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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나이에 쪽잠 자며 일하지만 행복합니다"

조회수 2018. 10. 10. 15: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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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같으면 은퇴해서 노후를 즐길 나이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일하지만 마냥 행복하다는 여성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훔볼트에서 노숙자 재활 쉼터를 운영하는 중국계 미국인 베티 콴 친(Betty Kwan Chinn)씨입니다. 베티 씨는 20년 넘게 노숙자들을 도운 공로로 지난 2010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 못 자며 일하지만 피곤한 줄 모르겠다는 베티 씨. 작은 체구에서 솟아 나오는 ‘호랑이 기운’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10월 4일(현지시간)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낯선 사람들이 보여 준 친절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출처: 베티 콴 친 씨. 사진=bettychinn.org

유복한 집안에서 12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베티 씨는 1960년대에 벌어진 문화혁명 탓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이자 서양 학문을 가르치던 교사였고 종교까지 있었던 베티 씨의 어머니는 곧바로 숙청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전체가 ‘불순분자’로 지목되자 아직 어렸던 베티 씨는 목에 ‘악마의 자식’이라고 쓴 판을 걸고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죠. 저는 제 생일도 모릅니다. 그렇게 홍콩을 거쳐 가까스로 미국에 오게 됐고,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났어요.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날 보고 웃어주는 경험을 처음 했거든요.”


마오쩌둥의 공포정치 하에서 고통 받다가 미국에 와서 희망을 찾은 베티 씨는 다른 형제들과도 재회하고 가정도 꾸리며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됐지만 어린 시절의 아픔을 결코 잊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반 친구 중 한 명이 집 없이 노숙하는 여자아이였어요. 밥 먹을 때마다 빤히 바라보는 게 안쓰러워 자기 도시락을 나눠 줬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요리를 할 줄 알잖아!’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출처: 지난 2014년 TED 강연중인 베티 씨

그 이후 노숙자를 돕기 시작한 베티 씨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노숙자들에게 식사는 물론 의료서비스와 교육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는 시간도 아껴 가며 무급으로 일하지만 노숙자들의 삶이 달라져 가는 걸 보면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노숙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임시 거처를 하나 둘 만들다 보니 어느 새 작은 마을만한 규모가 됐다는 베티 씨. ‘비상 대피소(Emergency Shelter)’라고 불리는 이 시설에는 24시간 상주하는 관리담당자가 있으며 최대 90일까지만 머물 수 있습니다. 


시설에서 지내기로 한 노숙자들은 석 달 동안 숙식을 제공받으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자립할 길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베티 씨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자원봉사자들과 베티 씨. 사진=bettychinn.org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동네 분위기를 해친다”며 베티 씨의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길을 걷다 고함 소리와 조롱을 듣는 것은 예삿일이 된 지 오래라는 베티 씨. 그는 자기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 덕에 뜻을 굽히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근처 가게 사장님들 중 시설을 반대하던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최근 후원금을 보내셨어요. ‘당신이 노숙자들에게 무작정 퍼 줘서 오히려 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을 진짜로 끌어올리고 있었군요’라면서요. 행복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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