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으로 돈 얻었지만..친구·건강 잃었습니다"
퇴근한 직장인들이 집을 향해 바삐 걸어가는 오후 7시. 서울 직장인 김민수(가명·35)씨도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30분 뒤 다시 집에서 나온 김 씨는 헬멧을 쓰고 조끼를 입고 있었습니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스마트폰에서 배달기사용 앱을 켠 김 씨.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배달기사인 ‘투잡족’의 두 번째 근무가 시작됐습니다.
● 워라밸이 아니라 투잡 위해 이직
김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워라밸이 아니라 투잡을 뛰기 위해 이직했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업 협력업체를 다니며 업소용 냉장고를 수리하던 김 씨는 매일 할당된 수리 물량을 채워야 퇴근할 수 있었고 주말에도 간혹 출근해야 했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월급은 비슷하지만 ‘칼퇴근’이 가능한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새로 취업한 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퇴근 뒤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는 배달 일을 합니다.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종일 배달을 합니다. 직장과 배달 일을 합쳐 김 씨는 일주일에 103시간 정도를 일합니다. 이렇게 버는 돈은 한 달에 550만 원 정도.
“빚 때문에 주 100시간 이상 일하고 있습니다. 투자에 실패해서 1억 넘는 빚을 졌거든요. 지금도 버는 돈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습니다. 투잡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 “수입은 늘었지만 친구도 건강도 잃어”
쉴 새 없이 일하면서 수입은 늘었지만 친구와 건강은 잃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림프샘 부근과 뒷목에 혹 같은 것이 만져졌지만 김 씨는 시간이 아까워서 아직도 진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피로한 상태에서 장시간 오토바이를 운전한 탓에 무릎도 시립니다. 친구들도 못 만난 지 오래 됐습니다.
“인간관계는 다 끊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보던 친구들도 못 본 지 오래됐고 가족과도 연락이 뜸합니다. 회사생활 말고는 사회생활이라 할 게 없어요.”
김 씨는 평일 하루 평균 25건의 ‘콜(배달요청)’을 소화합니다. 배달료 2800원 중 2500원이 김 씨의 몫입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배달료는 6000원까지 오릅니다.
배달로 버는 한 달 수입이 평균 225만 원이니 시급으로 따지면 약 8330원입니다. 올해 최저시급(8350원)보다 약간 적지만 김 씨는 “투잡 중에서는 배달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 말합니다.
● 장시간 일하지만 노동법 보호 못 받는 사람들
김 씨처럼 근로자와 개인사업자의 중간 형태로 일하는 특수고용직을 ‘플랫폼 경제 종사자’라고도 합니다. 이런 특수고용직은 2018년 기준 국내 취업자의 2.0%, 최대 53만 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 중 46.3%가 김 씨 같은 ‘투잡족’입니다.
장시간 일하지만 이들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기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 합니다.
“비가 와서 배달이 많은 날에는 아파도 쉬지 못 해요. 눈치가 보여서요. 아무리 개인사업자처럼 일한다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죠.”
오후 10시 경 편의점 김밥 한 줄을 사 온 김 씨는 늦은 저녁을 먹는 중에도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며 ‘콜’이 오는지 확인했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진짜로 퇴근한 김 씨는 “빚을 갚고 여유가 생기면 예전에 즐기던 게임을 다시 하고 싶다”는 소소한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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