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떠나도 악기는 수백 년" 이탈리아에 공방 낸 수제악기 장인

조회수 2020. 4. 11. 10: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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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크레모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기의 도시이다. 불후의 악기 명장 스트라디바리, 아마티도 이곳에서 활동했다. 특히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고가에 판매되며,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이곳 크레모나에서 현악기를 직접 제작하고 있는 한국인 제작자가 있다. 이승진 제작자는 크레모나의 국제 현악기 제작 학교를 졸업하고, 명문가문인 모라시 공방에서도 일했다. 일찍부터 현악기 제작에 두각을 드러낸 그는 현악기 제작 콩쿠르 등 국제 대회에서도 여러 번 수상했으며, 현재는 1인 공방을 운영 중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현재도 수많은 연주자들이 수제 제작 악기를 찾고 있으며, 크레모나에서만 수백 명의 장인이 활동하며 직접 악기를 제작하고 있다. 이승진 제작자에게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수제 악기의 세계에 대해 직접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현악기의 본고장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드는 이승진입니다.

현악기 제작을 시작한 계기


저의 친누나가 이탈리아에서 현악기 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나를 따라 함께 이탈리아에 온 저도 그런 누나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꼈고 조금씩 따라 배우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현악기 제작을 저의 진로로 선택하게 되었죠.


2005년에 처음 이탈리아 굽비오(GUBBIO)의 현악기, 활 제작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첫 악기를 완성하고 내 손으로 만든 악기의 연주를 들은 짜릿함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만든 악기가 후대에까지 남아서 연주된다는 점에도 매력을 느껴, 평생 악기를 만들기로 결심했죠.


학교 교육 수료 후에는 이탈리아 현악기의 본고장인 크레모나로 와서 다시 '국제 현악기 제작 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현악기 제작 가문인 모라시(MORASSI) 공방에서 6년간 일한 후 독립하여 현재까지 개인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기성품 악기와 수제 악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한 공정이라도 사람의 손을 거치면 수제라고 불릴 수 있기 때문에, 수제의 기준이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 가장 큰 차이라면 공장에서 여러 사람과 기계가 분업해서 만드는 것과 1인 제작자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모든 공정을 맡아 제작하는 것의 차이겠죠.


공장 생산 기성복과 장인이 만든 맞춤옷이 다르듯, 수제 악기도 규격에 맞춰 대량생산된 것이 아닌, 하나하나 장인이 맞춤형으로 만든 것이므로 섬세함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쓰이는 재료도 다르고요. 그래서 기성 악기와 장인의 수제 악기는 가격 면에서 백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기성 악기보다 다소 비싸지만, 이미 수제 악기는 이탈리아에서 하나뿐인 예술품으로 취급되며 고유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장인이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수제악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많은 분이 꾸준히 찾고 있습니다.


악기를 제작하는 대략적 과정과 걸리는 시간을 소개해주세요 .


악기의 기본이 될 틀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주로 변형이 없는 합판으로 틀을 만듭니다. 완성된 틀의 옆판에는 열을 가해 구부려 아교로 붙이고, 그 모양대로 앞판과 뒤판을 잘라내 바깥을 다듬고 속을 파내서 두께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틀을 빼낸 옆판과 접합한 몸통 부분에 나머지 부분인 넥과 스크롤을 알맞은 각도로 접합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인 제작자가 하루 8시간씩 작업할 경우, 이 공정까지는 한 달 정도가 걸립니다. 이후에는 바니시 등 도료를 칠하고 말리고의 반복 작업과 마무리 셋팅까지 해야 하는데, 결국 현악기 하나를 만드는 데에 총 3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1년에는 바이올린은 5~6대 정도 제작하고요. 그 외에도 주문에 따라 비올라와 첼로도 함께 조금씩 제작하지요.

