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퇴-애 딸린 이혼녀가 어부 선단 이끌게 된 이유

조회수 2018. 9. 29. 14: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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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낙도, 오시마. 이곳에 일본 내에서 손꼽이는 어선단 ‘하기오시마(萩大島)’가 있습니다. 이 선단을 이끄는 츠보우치 치카(坪内 知佳·32) 씨는 약관 24살에 난폭한 바다사나이들의 세계로 뛰어들어 고심 끝에 언론도 주목하는 어선단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츠보우치 씨는 최근 저서 ‘험한 어부를 묶는 힘-아마추어였던 24세 전업주부가 업계에 혁명을 일으킨 이야기’(아사히 신문 출간)를 내고 드라마 같은 투쟁의 발자취를 공개했습니다. 


◆24세의 싱글 맘, 어부와 엉뚱한 주먹다짐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2010년 12월 츠보우치 씨는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낡은 다다미 집에 있었습니다. 비좁은 방에 있는 것은 생필품 외에는 컴퓨터와 프린터 1대 뿐. 츠보우치 씨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무언가 입력하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3살 아이가 있었습니다.


츠보우치 씨가 처음 하기의 거리를 본 것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그는 ‘이 마을에 오래 살게 될 것 같다’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하기에서 결혼해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그는 이혼한 싱글 맘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세 2만 3000엔(한화로 약 23만 원), 겨울에는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좁은 방에서 아이와 둘이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장 없는, 어촌구석 애 딸린 이혼녀…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래도 츠보우치 씨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엔 앞으로 개척해 나갈 미래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츠보우치 씨가 좁은 방에서 컴퓨터로 열심히 작성한 문서는 ‘종합화 사업 계획서’라는 서류였습니다. 당시 24살이었던 그는 작은 섬 어부들과 큰 혁명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부를 이끄는 선단장에게 찾아갈 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에이, 그만 됐어. 아가씨는 조용히 해. 우리가 당신에게 동조하길 바라나 본데, 인제 그만둬.”


이렇게 말하며 선단장 나가오카 히데히로 씨가 갑자기 일어서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츠보우치 씨는 나가오카 선단장이 못 가게 막으려고 그의 바람막이 점퍼를 꽉 잡았습니다. 그러다 옷이 쫙 찢어져 버렸습니다.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화가 잔뜩 난 나가오카 씨가 “웃기지 마!”라는 일갈했습니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여자라고 나름 조절을 하고 내민 주먹이지만, 츠보우치 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 됐어!” 질세라 선단장을 주먹으로 되받아 쳐버린 것입니다.


나가오카 씨의 안경이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져 크게 휘어져 버렸습니다. 나가오카 씨는 그 자리에서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귀신처럼 얼어붙은 남자. 얼굴에 있던 안경도 없어지고, 머리도 헝클어지고, 옷도 찢어져 바람에 펄럭거리고.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귀여운 데가 있었다고 합니다. 분노도 어디론가 날아버렸습니다.


“하하하”하고 츠보우치 씨가 웃기 시작했습니다. 선단장은 얘가 미쳤나 싶어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선단장님, 제가 새로운 점퍼랑 안경 사다 드릴게. 지금 사러 갑시다.”


맹수를 달래듯 조용히 다가가자, 나가오카 씨도 긴장이 풀렸는지 얼굴이 느슨해졌습니다. “그럴 거 없수.” 아이처럼 입을 뾰족하게 내밀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변머리 없고 성미가 거칠 것 같은 어부들도 천성은 온순하고 곧은 마음의 소유자라는 게 츠보우치 씨의 설명입니다.


이 후에도 두 사람은 수 없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화해할 이유는 단 하나, ‘같은 꿈’이었습니다. 섬의 미래를 위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맞서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츠보우치 씨와 어부들을 하나로 서서히 묶었습니다.


◆ 자연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원점 회귀하고 싶다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츠보우치 시는 하기오시마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알았습니다. 이 섬에는 편의점도 하나 없고, 변변한 식당도 없습니다. 어협에서 직영하는 구멍가게만 하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물건은 외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된장도 채소도 모두 사제. 거의 물물 교환의 세계에서, 물고기가 잡혀도 잡히지 않아도 사람들은 웃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부들은 “우리 섬 생선이 제일 맛있어. 이것이 일본 제일이다”라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항상 신선한 생선회를 큰 접시에 수북이 담아서 먹는 사치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삶이 부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운 적도 있다는 츠보우치 씨. 이혼이나 장래 문제로 고민하다가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결코 ‘폐사’하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웃고 살 수 있어.’ 긍정 에너지가 솟아올랐습니다.


◆ 나가오카 선단장의 마음을 잡은 1장의 난필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새로운 판로 개척을 시작한 지 2, 3개월 지났을 무렵의 일입니다. 츠보우시 씨가 출장을 가고 없는 사이 어부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꼭 항구에 붙어 있으며 어부들과 함께 물고기를 구분하거나 생선 상자 포장을 돕던 젊은 여자가 요즘은 거의 바닷가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상한 소문이 돈 것입니다.


