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게 '옷 디자인' 시켜 2억5000만원 모은 패션 회사

조회수 2018. 11. 13. 16: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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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하나를 만드는데 수십 명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모으는 회사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전문 디자이너도 아닌 아마추어입니다.


참견하는 사람이 많으니 디자인이 산으로 가지 않냐고요?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집단지성’으로 태어난 옷이기에 더욱 재밌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오늘의 주인공, 소비자들에게 의견을 묻고 옷을 만드는 회사 플립(FLIP)입니다.

소비자가 만든 제품은 소비자가 알아볼 거라고 믿었어요.
신세계인터내셔날 사내벤처팀 플립

플립은 대기업인 신세계인터내셔날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마케팅팀에서 캐주얼 마케팅을 담당하던 조홍준 디렉터가 만든 사내 벤처죠.


그는 ‘메이커스’라는 책을 읽고 머지않아 공급자(회사) 중심이었던 유통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던 기존 흐름이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고, 널리 알려 자연스레 구매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로 변화할 것이라는 거였죠.


그때 조 디렉터의 머릿속에 ‘누구나 한 번쯤 내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발전시켜 ‘소비자가 직접 만드는 옷’이라는 아이디어로 사내벤처 공모전에 도전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통찰한 덕분에 플립은 사내벤처에 선정됐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소비자를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소비자와 함께 디자인 하는 플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패션 매거진, 패션 동아리, 광고 홍보 동아리와 행사를 열기도 했고, 사업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플리퍼’ 라 불리는 소비자 그룹을 모아 아이디어를 나누고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노를 젓는 사공이 많아지면 산으로 갈 수도 있지 않냐는 물음에 조 디렉터는 “균형을 맞추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합니다. 그는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하고 싶지만 모든 기능을 다 담으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샘플을 보며 의견을 주고 받고 있다

플립에서 보편적인 형태의 목업 샘플을 만들어 공개하면 수많은 플리퍼들이 자신의 의견을 추가합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후보를 추리고 최종 제품 디자인이 결정되는 방식이지요.


이에 대해 조 디렉터는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들었지만 집단지성을 활용한 덕분에 그만큼 새롭고 세련된 디자인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코워킹스페이스, SI랩

집단지성이 활용된 것은 디자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홍보부터 출시까지 모든 과정을 소비자와 함께 했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운영하는 코워킹스페이스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플리퍼를 뽑아 홍보 기획, 제품 이미지 촬영, 콘텐츠 제작, 마케팅을 진행했습니다. 광고대행사 대신 소비자, 즉 플리퍼들과 함께한 홍보인 거죠.

플립 펀딩 화면

또 플립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제품 출시를 밀어붙였습니다. 사실 패션 산업의 경우에는 구매할 때 감성적인 부분이 중요합니다. 어떤 브랜드에서, 어떤 디자이너가 만들었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때문에 펀딩 오픈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옷을 누가 사겠냐”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만든 제품이니 소비자가 가장 먼저 알아봐 줄 것’이라는 플립의 믿음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펀딩 오픈 한 달도 되지 않아 2억5000만 원이 모여 원래 목표했던 금액의 5000%를 넘게 달성했습니다. 펀딩 기간이 끝난 지금까지도 앵콜 요청이 이어질 정도라고 합니다. 인지도가 없던 브랜드로서는 큰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디자인에 맞는 원단을 고민하는 직원들

플립은 집단지성을 활용한 제품 개발과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한 제품 출시가 기업과 소비자, 나아가 환경에도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1년에 만들어지는 옷의 60% 이상이 쓰레기로 버려져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미리 주문을 받고, 모인 수량만큼 만들어 팔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고,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러한 ‘선(先) 주문’ 개념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플립은 국내에서도 이를 활성화시키려면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해야 해요. 이제 최저가만으로는 소비자를 사로잡지 못해요.

조 디렉터는 상호 신뢰를 위해 “기업이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브랜드가 빛을 보기 시작하면서 현명한 소비자들은 최저가의 대가가 결국 소비자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면서 “정직하게 만든 제품을 정당한 가격에 주고 교환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플립은 앞으로도 옷을 만드는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와 더욱 활발하게 소통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품을 출시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정리=‌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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