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고슴도치 '아장아장'.."동물재활 보조기 만듭니다"

조회수 2020. 3. 7. 12: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다리 아픈 동물들 걷게 도와주는 '동물재활공학사'

'반려동물 천만 시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펫(pet)과 패밀리(family)의 합성어인 펫팸족, 펫(pet)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인 펫코노미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이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도 늘어나는 추세죠. 


펫코노미 시장은 펫 택시, 강아지 유치원을 시작으로 반려동물 전용 적금, 보험까지 다양한 범위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금 특별한 반려동물 케어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재활공학사' 김정현 씨입니다.

촬영=권혁성PD hskwon@donga.com

김정현 씨는 원래 사람들을 위한 의지 보조기를 만드는 '의지 보조기 기사'였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의수족을 만들어 주는 일이죠. 


이 일을 하던 김 씨는 문득 '동물에게 외상이나 절단의 후유증이 생기면 누가 이런 용품을 만들어주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김 씨는 우연히 돌고래의 새로운 꼬리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봤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름이 아닌 의지 보조기 기사였습니다. 그때 김 씨는 동물에게도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사진=김정현 씨 제공

Q. 국내 1호 동물재활공학사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으셨나요?


A.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은 2011년인데 그런 이후에 계속 검색을 하고, 해외 업체에 문의를 했어요. 


'한국에는 많은 동물이 치료 이후에는 다른 방법이 없고, 유기되거나 안락사를 당한다. 그래서 한국에도 이런 용품들이 필요하고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여러 업체를 설득하려고 메일을 보냈는데, 대부분 답장이 없더라고요. 해줄 수 없다는 연락도 많이 왔죠. 


그중에 딱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마이 펫츠 브레이스(My Pet's Brace)'라는 미국 업체에서 연수를 받고 한국에 와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사실 동물재활공학사는 전문화된 자격증이 있지는 않습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교육기관이나 시스템 같은 것들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으시면 사람 의수족을 전공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고요, 그다음에는 반려동물들을 이해하는 반려동물 관리사 라던지 관련 학과를 전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간자격증 같은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도 좋고요.

사진=김정현 씨 제공

김 씨는 동물재활공학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과정 외에도 동물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말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끼는 계기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자랐어요. 저는 시골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염소, 닭, 개, 고양이. 그런 동물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키웠던 고양이가 문틈에 끼어서 마비가 되고 얼마 안 있다가 죽었던 일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오버랩되면서 이런 일을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동물에게 특별히 사람의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요즘 반려동물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려할 수 있는 동물 친구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가져야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촬영=권혁성PD hskwon@donga.com

김정현 씨가 제작하는 동물재활 보조기는 맞춤제품과 기성품으로 나누어집니다. 맞춤 제품의 경우 우선 병원의 진단이 필수적입니다. 반려동물에게 어떤 질환이 있는지 확인하고 동물병원에 엑스레이를 요청할 때도 있습니다. 


그 이후 보호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반려동물의 상태 외에도 보호자가 보조기 착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간적·경제적 여력이 있는지 등을 상담합니다. 충분한 상담 이후에 반려동물의 치수를 재고 본을 뜨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일주일 정도의 제작 기간을 이후 반려동물을 다시 만나 제품을 착용하고, 걷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점검합니다. 


이때 보호자도 보조기를 착용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는지 교육을 받습니다. 추가로 자율적인 홈 트레이닝이나 치료가 필요하면 동물병원과 연계하기도 합니다.


Q. 동물재활보조기를 제작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은 무엇인가요?


A. 가장 중요한 거는 소비자, 보호자와 만나는 과정, 그리고 아이들이 편안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보통 동물병원에서 어떤 부분은 실망하고, 마땅히 방법이 없어서 반려동물을 방치했다가 저희를 찾아오시는 순간이 많거든요. 


그럴 경우에 무조건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런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하고. 반려동물의 상태를 우선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은 저희가 제작을 잘 해야겠죠. 의학적인 수준에 잘 맞게 접근을 하고 적용을 해서. 그런 부분들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합니다.


아픈 아이들이 오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보호자도 예민하고, 동물 친구들도 굉장히 긴장하고. 일단은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요. 보호자의 통제하에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지고. 긴장감을 풀어주는 것, 동물이 저희를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모든 과정은 편안한 상태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촬영=권혁성PD hskwon@donga.com

Q. 동물재활공학사로 살아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2013년도에 만났던 봄이라는 친구인데요. 양 쪽 슬개골 탈구를 앓고 있어서 거의 걷지 못하는 상태로 저희를 만났어요. 


일반적으로 탈구는 내측 탈구라고 해서 안 쪽으로 뼈가 빠져서 인대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외측 탈구에요. 외측 탈구는 인대가 손상되지는 않지만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보호자님이 포기하고 휠체어를 맞추러 오셨어요. 


근데 본을 뜨는 과정에서 저희가 다리를 폈더니 다리가 세워지는 거에요. 결국 보조기를 맞춰서 이 아이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던 기억이 남거든요. 보호자님도 너무너무 좋아하셨고, 아이가 저희를 만나서 걸어 나갔다는 게 정말 의미 있어요.


아픈 동물을 주로 치료하다 보니 안타까운 순간도 많습니다.


"이미 수술을 몇 번 받아서 저희가 의학적인 접근으로 보조기를 지원해도 무릎이나 허리가 회복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부분들이 정말 안타깝고, 더 빨리 우리를 알았다면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고요. 또 한 편으로는 저희가 최선을 다했는데 이 아이가 호전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그렇게 살아갈 아이와 보호자님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촬영=권혁성PD hskwon@donga.com

Q.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인가요?


A. 우선은 보조기 제품들이 지리적인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게끔 병원에 공급이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또 인터넷으로 구입하시면 장애가 생기기 전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즉각적으로 조치가 취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인터넷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해외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처럼 소형견을 키우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소형견에 최적화된 물건들이 많이 없어요. 근데 저희가 만들고 개발하는 제품들이 소형견에 많이 최적화가 되어 있어서 해외에 수출도 해보고 싶습니다.


김 씨는 미래의 동물재활공학사를 키우고 싶다는 꿈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희가 이제 동물재활공학사 협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활동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많은 동물재활공학사를 배출해서, 각 병원이나 다양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만들고 싶은 게 저희의 철학인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언제쯤 활성화되어서 정말로 배우고 싶고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아닷컴 진묘경 인턴기자 dlab@donga.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