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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숙소에서 배달음식 먹으며.." 코로나 상황판 만든 부부

조회수 2020. 2. 18. 1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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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불안 극복을 위해 시민 개발자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확진자 동선 지도 등 정확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불안감을 덜어주고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이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실시간 상황판’(코로나 상황판)은 한국과 전 세계의 감염자(확진), 사망자, 완치자, 치사율 등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어 확산 실태 파악에 도움을 줍니다.


하루 100만 명이 넘는 방문자가 찾아오는 코로나 상황판 제작자는 주은진(30)-권영재(35)부부입니다. 스스로 디지털노마드 개발자라고 소개하는 이들은 태국 치앙마이에 머물다가 이번 사태를 맞았습니다. 치앙마이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일하는 디지털노마드족 사이에서 성지로 통한다고 합니다. 부부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2주 정도 숙소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코로나 상황판에 집중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실시간 상황판’ [코로나 상황판·wuhanvirus.kr]

- 코로나 상황판을 ‘뚝딱’ 만들어냈다. 어려운 개발은 아닌가.


“온라인 사이트를 만드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학에서 개발 관련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따로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많은 사용자가 갑자기 접속해도 장애 없이 안정적으로 서비스하면서 서버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설계하는 것은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또 사용자가 많은 정보를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는 현직 개발자로서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


- 전 세계에서 발표되는 각종 자료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업데이트한다는데….


“공신력 있는 보도자료를 자동 수집해 내용을 직접 검증한 뒤 수동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정보만 다루는 새로운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대시보드도 있고 확진자 동선도 잘 표시돼 있어 정보를 가져오기가 훨씬 편해졌다. 해외 사이트 중에서는 싱가포르 보건부(MOH)가 정보를 잘 정리하고 있다.”


-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나.


“풀타임으로 데이터 업데이트와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선, 그리고 데이터 정제 작업을 거의 하루 종일 한다.”(주은진 씨)

“회사 업무 시간에는 회사 일을 하고, 그 외 나머지 시간에 사이트 개선을 위해 밤늦게까지 노력하고 있다.” (권영재 씨)

주은진 씨가 그린 주은진-권영재 캐릭터(왼쪽)와 태국 치앙마이 숙소에서 일하고 있는 권씨. [사진 제공·주은진]

주씨는 IT(정보기술) 개발자이자 웹툰 작가입니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재학 시절 ‘카이승트’라는 웹툰을 그렸고, 대학 졸업 후 5년간 네이버 라인(LINE)에서 라인뮤직 iOS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습니다. 현재는 카카오 이모티콘 ‘나리의 언어생활’ 작가이면서 ‘둔딘스튜디오’(dundinstudio.com)라는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웹툰을 꾸준히 게재하면서 유틸리티 앱을 개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권씨는 해외여행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퀘어랩에서 ‘카이트(Kyte)’ 앱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바쁘게 활동하는 이들은 어느 한 장소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경기도 분당의 신혼집은 지인에게 빌려주고, 제주에서 세 달 살이를 한 후 올해 초 한 달 반 일정으로 치앙마이로 떠났습니다. IT업계에는 부부처럼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치앙마이 한 농장에서 열린 쿠킹 클래스에 참가해 밭에서 식재료를 수확하는 주은진 씨(왼쪽)와 이 농장의 신선한 식재료들. [사진 제공·주은진]

- IT 분야 스타트업에서 원격근무가 일반화됐나.


“풀타임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대기업 중에서도 주 1회, 또는 월 1회에 한해 재택근무하는 곳이 꽤 있다고 들었다. 스퀘어랩에는 개발자가 작성한 코드를 온라인으로 팀원들과 엄격하게 리뷰하는 문화가 있다. 또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긴밀히 소통한다. 따라서 꼭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어디서 일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함께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생기면 화상통화를 한다.”(권영재)


-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추구하는 이유는?


“우리 부부는 개발 일을 좋아하고, 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며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며 개발하자’는 꿈을 가졌다. IT 개발자 특성상 근무 형태가 자유로운 편이다 보니 감사하게도 꿈을 이루게 됐다.


여행으로 짧게 해외 도시를 방문하면 일정이 촉박해 유명한 곳 위주로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한 달가량 살면 현지인이 많이 가는 식당이나 동네 공원을 하나하나 가보면서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그 나라의 언어, 음식,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익혀나가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다.”


- 또 다른 도시로 갈 계획이 있나.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가 몇 달 지낸 뒤 프랑스 파리로 갈 생각이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있던 곳이라 다시 가보고 싶고, 남편은 아직 안 가봤기 때문에 목적지로 정했다. 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됐으면 좋겠다.”(주은진)


치앙마이에서 한 달간 살아 보니 무엇이 좋냐고 묻자 부부는 낮은 물가와 빠른 인터넷, 선선한 날씨가 디지털노마드족에게 딱이라고 말했습니다. 미세먼지는 있지만 음식이 맛있고 저렴한 편이라고 합니다. 쾌적한 숙소를 빌려 생활하는 부부의 한 달 생활비는 월세 70만 원, 식비 40만 원 가량입니다.

주은진 씨가 출시한 카카오 이모티콘 ‘나리의 언어생활’과 권영재 씨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카이트(Kyte)’ 애플리케이션 화면. 강아지 ‘나리’는 이 부부의 반려견이다.

권씨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카이트’는 항공권 검색 및 예약 앱으로, 사용자가 선택한 여행 시기와 기간 등 데이터를 토대로 추천 항공편을 제공합니다. 출시 60일 만에 앱스토어 ‘오늘의 앱’에 선정됐을 정도로 UI와 UX(사용자 경험)가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씨는 다른 나라의 ‘미래’ 시간 정보를 알려주는 앱 ‘리모클(Remocle)’을 개발 중입니다. 일례로 미국 오후 3시 회의가 한국시간 기준으로 몇 시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입니다. 디지털노마드족답게 둘 다 ‘해외’ ‘여행’ ‘디지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셈입니다.


코로나 상황판을 운영하느라 주씨는 리모클 앱 개발을 잠시 중단했습니다. 서버 운영에 드는 비용은 온라인 사이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과 관련된 광고를 게재해 충당하는데, 다행히 방문자가 많아 이 비용을 마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합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자진해서 코로나 상황판을 만들고 시간을 쪼개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부는 “개발자로서 성취감과 기쁨을 느낀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어 보람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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