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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 챙기기=사회생활? 난 결혼식 안 간다

조회수 2018. 10. 5. 07: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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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정도 됐나? 가족 또는 그에 준하는 사람의 결혼식 외엔 찾지 않고 있다. 잠깐 인사하고 밥 먹는 게 고작인 행사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다. 축의금도 안 보낸다. 그 몇 푼이 악순환의 씨앗이니까. 


줬으면 돌려받길 바라고 받았으면 갚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우리의 혼례 문화가 비대해진 건 결국 그 심리 때문이다. 

출처: ⓒGettyImagesBank

그래서 고리를 끊었다. 이전에 건넨 모두를 손실 처리함으로써 백지 상태로 초기화했다. 준 게 사라졌으니 받을 것도 없고, 받을 마음이 없으니 줄 이유도 없다. 혹 내가 결혼을 하더라도 내 지인은 부르지 않을 요량이다. 인사만 하고 헤어질 바엔 차라리 그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 결혼식장이 북적인다고 더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아버지가 여기저기 건넨 수천만 원의 축의금을 회수하는 데에는 협조해야 할 듯하다. 그것까지 거부하면 의절하게 될 테니. 자식이 결혼 않는 건 받아들일 수 있으나 결혼을 함에도 그동안 뿌린 축의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하는 건 용납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게 대다수 아버지의 솔직한 마음 아닐까? 오죽하면 아버지 은퇴 전에 결혼하는 사람이 효자·효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나.

● 지인들은 오히려 날 응원한다


지인들은 나의 이런 생각을 존중해준다. 결혼식에 안 와서 서운하다고 말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도리어 청첩장을 주는 것 자체를 미안하게 여기는 이가 더 많았고, 아예 나를 응원한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결혼하는 사람이 결혼식 안 오겠다는 사람을 응원하는 구도가 어딘지 우습다. 나의 이런 태도를 무슨 거창한 사회운동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그냥 싫어서 거부하는 것뿐인데.


상례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다만 혼례처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절친한 지인의 부모상 정도는 시간이 허락하면 조문하고 조의금도 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별다른 연락 없다가 소식을 전해온 소원한 친구, 일을 매개로 만난 사람 등의 상가까지 찾거나 조의금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런 걸 사회생활로 여기는 풍토에 동조할 의향이 없다.

출처: ⓒGettyImagesBank

● 집안 명절 제사도 없앨 것


제례는 다소 복잡하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집안의 문제니까. 내 친가는 경상북도를 근거로 하는 보수적인 가풍의 집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마다 여섯 집을 돌아다니며 제사를 지냈다. 여자가 상을 차리면 남자가 제사를 치르는 집안의 전형. 세대가 바뀐 지금은 자기 집 제사만 챙기는 쪽으로 간소해졌다.


시간이 흘러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난 불효자식이기에 명절 제사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기일 제사도 최소화해 추모의 의미만 남기고자 한다. 지나간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을 중심에 세우고 싶다. 제사를 준비하고 치르느라 갈등 빚기보다는 평소 돈독하게 지내는 가풍을 지향한다.


다행히 관례는 걱정 않는다. 성대한 의식이 없기도 하거니와 나는 여기저기 얽매이지 않고 철없이 살고자 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두고도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할 것임을 안다. 누군가는 전통을 무시한다고 비판할 터. 하지만 이런 문화 갈등은 언제나 후대가 승자인 법이다.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


홍형진 소설가



※ 원문: 동아일보 - [2030 세상/홍형진]관혼상제 문화와 짜릿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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