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지키는 유일한 한국인 신부

조회수 2019. 1. 3. 13: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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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레온 주 ‘라바날 델 카미노’ 베네딕도 수도원의 인영균 신부(53). 그는 산티아고 순례 길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신부입니다.  

1000년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구원을 찾아 걸었던 이 순례 길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스페인 식 이름은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합니다. 특히 프랑스 남부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목적지에 이르는 800여km 길은 ‘프랑스 길’로 불립니다.


인 신부가 활동하는 수도원은 목적지의 3분의2 지점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중구 분도회관에서 만났습니다.

출처: ⓒGettyImagesBank

'프랑스 길'은 다른 코스와 달리 영적인 길로 불린다는데요.

 

“9세기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기적적으로 발견된 뒤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영적 힘에 끌려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이 길에서는 과거 순례자들의 신앙은 물론 고통과 땀,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하느님을 믿든 안 믿든, 많은 순례자들이 놀라운 것들을 체험합니다.”


수도원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현재 스페인과 독일 신부, 베네수엘라 출신 수사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5~10월까지 순례자의 집을 운영하며 숙식을 제공하는데, 이용자는 여건에 따라 비용을 기부하면 됩니다. 기도와 함께 원하면 상담을 해주고 있어요. 숙박 조건은 이틀 이상 묵는 것입니다.”


왜 이틀 이상 머물러야 하나요?


“우리 수도원은 전체 여정에서 3분의2 지점에 있어요. 순례를 처음 시작할 때는 걷는 게 힘들지만, 걷다 보면 관성이 붙어서 몸이 계속 앞으로 가려고 해요. 그럴 때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대화로 나누며 ‘큰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순례하면서 놀라운 체험을 했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순례자는 자기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신분이 ‘순례자’로 바뀝니다. 국적, 종교, 나이, 성별, 직업, 빈부 모든 게 다 관계없지요. 순례 길에서는 신앙적 체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놀라움을 만날 수 있어요. 언어가 달라도 대화가 되고, 다리를 다치면 누군가 치료를 도와줍니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유 없는 친절이 순례자이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한국인 순례자는 자주 만나시나요.


“네, 거의 매일 만났습니다. 절반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나머지는 개신교와 불교 신자분, 신앙이 없는 분들 등 다양했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너무 바쁩니다. 순례는 무작정 걷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아직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선물’로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 길에 맡기면 됩니다.”


특히 한국인 순례자들이 계획적일 것 같아요.


“(웃으며) 아마 오랜 습관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그룹으로 오지 말라, 목표 세우지 말라, 만남과 헤어짐에 두려워하지 말라, 멈춰라, 이런 조언들을 자주 합니다. 그룹으로 오거나 뭔가 목표를 세우면 얽매이고 무리하기 쉬워요.”


순례자의 길을 지키는 인 신부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순례, 카미노(길)는 가짜”라고 말했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카미노’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길을 찾는 기회가 될 겁니다. 비 신앙인이라면 삶의 근본적 이유나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찾는 기회일 거고요. 내가 내 힘으로만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걸 느끼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 이 글은 동아일보 김갑식 문화전문기자의 <‘산티아고 순례길’ 지키는 유일한 한국인 신부…“목표 세우지 말고 길에 맡겨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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