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 5번이나 반품해 주신 고객 볼 낯이 없었는데.."

조회수 2019. 7. 8. 15: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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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공장화재 딛고 일어선 기업 '젠틀리머' 노광수 대표

‘메모리폼 베개가 좋다는데, 세탁을 할 수 없다고?’

2006년 베개 공장에 방문한 사업가 노광수 씨는 붕어빵 만들 듯 틀에 원료를 붓고 찍어내는 베개 제조현장을 보고 말 그대로 한 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메모리폼 베개는 형태복원력이 우수한 것이 장점이었지만 물이 들어가면 건조가 잘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씻어 쓸 수 있는 메모리폼 코팅 베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10여 년 간 역경을 이겨내며 달려온 (주)젠틀리머 노광수 대표는 “우리 회사는 청년들이 살렸다”며 웃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젠틀리머 대표 노광수 인사드립니다.

원래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오대양육대주를 누비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바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1989년에 회사를 설립했고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있는 오래된 기업들과 활발하게 거래했죠.

2006년에 체형 관리 기구를 만들려고 베개 공장에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베개 만드는 과정을 봤어요. 틀에 원료를 붓고 찍어내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봤는데, 메모리폼에는 물이 들어가면 건조가 되지 않아 세탁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폼은 일종의 스펀지라서 그 안에 세균, 진드기, 곰팡이 같은 균이 살기 좋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세탁을 할 수 없다니 충격이었죠. 전체를 코팅한 베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하신 것처럼 잘 되던가요.

아뇨. 5개월에 걸친 기다림 끝에 특수 주문한 기계가 공장에 도착했는데 그 날 바로 사고가 났습니다. 3개월 후 다시 기계를 받아 제품을 만들었을 때는 힘없이 찢어지는 베개가 만들어졌고요. 코팅 재질이 약해서 갈라져 버렸습니다. 이후 전국 페인트, 실리콘 공장, 화학약품 관련 교수님, 연구소를 찾아 다니며 베개 코팅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100% 마음에 드는 베개를 만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코팅 재질이 딱딱하거나, 충전재의 탄성이 너무 강하거나, 코팅의 접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 등이 보였습니다.

코팅 베개를 최초로 만들다 보니 벤치마킹을 할 곳이 없어 문제가 생겨도 상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제 발을 믿고 해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지요. 해법을 찾으면 그에 맞게 기계를 구입하거나 새로운 금형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코팅 베개는 어떤 원리인가요?

베개를 코팅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베개가 찢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찢어지지 않는 소재로 코팅하는 게 관건이었지요. 여러 소재를 찾다가 TPU를 발견했습니다. TPU는 자기 부피의 5배까지 늘어나는 신장률과 복원력을 갖춘 소재입니다. 그래서 TPU로 베개를 코팅하고 나니 아무리 잡아당겨도 찢어지거나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방수율이 100%라 씻을 수도 있지요.


'처음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며칠 써보니 숙면했다'는 후기가 많더라고요.
 
베개에 머리를 대면 닿는 부분이 크게 두 군데입니다. 뒷목과 뒷머리지요. 이때 머리의 무게 중심이 뒷목에 쏠리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뒷목이 뻣뻣합니다. 반대로 뒷머리에 쏠리면 머리가 뻐근하고 무거운 느낌이 듭니다. 좋은 베개는 뒷목과 뒷머리의 균형을 맞추어 머리의 무게를 똑같이 분배하게 해서 숙면을 취하게 돕습니다.

젠틀리머는 이 원리를 이용해 뒷목과 뒷머리의 균형점을 잡아줍니다. 그래서 베개를 베면 머리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져 편안하고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최종 성공작을 만드셨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성공과 실패를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니 막상 완벽한 성공을 이뤘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하하.

SNS를 통해 젠틀리머 베개가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는데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2017년 5월에 사무실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에서 띠링 띠링하고 소리가 계속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1년에 100개가 나갈까말까 하던 베개 주문이 그야말로 물 밀듯 밀려왔습니다.

알고보니 한 고객님이 트위터에 젠틀리머 베개를 써보니 좋다는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의 리트윗(공유) 수가 늘어나면서 주문도 같이 오른 것이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영업 목적을 갖고 글을 올리면 사용자 분들이 곧바로 눈치를 채십니다. 순수한 청년들이 저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올린 글이라 그것을 믿고 구매하시지요. 그렇게 구매하신 분들이 다시 좋은 후기를 트위터에 올려주시는 게 반복되면서 젠틀리머 베개가 확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청년들이 살린 베개지요.

제품의 진가를 알아본 청년들의 입소문 덕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실감한 노 대표. 하지만 밀려드는 주문에 행복해하던 시간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지난 해 1월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기계, 자재, 제품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불탄 공장 사진을 올리며 고객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기꺼이 기다리겠다”, “건강 챙기며 일하시라”는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거래처들도 대금 지불기한을 연장해 주었습니다. 노 대표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공장을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더욱 힘을 냈습니다.

겨우 화재 피해를 복구했으나 이번에는 제품이 문제였습니다. 고객에게 보낼 때는 멀쩡하던 베개가 사용한 지 2~3일만 지나면 반쪽으로 쪼그라드는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우리 회사 믿고 귀찮은 반품 5번이나 해 준 고객님... 면목이 없었습니다.
산 넘어 산이었네요.


네. 저희를 믿고 귀찮은 반품을 5번이나 해주신 고객님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좋은 뜻으로 저희를 응원해주신 고객님들도 이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료 공급 회사 연구원과 공장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불량 원인을 찾아봤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창고 한 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베개를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옆에 있던 드라이버로 베개를 내리치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때 제 곁에 있던 직원이 "사장님, 베개가 다시 부풀어 올라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쪼그라든 베개들을 드라이버로 찌르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알고보니 불량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베개의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였습니다. 구멍을 내어 이 온도차를 맞추자 수축된 베개가 본래의 모습을 찾은 거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개에 에어캡을 부착했습니다. 에어캡을 열고 닫을 때마다 베개가 수축하고 다시 부풀어오르니 여행을 떠나거나 밖에서 잠을 자야 할 때 휴대하기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게 된 노 대표는 펀딩을 오픈한 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900여 명의 서포터를 모았습니다.

그는 “펀딩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컨테이너 창고에 앉아 스티로폼을 깎고 있었을 것”이라며 고객들 덕에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은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와디즈에서 성공적으로 펀딩을 진행한 젠틀리머는 곧 중국과 대만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을 열 예정입니다.


앞으로 젠틀리머를 어떤 기업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젠틀리머는 세계 최고의 침구류 회사를 꿈꿉니다. 앞으로 침구 문화의 패러다임은 서서히 바뀔 것입니다. 안전과 세탁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침구류를 개발해 모두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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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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