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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선수들과 함께하는 '가이드 러너'

조회수 2019. 6. 28. 18: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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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업! 좋아!”

시각장애인 선수들의 숨은 조력자 ‘가이드 러너’를 아십니까?

스피드가 생명인 알파인 스키 경기 현장. 형광 조끼를 입고 앞서 스키를 타는 선수가 뒤따라 오는 선수를 계속 확인한다. 순위를 다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니다.


고요한 경기장에 “하나, 둘, 셋, 업! 좋아!”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두 선수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결승전까지 함께 힘차게 내려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시각장애 선수의 힘이 되어주는 '가이드 러너'다.

출처: 사진 | 고운소리

평창 패럴림픽 때 양재림 선수의 가이드 러너였던 고운소리(25)는 비장애인 알파인 스키 상비군 선수 출신. 12년 동안 스키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후배들에게 따라 잡히는 두려움과 치열한 경쟁에 벗어나고 싶을 때쯤 가이드 러너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저게 진짜 스키지”

고 선수는 지난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 당시 장애인 알파인 스키 경기를 우연히 보게 됐다. 왼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은 10분의 1 정도만 보이는 양재림 선수는 비장애인들도 타기 힘든 스키를 거침없이 탄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지? 대단하다! 저게 진짜 스키지!”


강렬했던 첫 인상은 시간이 흘러 양재림 선수의 가이드 러너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인연으로 이어졌다.

출처: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365중 300일을 함께 생활하다”

가이드 러너는 선수를 돌봐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수의 사소한 습관까지 모든 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운소리는 3년 동안 양재림 선수와 함께 생활 패턴을 맞추며 함께 지냈다. 365일 중 300일 넘게 붙어 지내며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되자 친자매 같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찰떡 호흡’은 이렇게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혼자 스키를 타면 너무 고요해요.”
출처: 사진 | 고운소리

너무 오래 경쟁 속에 있었던 것일까? 선수로서 혼자 스키를 탈 때는 고요한 중압감이 있다. 모두가 스타트 선에 있는 선수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가 들킬 것 같은 두려움과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몰려온다. 외로운 싸움은 출발과 동시에 시작된다.


하지만 가이드 러너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스키를 탄다. 오롯이 선수에게 신경을 집중하게 되어 외적인 부담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떤 라인으로 내려오면 선수가 더 빨리 내려올 수 있지?’를 고민함과 동시에 뒤따라 내려오는 선수가 잘 탈 수 있도록 신호와 격려를 보내며 스키를 타기 때문이다. 결승선도 둘이 함께 통과한다.

“우리는 톰과 제리”

붙임성이 좋은 그는 항상 먼저 다가가 장난치고 잽싸게 도망간다. 또 그런 그를 잡으러 가는 양재림 선수. 그 모습을 본 감독님이 붙여준 별명이 ‘톰과 제리’이다. 고운소리는 마치 앞서 스키를 타는 가이드 러너와 그 뒤를 따라 타는 선수의 모습과도 같아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톰은 제리를 잡으려고 뒤쫓아 오잖아요. 더 빨리 쫓아 오게 하려면 제리로서 항상 더 놀리고 잘 도망쳐야 했어요.”

출처: 사진 | 고운소리
“가이드러너, 나도 할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친구랑 같이 전화하면서 스키를 탄다고 생각하면 돼요.”

기술적인 부분 보다 선수와의 호흡이 더 중요하기에 스키를 탈 줄 안다면 가이드러너 일 또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패럴림픽에서 시합을 뛰는 사람들 중 유일한 비 장애인은 가이드 러너이다.


패럴림픽 참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는 고운소리. 성화봉송을 한 개회식 당일이 생일이었다는 그는 “큰 초를 붙여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생일을 보냈다”며 웃었다.


장애인 선수들의 축제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며 자부심도 느꼈다는 고 선수는 “패럴림픽 자체가 저에게 엄청난 선물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고 말했다.

이민선 동아닷컴 인턴기자 dlab@donga.com
정리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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