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서럽게 하는 '터치 주문', 같은 노인이 가르친다

조회수 2019. 12. 30. 09: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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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화면 글자가 너무 작아요. 읽다 보면 사용시간이 지나서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 버려 당황스럽죠. 터치도 잘 안 되고요. 그러다 뒤를 돌아보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총을 줘서 더 당황하게 돼요.”

이달 초 서울 노원구 초안산로 인덕대에서 열린 노원구어르신일자리지원센터 주관 생활지원사 양성과정 교육에 강사로 나선 신금순 씨(60·여)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신 씨의 강연을 듣는 이들은 생활지원사 취업을 원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생활지원사는 고령 노인들에게 병원 동행이나 휴대전화 사용법 교육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생활지원사와 노인들 모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교육이 필요합니다.

서울 노원구어르신일자리지원센터가 실시한 키오스크 교육을 통해 실버 강사가 된 7명이 교육 과정에서 활용하는 태블릿PC를 들어 보이고 있다. 60세 전후인 실버 강사들은 비슷한 연령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 날 강의실에 모인 강사와 교육생들은 연령대가 비슷했습니다. 이들은 키오스크(무인주문시스템) 때문에 당황했던 경험들을 편하게 털어놨습니다. 신 씨가 담당한 그룹 6명 중 2명이 키오스크 때문에 당황해서 주문을 못 하고 식당을 나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조작 시간이 모자랄 때는 ‘연장’ 버튼을 누르고, 최종 화면에 나오는 주문번호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당황하지 말고 화내지 말아야 합니다. 조작이 힘들면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강연 내내 동년배들의 경험에 공감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준 신금순 씨는 올해 퇴임한 전직 공무원입니다. 그는 노원구어르신일자리지원센터의 ‘키오스크 교육’을 받고 강사로 변신했습니다. 센터는 SK브로드밴드의 강연료 지원을 바탕으로 50세 이상 재취업 희망자들에게 10, 11월 키오스크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출처: ⓒGettyImagesBank

당시 실제 교육을 맡았던 강의 전문업체 열에듀컴퍼니는 교육 참가자 15명 중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적극적이었던 7명을 강사로 고용했습니다. 이 업체는 종종 노인복지관 등의 요청이 들어오면 키오스크 사용법을 교육해 왔는데 주로 30, 40대 강사에게 맡겨 왔습니다.


신호진 열에듀컴퍼니 대표는 동아일보에 “기존에 실시한 교육에서는 노인들이 젊은 강사들의 강연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비슷하거나 나이 차가 크지 않은 사람이 교육하면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실버 강사 7명은 생활지원사 양성과정에서 강사로 첫발을 뗀 이후 이달 노인복지관 2곳에서 강연했습니다. 성탄절 전날인 24일에는 첫 월급도 받았습니다. 수령한 강연료는 시간당 3만 원 수준으로 중·노년이 재취업할 만한 다른 일자리들에 비해 꽤 높은 편입니다.

출처: ⓒGettyImagesBank

동년배 강사들에게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교육받은 노인들의 만족감이 높아 기관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버 강사들에 대한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SK브로드밴드가 강연료를 지원할 예정이라 기관들은 비용 부담도 없습니다. SK브로드밴드는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를 막는 활동을 주요 사회공헌활동 중 하나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치구가 마련한 노인 일자리는 공원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것처럼 공공근로 형태가 많았습니다.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크지 않은 복지정책 성격의 일자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 노인 대상 디지털 교육은 IT기업들의 지원을 받기 용이하고 교육 수요도 늘고 있습니다. 


노원구 관계자는 “노인 맞춤 교육이 가능한 전문 강사를 양성한다면 노인 일자리도 만들고 디지털 격차도 해소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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