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리려고 서울 왔다가 6년 동안 '까대기' 했어요"

조회수 2019. 7. 1.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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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는 택배 상하차를 의미하는 속어다. 그 일을 하는 사람 또한 까대기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종철 작가는 그 일을 6년간 했다. 처음엔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 졸업 후 만화가의 꿈을 품고 서울에 왔다. 2012년, 그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다.


방값, 생활비를 내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 나가려면 ‘알바’를 해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까대기다. 근무시간이 짧고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1000~2000원 많았다. 아침 7시부터 네댓 시간 정도 일하면 한 달에 80만 원쯤은 벌 것 같았다.


“그 외 시간에 만화를 그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집 근처에 까대기 모집 업체가 있어 바로 찾아갔죠.”

출처: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동아일보DB

‘지옥의 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역시나 힘들었다.


“화물차 한 대에 실려 있는 물건이 많게는 1000개가 넘어요. 생수, 타이어, 자전거, 냉장고, 어항, 운동기구 등 별게 다 있어요. 저는 그걸 일일이 바닥에 내리는 일을 했습니다. 아침 몇 시간 반짝 일하는 건데 왜 까대기 시급이 높은지 조금만 일해도 곧 알 수 있어요”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도 가까이서 접했다 .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택배기사 한 명이 쌀 포대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 쓰러졌다. 주변엔 동료들이 있었지만 다 배송을 나가는 처지라 대신 병원에 데려가주지도 못 하는 상황 .

“그때가 가을이라 택배 물량이 정말 많았거든요. 당일 배송 약속을 못 지키면 문제가 생기니까 오래 알아온 동료가 아파도 옆에 있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다친 기사님을 ‘빠레트(팔레트. 화물 운반판)’에 눕혀두고 각자 차를 몰고 나가시더라고요. 얼마 지나 구급차가 다친 분을 실어갔어요”


허리를 다쳐 쓰러진 택배기사는 다음 날도 초췌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이 작가는 택배 상하차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는데 6년이나 이 일을 했다. 이 작가는 문득 “이곳에서의 삶을 만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까대기를 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까대기 현장에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 등을 매일매일 기록했다.


작년 2월, A4용지로 270쪽 분량에 이른 기초 원고를 토대로 작품 기획안을 써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다양성만화지원사업에 제출했다. 그리고 화물트럭에 봄 작물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그의 아이디어가 지원 대상으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덕에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는 까대기를 그만두고 만화 작업에만 매달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올해 5월, 이 작가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 만화책 ‘까대기’가 돼 세상에 나왔다.


그에 따르면 화물트럭을 채우는 물건은 계절을 경계로 확확 바뀐다. 이 작가의 꼼꼼하고 재치 넘치게 이를 묘사했다.


“‘나 힘들게 살았어’ 하는 얘기 하려고 만화를 그린 게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우리가 받아 드는 택배 하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라고 했다. 


택배 시장의 제1수칙은 ‘파손 주의’다. 사람이 다칠지언정, 물건은 다치면 안 되는 세상,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온몸으로 빗줄기를 막아 물건이 젖지 않게 지켜야 하는 세계.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소중하다는 걸 만화 ‘까대기’를 통해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 원문: 신동아 <화제의 만화 ‘까대기’ 작가 이종철(송화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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