크레모나 최고의 제작 가문인 모라시 공방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크레모나의 '국제 현악기 제작 학교'는 졸업 후 1년간 실습 과정이 주어집니다. 실습할 공방들을 학교에서 소개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전에 미리 여러 공방을 다니며 제작에 관련된 조언도 얻고, 졸업 후에 실습할 공방도 정해 놓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마에스트로(maestro, 이탈리아어로 거장, 전문가에 대한 경칭)들의 공방은 이미 수년간 같이 일해온 제자들로 가득 차서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저 같은 외국인은 비자 등의 서류 문제로 실습할 공방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모라시 공방은 크레모나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저의 스승님이자 모라시 공방의 1대 장인인 지오 바타 모라시(1934~2018)는 페르디난도 가림베르티와 쥬세뻬 오르나티의 공방에서 직접 수련했고, 크레모나 제작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분입니다. 현재 크레모나 절반 이상의 제작자가 그 시절 스승님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는 모라시에서 꼭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졸업을 앞두고 완성한 악기를 들고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얼굴을 익힌 후, 실습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거절당했어요. 하지만 이후에도 몇 달 동안 새로 만든 악기들을 들고 가며 찾아간 끝에 승낙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오 바타 모라시와 함께 / 이승진

공방에서 받은 중요한 영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방에서는 항상 “눈으로 배워라”라는 말을 강조하며 작업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거나 따로 치수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모든 것을 치수화하며 도구로 재면서 작업했던 터라, 초반에는 공방의 작업 방식을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정해진 판 두께가 아닌 재료에 따른 탄성과 울림을 손으로 느끼며 깎아 내고, 컴퍼스와 자로 재 가며 스크롤을 깎던 예전 방식을 버리고 눈으로 비교하며 공방의 작업들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측정도구 없이도 손으로도 어느 정도의 치수는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도구로 측정하는 중간 과정이 생략되니 자연적으로 작업 속도도 빨라졌어요.


악기연주도 직접 하는가요


7살 때 누나와 함께 바이올린 연주를 배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일이 없었지만, 크레모나의 제작 학교에 연주 과목이 입학시험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문 연주자도 아니고, 제작이 끝난 악기의 소리를 듣고 최종 셋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는 결국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악기 제작 초창기에는 완성된 새 악기의 화려한 외관, 숙련된 제작자의 멋진 손 기술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외관만 화려하고 기능적인 부분이 퇴색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래서 전문 연주자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던 터였죠. 그러다가 바이올린 연주자인 저의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악기 제작 과정 중에도 연주자의 시선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완성 후 시연과 함께 그전 악기 소리와의 비교도 함께 의논하며 기능적인 부분, 즉 더 연주하기 편하고 더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연주자 아내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중입니다.

현악기 제작대회 심사과정 / 이승진

제작자마다 자기만의 다양한 철학과 특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작가님의 악기가 다른 것과 구분되는 고유한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아마티 가문에 의해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이 탄생하였으나, 나라끼리는 물론, 이탈리아 내에서도 학파에 따라, 개인에 따라 칠과 제작 방식은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탈리아에서 제작을 배우고, 모라시 공방에서 마에스트로들과 함께 일을 했으며 오랫동안 크레모나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만큼 해왔던 현지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저의 제작 스타일은 다소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새로운 모델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매년 크고 작은 제작 콩쿠르들이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데, 꾸준히 참가하며 많은 것을 교류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정성 들여 제작한 악기를 출품하여 상을 타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대회를 준비하면서 하는 여러 새로운 시도와 도전도 큰 만족감을 줍니다. 대회 전시장을 둘러보며 현재의 제작 트렌드와 연주자들과의 피드백도 제작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특히 연주자인 아내와 아내를 통해 정말 많은 연주자를 만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입장에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기능에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작한 악기들은 다른 것에 비해 좀 더 연주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완성작 바이올린( 스트라디 1715 모델) / 이승진

제작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소가 있다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공정이 없습니다. 모든 제작 공정이 하나하나 모여서 상호 관계에 따라 악기의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재료, 제작할 악기의 전체적인 치수, 비율에 따라 변경해야 할 최종 판 두께, 마지막 셋업에서의 브리지의 두께 0.1mm에 따라서도 소리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제작자의 기량과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스트라디바리와 아마티는 직접 산을 찾아다니며 재료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현악기를 만드는 원목과 도료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조달 되는지?


현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나무는 크게 두 종류로 앞판에는 가문비나무를 쓰고, 그 외 부분에는 대부분 단풍나무가 쓰입니다. 가끔 단풍나무 대신에 너도밤나무, 포플러 등이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거쳐 수많은 제작자들이 써온 나무 중에, 미관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현악기 제작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진 것은 역시 단풍나무입니다.


