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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평생 불행할 거라던 엄마의 말…족쇄 풀어준 건 '사랑'

불우청소년들 보듬는 청소년행복재단의 특별한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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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았을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너는 평생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라던 엄마의 모진 말이 생각났고, 그게 진짜일까 봐 겁이 났어요.”


19일 서울 서초구 청소년행복재단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김지희 씨(25·가명)는 소녀 티가 남아 있는 젊은 엄마였습니다. 김 씨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덤덤히 이야기했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이중명 청소년행복재단 이사장(아난티 회장·76·왼쪽)이 김지희 씨(25) 부부의 결혼식 앨범을 열어보고 있다. 김 씨는 어렵던 10대 시절부터 의지해온 이 회장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내가 소중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스무 살에 김 씨를 낳은 어머니는 딸에게 악에 받친 말을 퍼붓곤 했습니다. “너는 평생 불행해질 거다.” “너는 평생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할 애다.” 


학교를 보내지 않으려는 엄마 때문에 결석도 잦았습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이웃의 신고로 아동학대가 인정돼 엄마와 떨어지게 됐습니다. 이후 김 씨는 청소년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수리 중인 빈집이나 아파트 옥상, 지하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17세에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더 이상 버티는 게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한 동생과 여관방을 찾았고 이불에 불을 붙였습니다. 삽시간에 불이 번지자 아이들은 허둥대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얼굴을 포함해 전신의 28%에 3도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방화 미수범으로 2011년 소년원에 간 김 씨는 시설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더더욱 세상과 단절되어 갔습니다. 그런 그를 돌봐준 사람은 당시 법무부 공익법인 한국소년보호협회 회장이었던 이중명 아난티그룹 회장(76)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네 차례 흉터 수술비용을 지원하고 김 씨가 소년원에서 출소하자 아난티 계열사 골프장에 취직도 시켜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왜 나를 도와줄까.” 살면서 타인의 순수한 호의를 받아본 적 없던 소녀는 의심부터 들었고 취업한 지 한 달 여 만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김 씨는 “그 때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란 걸 몰랐다”고 회상했습니다.

● 한 사람을 도우면 세상이 바뀐다


2014년부터 소년보호협회 이사장을 맡게 된 이 회장은 김 씨를 수소문해 찾았습니다. 결국 김 씨는 2016년부터 소년보호협회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청소년들을 보며 할 일을 직감했습니다. 남편을 만났고 지금은 23개월 된 아들도 있습니다.


김지희 씨는 얼마 전 이 회장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부터 하고 싶은 게 생긴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 피라미드같이 생긴 표가 나온다. 한 명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이 두 명을 도와주는 식으로, 온정은 퍼져 나가는 것이다.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이중명 회장은 지난 달 청소년행복재단을 출범시키고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어려운 청소년들의 실질적 자립을 더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 재단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육, 장학, 주거지원 등에 나섭니다. 김 씨를 비롯 그 동안 이 회장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도 재단 관련 일을 논의하러 모였습니다.


이 회장은 “나도 어렵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대학등록금을 버느라 성적은 늘 낙제점이었다. 평생 이렇게 힘들게 살 것 같아 죽으러 산에 올라갔던 적도 있다. 내 눈에 보이는 어려운 아이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회장은 아난티 남해호텔 인근 남해해성고등학교 이사장이기도 합니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2006년 선뜻 맡았습니다.

청소년행복재단에는 또 다른 김지희들이 있습니다. 김민석 씨(25)는 성악가의 꿈을 목표로 음대 입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레슨비를 지원했습니다. 김 씨는 “여덟 살에 처음 가출했다. 가족이 때려 멍 투성이였다. 늘 외로웠지만 아무도 없었다. 또래 집단에서 관심 받으려고 힘을 과시했고 발을 빼기도 쉽지 않았다. 내겐 그저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습니다.


지희 씨와 민석 씨는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나 같은 아이들 몇 명을 맡아 언니, 오빠가 되어 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장점을 살리게 될 것이다. 가족이 되어 주고 싶다.”


이 회장은 “지희가 주례를 서달라고 했을 때, 민석이가 노래를 열심히 부를 때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재단을 통해 많은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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