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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작품에 유독 ‘무제’가 많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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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대미술에는 유독 제목 란에 ‘무제’라고 적혀 있는 작품이 많을까요. 제목을 붙임으로써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자리를 비워 놓겠다는 의도입니다.


"현대미술의 기본은 관객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놓는 것"이라 말하는 이상민, 신승헌 작가를 22일 청담동 셀로아츠 갤러리에서 만났습니다.

이상민 작가(좌)와 신승헌 작가(우). 사진 박미정 PD

투명한 유리판에 그릇 형상을 새겨 넣어 물결치는 듯 한 빛의 효과를 보여주는 이 작가의 작품과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칠해 오묘한 색채를 만들어 낸 신 작가의 작품은 갤러리 공간에 청량한 분위기를 한껏 불어넣습니다. 

Layover / 이상민, 신승헌
2019. 08. 21 ~ 2019. 09.19
셀로아츠 갤러리(seloarts.com)

작품활동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이상민 저는 지금 그릇 시리즈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그릇 형태는 제가 만든 디자인이 아니고 백자, 청자처럼 옛 조상이 만든 그릇 형상을 새긴 것이지요. 예전에 대만에 갔을 때 옛 문화를 잘 보존하는 모습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귀국해서 백자와 청자를 다시 봤을 때 새로운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릇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 본질은 대접이고 잔이고 호(壺)입니다. 그 본질을 되새기며 작업하다 보면 옛날옛적 도공, 장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듭니다.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서 조상님들이 갖고 있던 힘을 받는 느낌이죠.

신승헌 저는 이상민 교수님 작품을 보면서 ‘빛의 마술사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빛인데, 보는 순간 치유되는 느낌이 되면서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저도 사람에게 치유와 재생의 힘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 작품에서 추구하는 건 ‘규정지을 수 없는 색’입니다. 언뜻 보면 단색인 것 같지만 잘 보면 시중에 컬러로 나와있지 않은 색입니다. 색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색을 창조하면서 저 스스로도 행복한 느낌을 받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신 작가는 서양 물감인 유화물감을 사용해서 동양 회화 기법으로 작품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왕의 어진 등 귀한 그림을 그릴 때 한 번 칠하고 물감이 마르면 그 위에 또 덧칠하는 식으로 겹겹이 색을 올리는 기법을 사용하곤 했다는데요. 이렇게 반복적인 채색 행위를 통해 오묘하고 은은한 색이 탄생합니다. 신 작가 또한 캔버스 위에 여러 번 색을 올리다 보니 작품 한 점이 탄생하는 데 한 달은 걸린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 작품을 준비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신승헌 전시장 정면에 걸린 큰 작품을 만들 때 고생을 좀 했습니다. 저렇게 큰 캔버스는 주문해서 받아 보면 막상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처음 캔버스 제작 과정에서부터 제가 다 관여해서 직접 운반했습니다. 


옮기는 것도 쉽지 않고 그리기도 힘들고,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부담이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고생이 더해지다 보니 눈이 가고 마음이 가기도 합니다.


이상민 이번 작품에 사용한 유리판 두께가 1cm 입니다. 1cm 유리판을 깎아서 깊이감을 만들어내려면 빛이나 볼륨감 등을 다 고려해야 하죠. 


재미있는 건, 제 작품을 보는 분들은 눈으로 빛을 감상하지만 정작 작품을 만들어 낸 저는 ‘귀’로 작업한다는 겁니다. 유리 깎아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느 정도 깎였는지 짐작을 해요. 음악 듣는 느낌으로요.


다이아몬드 그라인더로 유리를 갈아내면서 하는데 이 소리가 거칩니다. 예전에는 작업을 하도 계속하다 보니 귀가 먹먹해져서 일시적으로 소리가 잘 안 들린 적도 있습니다. 집에서 TV를 보는데 유리 갈 때 나던 소리와 TV소리 주파수가 딱 맞는 순간 귀가 아픈 적도 있었고요.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예술을 하시는 입장에서 예술가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상민 예술가는 대중보다 한 발짝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작가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고… 보편적인 것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고 재해석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고 사회참여를 해야죠. 혼자서 작품만 완성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작가는 자기 작업을 설명해야 하고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승헌 저 같은 경우 캔버스에 한 번 색을 칠하면 마르는 데 8시간 정도 걸립니다. 오늘은 다 칠했으니 좀 말린 다음 내일 마무리 해야지, 하고 다음 날 작업실에 가 보면 그림 위에 나방이 딱 앉아 달라붙어 있고… 그럼 또 다시 칠해야 하지요.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의 연속이기에 저는 예술이라는 게 일종의 ‘운명’에 달린 거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재미있는 게, 사실 이번에 전시하려다 뺀 작품이 하나 있거든요. 유행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보니 이 색이 올해 유행하는 색으로 뽑혔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유행을) 노리고 만든 것처럼 보일까 봐 이번에는 전시하지 않았습니다만(웃음). 제가 추구하는 자연의 색상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현대적이라는 평을 받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대중과의 소통, 사물의 본질에 대해 종일 생각한다는 두 작가에게 현대미술 감상 포인트를 묻자 ‘편안하게’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현대미술에 관심은 있는데 어떻게 감상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는 관객이라면 이들의 귀띔을 참고해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저는 현대미술이 ‘시각의 시(詩)’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를 읽는다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시면 충분합니다. (신승헌 작가)
예전에 독일에 갔다가 전시를 봤는데 작품 옆에 아예 레이블이 없었어요. 왜 안 붙였냐 물었더니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보고 즐겨달라’ 하더군요.

제목 칸에 ‘무제’라고 적힌 작품이 많은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미술 작품에는 물론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관객이 즐겁게 노는 게 제일 우선이라고 봅니다. (이상민 작가)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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