아마티와 스트라디바리가 현악기 제작을 하던 350여 년 전에는 현악기 제작용 목재만 따로 취급하는 곳도 없었을뿐더러, 제작에 필요한 공구들도 자급자족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는 재료는 물론, 악기 제작의 규격도 아무것도 적립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선구자 역할을 했던 것이고요.


이곳 크레모나는 바이올린의 탄생지이자, 아마티와 스트라디바리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현악기의 본고장답게, 시에 등록된 개인 공방만 해도 150개 이상이 있습니다. 그에 따른 현악기 제작용 목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들이나 공구 가게, 칠 배합에 필요한 원 재료까지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스트라디바리가 칠 재료를 구입했던 렛제리 약국(FARMACIA LEGGERI)에서는 현재에도 의약품 뿐 아니라 현악기 칠에 쓰이는 천연 재료와 도료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크레모나라는 도시는 현악기 제작자가 살기엔 아주 적합한 도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작에 사용될 나무들 / 이승진

한국에서는 어떤 활동이 있는지, 한국의 현악기 제작 수준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제가 소속된 '이탈리아 현악기 제작 협회(Associazione Liutaria Italiana)' 주관으로 회원들이 제작한 악기들이 매년 크레모나 뿐만 아니라, 호주, 독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찾아가며, 전시와 현악기 제작 관련 다양한 행사들도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악기 제작 관련 행사나 전시회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수제 현악기에 대한 개념조차 많이 생소한 편이지요. 그래서 지난 2018년 가을에 현악기 제작자로서는 처음으로 개인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매년 10월경 서울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또한 4~5월에도 방문하여 한국에서 악기를 점검하고 연주자들과의 만남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한국에서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널리 현악기 제작에 대해 알릴 생각입니다.

지난 2019년 열렸던 전시회 포스터
서울 개인 전시회 당시 전시장 내부 / 이승진

이탈리아도 현재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심각하다고 들었는데요.


평소에도 바깥 출입이 잦은 편은 아니고, 1인 제작 공방이라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악기 제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이 심각한 상황이라 주변에 어려운 분도 많고 저도 더욱 조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기계화되고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를 맞아 앞으로도 수제 현악기의 가치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문화와 예술 영역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숙련된 장인의 손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꾸준히 수제 현악기가 고유한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현악기는 한 대 한 대가 각자의 개성을 지닌 독립체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연주자들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을 믿습니다.

공방 내부 바이올린 작업중 / 이승진

앞으로의 계획


어느 분야이든 한 가지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흔히들 제작자들끼리 하는 말로는, 제작자 나이 50대가 현악기 제작자의 황금기라고들 합니다. 단순히 치수에 따라 나무를 깎고 붙이고 조립하는 수준을 넘어서, 나무와 악기를 이해하고 느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더 많은 경력이 필요합니다. 저도 갈 길이 멉니다.


예전 모라시 공방에서 일하고 있을 때, 30대 중반의 일본인 연주자가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음반을 들고 와서 스승님(지오 바타 모라시)과 사진을 찍고 음반 표지에 싸인을 받아 갔습니다. 들어보니 이 연주자가 15살에 스승님의 바이올린을 구매했는데, 언젠가 자신의 악기를 만든 제작자를 만나고 싶었다고 했고, 20년이 지나 드디어 만났다고 말하더군요.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저도 왠지 모를 뿌듯함과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제가 만든 악기들과 같이 성장해가는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저 또한 그들을 위해 더 나은 악기를 만들어가는 제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페르모 국제대회 바이올린 부문 수상 당시 시상식 / 이승진

그가 악기를 제작한지도 벌써 15년이 흘렀지만, 현악기 제작의 길은 여전히 멀며 부족한 것도 많다. 하지만 그 과정은 힘들지 않다. 하나하나 영혼을 담아 다듬는 과정, 그렇게 완성된 하나뿐인 악기를 보며 느끼는 성취감, 그리고 다양한 제작자와 연주자를 만나며 배우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즐거움이다.


스트라디바리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현재도 악기의 도시,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는 150명 이상의 장인이 이러한 스트라디바리의 정신을 이어가며 멋진 악기를 만들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항상 연주자의 입장에 서서 연주자에게 울림과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악기를 만들고 싶다는 이승진 제작자는 연주자와 함께 성장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예술의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기대하며, 응원을 보낸다.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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