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은 '메이크업 달인' 스님, 화장으로 중생 이끈다?

조회수 2019. 3. 6.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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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혼자 있을 때의 나, 직장에서의 나, 편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또 조금씩 다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보이는 법이니까요.


일본 스님 니시무라 코도(西村宏堂·30) 씨는 승복을 입고 있을 때는 누가 봐도 수수하고 온유한 스님이지만 화장대 앞에 앉으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처럼 변신합니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입니다.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차림까지 갖춘 니시무라 씨를 보고 종교인이라는 직업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출처: 니시무라 코도 씨 인스타그램

‘화장하는 스님’으로 수 년 전부터 유명세를 얻은 니시무라 씨는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을 오가며 불법(佛法) 과 메이크업을 동시에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17년 불교 전문매체 트라이시클(tricycle)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기의 환경 변화가 오늘날의 자신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도쿄 시내 절의 주지스님(일본 불교에서는 승려도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있음)이었습니다. 절에서 자랐지만 승려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던 니시무라 씨는 18세에 미국 매사추세츠 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금발에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학생들, 헤라클레스 같은 근육질 몸매에 시원시원하게 생긴 남학생들을 보며 그는 ‘키 작고 눈도 작은 나는 정말 못났구나’라는 부정적 감정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생긴 니시무라 씨는 화장으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바꿔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솜씨는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곧 여자 친구들에게 화장을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확 달라진 자기 얼굴을 보며 좋아하는 친구들 반응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이후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다니는 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 보조 일을 하며 실전 경험도 쌓았습니다.


자신과 남의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 푹 빠져 있던 그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화두’가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왜 남에게 친절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생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떨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뒤 2년간 ‘집중 교육’을 받은 니시무라 씨는 26세에 정식으로 승려가 됐습니다.

스님이 되었으니 겉모습을 가꾸는 등 세속적인 가치는 내려놓았을 것 같지만 니시무라 씨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그는 “불교는 각 나라 환경에 맞춰 조금씩 형태를 달리한다. 일본에서는 승려가 제2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아는 스님 중에는 의사, 감독, 학자인 분들도 있다”며 다양한 직업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니시무라 씨는 지금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패션쇼에 참여하는 모델들을 멋지게 꾸며주는가 하면 미스유니버스, 미스USA등 셀러브리티들이 참여하는 자선행사에 참여해 재능나눔 활동도 합니다.

승려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경험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니시무라 씨는 “성소수자(LGBTQ)를 위한 메이크업 세미나를 열었을 때”라고 답했습니다. 니시무라 씨 본인이 성소수자, 승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기에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강의를 통해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 노력합니다.


“제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이기는 하지만, 매일 화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할 때만 하면 됩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도 늘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외적인 미(美)는 어디까지나 미디어나 사회가 만들어 낸 가치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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