생활은 커리어의 발전을 위한 과정”이라며 “퇴사가 옳은 답은 아니지만 무조건 회사에 순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회사가 잘돼야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리라는 기대감은 찾기 힘들다. 그것은 체념이나 자조(自嘲)와는 다른 정서다. 당면한 현실에 스스로를 맞춰가되, 회사가 만들어놓은 설계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일 뿐이다. 


“떠나게(Exit) 하지 않으려면 ‘나’를 충성(Loyalty)으로 유인할 태스크(task)와 성취감, 보상체계를 제공해 달라.” 밀레니얼 세대 대리들의 요구는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다. 이제 기업이 답해야 할 차례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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