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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까지 출동한 코로나19 대출 현장..상인도 직원도 피 말라

조회수 2020. 4. 10. 16: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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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새벽 5시에 온다고 해서 ‘선착순 50명’ 안에 들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어요. 죄송합니다.”


4월 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서울중부센터 앞. 한창훈 센터장이 ‘경영안정자금’ 사전예약 순번이 밀려 화를 내는 정모(54) 씨를 붙잡고 설명했다. 소진공 서울중부센터는 하루 평균 100여 건의 ‘소상공인진흥공단기금 경영안정자금’(코로나19 대출) 접수를 처리하고 있다.


방문자의 대기시간을 줄이고자 온라인에서 40여 건, 현장에서 50여 건의 사전예약을 받지만, 찾아오는 소상공인은 하루 평균 200여 명. 매일 100명 이상이 정씨처럼 헛걸음을 하는 셈이다.

코로나19 소상공인 긴급대출을 받기위한 소상공인들의 긴 줄이 계속되고 있다. 7일 새벽 6시 30분경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진흥공단 서울 중부센터에서는 코로나 긴급 대출 신청을 위해 건물 지하 2층까지 줄이 이어졌다. 센터 관계자는 이 날 오전 7시 경 현장접수 안내를 80명까지 한 뒤 나머지 30~40명 가량은 돌려보냈다. [사진=동아일보]

서울 종로4가에서 1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씨의 옷 가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정씨는 월세 낼 돈이라도 마련하고자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소진공을 찾았으나 “새벽 5시부터 줄 선 사람들로 당일 예약이 마감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 나도 새벽 5시에 오면 되느냐”고 물은 정씨는 급기야 “복도에 텐트 치고 앉아 밤새우라는 소리냐”며 소리를 질렀다. 30여 분간에 걸친 소란은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서야 끝났다.


“일주일간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 가게 문을 닫으면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돌아요. 그러니 휴업도 못 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가게를 정리할 수도 없어요. 오십 넘은 나이에 어디 가서 돈을 벌겠습니까.”


혼자 사는 정씨의 유일한 걱정은 4년째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80대 노모.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어머니를 뵈러 간다. 병원비는 계속 드는데 장사는 안 되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매달 나가는 200만 원 남짓한 요양병원비는 정씨 형제에게 큰 부담이다. 따로 장사하다가 올해부터 법인택시 기사로 일하는 그의 형도 요즘 승객이 부쩍 줄어 하루에 12~14시간을 일해도 월수입이 200만 원에 그친다고 한다.

1.5% 초 저금리 소상공인 대출 시중은행 첫날인 1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지원센터 직원들이 대출을 받으러 온 소상공인들을 상담하고 있다. 사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소상공인도 직원들도 피 마르는 심정


코로나19 사태로 ‘매출 절벽’에 시달리는 소상공인을 위해 정부가 2조7000억 원 예산을 마련해 긴급 수혈에 나선 지 2주가 됐다.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며 혼란을 겪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이 어려운 저(低)신용 소상공인이 예상보다 많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진공이 실무를 맡은 코로나19 대출은 4~10등급 저신용자에게 최대 1000만 원을 5년간 무담보로 빌려주는 것. 1.5% 초저금리가 적용된다.


3월 25일 첫 시행되고 일주일 후인 4월 1일까지 3300명 넘는 소상공인에게 대출이 이뤄졌을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좀처럼 완화되지 않으면서 지금도 여전히 각 센터는 대출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새벽부터 줄 선 소상공인에게 예약 번호표를 배부하기 위해 소진공 서울중부센터 직원들은 매일 2명씩 교대로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하고 있다.


소진공에서 소란을 피운 이는 정씨만이 아니다. 많은 소상공인이 사정이 급박해 한달음에 소진공으로 달려오다 보니 센터 곳곳에서는 날 선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4월 8일 오후 소진공 서울중부센터를 찾은 한 50대 여성은 “이번이 네 번째 온 거다. 그런데도 아직 접수조차 못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아침 7시에 오라고 해서 그때 왔는데도 왜 접수가 안 되느냐”며 직원에게 언성을 높였다.


“저, 사실 금리가 23.8%나 되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쓰고 있어요.”


같은 날 소진공 서울중부센터를 방문한 공모(60) 씨의 말이다. 그는 서울 중랑구 면목시장에서 속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공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도매대금을 치르고, 장사해 번 돈으로 이를 갚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장사가 안 돼 현금서비스를 다른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고 있다. 


공씨는 “신용카드 4개를 돌려써왔지만, 이제 내 카드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아내 카드를 사용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대출 받으려면 새벽 5시까지 와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느냐. 이 동네 상인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 사무실 벽면에 붙은 폭언금지 알림(왼쪽)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노동조합에서 방문객을 대상으로 게시한 호소문 [사진=주간동아 최진렬 기자]

“제발 폭언, 욕설, 성희롱 하지 마세요”


쏟아지는 소상공인의 분노 앞에 소진공 센터 직원들은 속수무책이다. 소진공 서울중부센터는 전 직원 11명 중 8명을 코로나19 대출 업무에 배정했다. 대출마다 서류 검토와 심사 등에 1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하루에 100건 남짓한 대출만 처리할 수 있다. 한 센터장은 “100여 건의 대출을 처리하기 위해 매일 전 직원이 밤 10시까지 야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진공 센터를 ‘풀가동’해도 대출을 받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소상공인이 하루 100명이 넘다 보니 이들이 표출한 분노는 센터 사무실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제발 부탁드리는데 처음 도입되는 지원 정책 과정에서 불편한 점이 생기더라도 폭언과 욕설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일이 힘든 건 버텨나갈 수 있지만 폭언과 욕설, 성희롱은 저희를 더욱 힘들고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중부센터 벽에 소진공노동조합 명의로 부착된 호소문의 일부다. 이 밖에도 센터 곳곳에는 ‘폭언·욕설 금지 폐쇄회로(CC)TV 녹화 중’ ‘관할 지구대 협조 중’이라고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김종하 소진공노조위원장은 “직원이 소상공인의 욕설과 폭언에 시달려 울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간 경우도 있었다. 여성 직원을 상대로 성적 비하 발언을 하는 방문객도 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만큼 서로 위로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 센터장은 “소상공인의 사정이 안타까워 직원들이 밤낮으로 애쓰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한시적이라도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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