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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동화작가들이 말하는 요즘 초딩들의 '현실연애'

조회수 2019. 5. 20. 10: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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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이를 키워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연인들의 기념일’이 다가오면 초등학교 교실도 북적북적 떠들썩해진다. 좋아하는 아이의 교실로 호기롭게 찾아가 멋지게 무릎 꿇고 장미꽃을 내밀며 고백했지만 바로 차였다는 어느 집 자식 이야기가 봄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요즘 아이들은 빠르다. 성장발육 속도뿐만 아니라 이성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도 전보다 빨라졌다. 휴대전화 때문에 성에 대한 정보와 영상에 노출되기도 쉬워 자칫 잘못하면 불건전한 이성교제에 빠질 수도 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성(性)과 연애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다.


‘책고래’ 출판사의 엄마 동화작가들이 초등학생 로맨스 동화 시리즈를 펴낸 것도 이 때문.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같은 고민을 하던 차에 자녀들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건강하게 이끌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책을 내게 되었다고. 현재 시리즈 7권 중 3권이 출간된 초등학생 로맨스 동화에는 아이들의 가슴 뛰는 첫사랑, 친구들 사이에 얽힌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담백하게 담겨있다.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사를 방문한 책고래 출판사 ‘초등학생 로맨스 동화’ 시리즈 작가들. 왼쪽부터 한유진 작가, 김수정 작가, 우현옥 책고래 출판사 대표, 이지선 작가, 정설아 작가, 정주일 작가. 촬영=권혁성 PD hskwon@donga.com

● “요즘 애들, 조숙해 보이지만 아이는 아이”

동화 ‘내 마음의 높은음자리(정주일 글/최신영 그림/책고래)’의 저자 정주일 작가는 남자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 봤을 ‘연상의 누나를 향한 설렘’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었다. 지금은 고등학생으로 훌쩍 커 버린 아들이 스토리의 힌트를 줬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갑자기 ‘우리 집에서 누구 좀 재워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아는 누나가 온라인으로 만나 사귀는 남자애라고 하더군요. 이 남자애가 지방에 사는데, 여자애가 자기 집에서 재우는 건 안 될 것 같으니 우리 아들에게 부탁한 거예요. 자기 남친 좀 재워 달라고. ‘요즘 애들은 이렇게 어릴 적부터 원거리 연애도 하는구나’ 싶어 놀랐습니다. (웃음)”


부모 세대와는 연애의 속도도, 방법도 달라진 아이들. 그렇다고 마냥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엄마 동화작가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동그라미 바이러스(한유진 글/최신영 그림/책고래)’를 쓴 한유진 작가는 “조숙해 보이지만 별다를 것 없다. 애들은 그냥 애들”이라며 귀여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드라마처럼 사귀던 동네 커플이 졸업 기념으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엄마들은 내심 걱정하면서도 쿨한 척 보내 주었죠. 그런데 두 시간쯤 지나니 이 녀석들이 각자 집에 돌아왔더라고요. 싸운 것도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영화만 보고 안녕 잘가~ 하고 귀가한 거예요. 애들은 순수한데, 엄마들만 온갖 상상을 하며 맘 졸였던 거죠.”

출처: 책고래 출판사

● 이성교제 금지? 사랑하는 감정이 아이를 키웁니다

두근거리는 감정이 오가는 가운데 아이들은 인간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공현우 리스트(출간 예정’ 저자 이지선 작가는 “순수한 순간이 아이들을 성장시킵니다. 사랑이 아이들을 키웁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5학년 남자아이가 연애박사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백의 7단계’를 배운다는 내용의 동화 ‘고백하는 날(출간 계정)’을 쓴 김수정 작가 역시 “애들도 자라면서 달라진다”며 웃었다.


초등학생들 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처음 그 마음(출간 예정)’ 저자인 정설아 작가는 유치원생 딸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둘째가 여섯 살인데, 유치원 새 학년이 되자마자 ‘엄마, 우리 반에 되게 잘생긴 애가 들어왔어. 걔가 좋아’ 하더라고요. 한글도 잘 모르는 애가 그 남자애에게 줄 편지를 써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사실 첫사랑이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니죠. 나도 모르게 감정이 확 떴다가 훅 가라앉았다 하고요. 엄마로서 아이에게 ‘네가 느끼는 감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커 가는 과정이지’라고 힘을 주고 싶어요.”

● “안타까운 일 막으려면 부모와 아이 간 소통이 중요”

출처: 책고래 출판사

풋풋한 첫사랑을 겪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이 많지만, 어린이들의 이성교제가 마냥 귀엽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왜곡된 성 지식과 정보에 노출돼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지선 작가는 “오랫동안 돈독한 사이였던 두 가족이 있었다. 두 집 모두 평범한 가정이었고 부모들끼리, 각 집안 아들딸끼리 친하게 지냈는데 초등학생인 여자 아이가 임신을 했다”며 무거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웃이 모여 즐겁게 노는 자리, 어른들이 ‘조용히 놀아라’ 라며 무심코 건네 준 스마트폰이 화근이었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 어린 나이에 잘못된 성(性)지식을 갖게 된 아이들. 어른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다.


정설아 작가는 부모가 아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과 방임하는 것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성친구와의 대화에 함께 끼어들어 소통해야 한다는 것. 책고래 출판사를 이끄는 우현옥 대표는 “이런 일들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건강한 로맨스 동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로맨스 동화는 활자보다 영상과 더 친한 요즘 아이들의 취향을 고려해 웹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책고래 출판사는 영상미디어 업체 라우더TV와 손잡고 20분 분량의 웹 드라마 열 편을 만들었다. 어린이들이 연기한 어린이 로맨스 드라마 ‘내 마음의 높은음자리’는 포털 및 동아닷컴 VODA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CA3: 내 마음의 높은음자리 EP1. 시작

우현옥 대표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을까’가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관계 맺기를 잘하는 아이들이 사회 나가서도 잘 적응하고, 좋은 어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는 ‘여성혐오’나 ‘남성혐오’도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 문제 중 하나다.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이 첫발을 잘 내딛을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출처: ⓒGettyImagesBank

◇ ‘동화작가’로 일해보니…


“작품을 집필할 때 동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아이들의 세계에 곧잘 빠져들기도 합니다. 인물을 정하고 사건을 만들면서 지금의 아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릴 적의 나와 마주하기도 하지요.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일은 어른인 제게도 내적 성장을 가져다 줍니다. 동화를 쓰는 일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어주기도 해요. 작가로서 또 엄마로서 세상을 바로 살아갈 지혜를 얻습니다.” (한유진 작가) 


“작품을 쓸 때 관찰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한 작품 쓰고 나면 성장하는 느낌입니다. 일기라면 내 마음을 토로하면 되지만, 작품은 설득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물들 입장에 왜 그랬을까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지요. 아이들도 동화를 읽고 나 아닌 다른 인물들을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쓰면서 아이들 마음속을 헤아려 보면 이상하게 믿음이 생깁니다. 결국은 이 모든 걸 이겨내고 잘 자랄 거라는 믿음이요. 어른으로서 작가로서 할 일은 가르치고 간섭하려 들기보다는 지켜봐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정주일 작가) 


“동화는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 미워하거나 분노에 사로잡히면 쓰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이 정화되고 건강해져야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영혼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동심을 회복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남준혁 멀리하기 규칙’의 정진 작가)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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