“저 녀석은 요즘 하기에 조금도 머물지 않아. 자기 아이를 맡겨놓고 오사카에 놀러 다니는 거 아냐? 우리 일을 거든다는 데 뭘 한다는 거지?”


어부들 사이에 츠보우치 씨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생선을 잡는 일 외엔 몰랐던 어부들에게 신규 영업점 개척이나, 상담하러 뛰는 츠보우시 씨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12월 어느 날, 언제나처럼 사소한 일로 나가오카 씨와 말다움이 시작되었는데, 이날 따라 격앙된 나가오카 씨가 심하게 말했습니다.


“너, 감쪽같이 우리를 이용해 먹고 놀러 다니는 자식이야. 이제 우리만으로 되니까, 넌 필요 없어. 개척한 고객은 우리 거야. 손님 명단 두고 냉큼 나가!”


쌓인 불만이 폭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아, 그래. 알겠어. 하지만 잘 생각해. 앞으로 당신들, 이 정도 손님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츠보우치 씨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가오카 씨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중년의 어부는 눈앞의 젊은 여자를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기잡이 현장에서는 당연히 그가 으뜸입니다. 하지만 영업 현장은 다르죠.


나가오카 씨 입장에서 볼 때, 츠보우치 씨는 자신이 용돈 정도를 주는 사무원 여자에 불과했습니다. ‘언제부터 이 여자애가 이렇게 기어올랐나?’ 싶어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물며 대외적으로 여자애가 자신들의 대표로 나서는 것도 재미없는 일입니다.


“츠보우치. 이제 넌 필요 없어. 나가”

“알았다. 알았어. 좋을 대로 하세요.”

츠보우치 씨는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책상에 있던 A4 용지에 20건 가량 되는 고객 이름을 단숨에 휘갈겼습니다.


모두 츠보우치 시가 처음부터 개척한 고객입니다. 유명한 요리사나 명소인 식당만 골라 적었습니다. 거래처를 뚫기 위해 수도 없이 전화했기에 츠보우치 씨는 가게 이름도, 주방장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버릇도, 취향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써낸 뒤 “여기는 고등어를 넣으면 안 돼”, “여기는 도미를 좋아해”, “이 주방장은 낚시 이야기를 좋아해”, “여기에 생선을 보낼 때는 주인에게 꼭 연락을 넣어야 해” 등 세세한 설명을 넣었습니다. 그리곤 나가오카 씨에게 종이를 건네고 “난 이제 이만 섬을 떠날게”라며 나갔습니다.


츠보우치 시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나가오카 씨는 명단을 보고 ‘대성통곡’했다고 합니다.


그 명단은 츠보우치 씨가 반년 간 구두창이 다 헤져가며 발로 뛰어 만든 것입니다. “원래 거래하던 곳이 있으니 나가요!”라고 싸늘하게 문전박대해도 머리를 숙이고 식사까지 하고 나서 얻은 귀한 고객들입니다.


택시를 타고 다닐 경비 따윈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3만 보를 걸어서 거래처를 이동했습니다. 발톱이 깨지고 벗겨져 피가 났습니다.


피와 땀, 눈물의 흔적이 그 A4 종이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거래처 20건을 받을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나가오카 씨는 ‘여자애’의 노력을 알아챈 것입니다.


후에 나가오카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제 이 아이를 거스를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출처: 페이스북 @chika.sendanmaru

츠보우치 씨는 어부들과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2011년 3월 3대의 어선의 구성된 ‘하기 오시마 센단 마루’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츠보우치가 대표자로 어부들의 추천을 받았고, 판매 경로 및 신규 고객 파악, 제품 및 배달 서비스 운영 관리 등을 담당하며 사업을 키워나갔습니다.


이케지임(고기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물고기를 마비시키는 방법)을 고안해 잡은 물고기를 신선하게 포장 배달했습니다.


사업은 2014년에 지브리(GHIBLI Co., Ltd)에 통합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그 후 성장해 현재 약 60명의 어민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지브리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북부의 덥고 건조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츠보우치 씨는 어업이 “사하라 사막과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열정으로 바다로 나가기를 바라고” 회사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오시마에서 온 생선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높은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8시간 정도 걸리는 도쿄까지의 연속적으로 온도를 제어하는 ​​등 고품질의 갓 잡은 생선을 고객에게 직접 배달해 고객 수가 현재는 400곳으로 증가했습니다.


어부들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츠보우치 씨는 여행 사업을 시작하여 2016년 4월부터 1년 동안 약 400명의 관광객이 섬 투어를 다녀갔습니다.


“우리 섬에는 상가가 2곳 밖에 없습니다. 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섬이 부활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게 되면, 출산율 감소와 고령 인구 증가, 재해로 인해 활력이 사라되는 다른 지역에 힘을 실어 줄 것입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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