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헤집는 이집트 기독교인들 "더럽다고? 소중한 생계수단"

조회수 2018. 8. 16. 07: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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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모으는 사람' 자발린들

소형 트럭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은 비포장도로 위에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과 마차가 쉴 새 없이 오갑니다.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있어 차들은 수시로 덜컹거렸고 차가 흔들릴 때마다 짐칸의 쓰레기더미에서는 파리 떼가 일었습니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는 마을. 마치 마을 전체가 거대한 쓰레기봉투 속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시내 모카탐 지역. 이곳은 일명 ‘쓰레기 마을’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카이로 전역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를 모은 뒤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골라내 팔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검은 봉지에 담긴 온갖 쓰레기들을 일일이 손으로 헤집으며 비닐, 플라스틱, 고철 등 돈 되는 재활용 쓰레기를 가려내는 작업은 매우 고된 일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양, 염소 등 가축 먹이로 씁니다.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오른 8월 8일, 쓰레기 마을에서 만난 무함마드 씨(42)는 평소처럼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습니다. 모카탐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면 100이집트파운드(약 6000원)정도를 법니다. 그나마도 두 달 전 쓰레기 절단기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요즘은 열두 살 된 딸아이가 일을 돕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무함마드 씨 같은 이들을 ‘자발린’이라 부릅니다. 아랍어로 쓰레기 또는 쓰레기통을 뜻하는 ‘지발라’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 ‘쓰레기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카이로에서 자발린이 모여 사는 마을은 모두 5곳으로 이 중 3만 여 명의 자발린이 있는 모카탐이 가장 큰 마을입니다.


쓰레기 마을 주민 대부분은 손목이나 목덜미 부분에 작은 십자가 문신이 있습니다. 고대 기독교의 한 종파인 콥트 기독교인의 상징입니다. 전체 인구의 약 90%가 이슬람교도인 이집트에서 콥트 기독교인들은 오랜 세월 차별과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들도 대부분 이들의 차지였습니다. 이집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카이로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의 약 80%가 쓰레기 마을들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자발린들은 이집트 내 최빈민층에 속합니다. 이들이 쓰레기 마을을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도 문제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 가지 않아 글을 읽고 쓸 줄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와 함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다 가난을 물려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경제가 침체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자발린이 되기 위해 제 발로 쓰레기 마을로 찾아드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무함마드 씨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더럽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밥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 일을 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라며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해 주는 자발린들도 카이로의 소중한 자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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