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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아야만 해" 85세 '대법관 할머니'가 간절히 운동하는 이유

조회수 2018. 7. 17. 0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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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땅바닥에 대지 않고 ‘정자세’로 스무 번 팔굽혀펴기. 트레드밀(런닝머신)에서 5분간 가볍게 조깅을 하고, 묵직한 추에 연결된 봉을 머리 위에서 아래로 끌어당기는 ‘풀다운’을 3세트(12회 1세트) 반복. 커다란 고무공(짐볼)위에 앉아 균형을 잡으며 아령도 듭니다.


능숙한 솜씨로 일주일에 두 번씩 운동하는 이 노인은 올 3월 만 85세 생일을 맞이한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입니다. 그는 “젊은 사람들도 쉽게 따라 하지 못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인 긴즈버그는 소수자 인권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진보진영의 영웅’으로 통합니다. 그는 대장암 투병 중이던 1999년부터 이 같은 운동 루틴을 지켜 왔습니다. 2010년 세상을 떠난 남편(마틴 긴즈버그)이 항암치료 받는 자신을 보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막 나온 것 같다”며 걱정하는 걸 보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009년 췌장암 수술을 받고 2014년에는 막힌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받은 긴즈버그는 몸이 아플수록 더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워낙 건강 문제로 고생을 많이 한 그는 “(20년 가까이 함께한 개인 트레이너는)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노년에 적당한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건 널리 알려진 상식이지만, 최근 헬스장으로 향하는 그의 눈빛은 어딘가 결연한 느낌마저 듭니다. ‘반드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수성향의 브렛 캐버노 워싱턴 연방항소법원 판사(53)를 신임 대법관으로 지명하면서 대법원이 오른쪽(보수)으로 완전히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도 보수(4)-중도(1)-진보(4)의 이념적 균형을 팽팽하게 유지하던 대법원은 캐버노 판사가 상원 인준을 통과해 대법원에 입성함과 동시에 확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85세 고령인 긴즈버그마저 대법원을 떠난다면 보수6대 진보3의 구도가 됩니다.

이에 진보성향 유권자들은 “채소를 많이 드셔야 한다”, “땅콩을 보내 드리겠다”며 긴즈버그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를 (영원히 죽지 않는) 뱀파이어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긴즈버그는 “내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며 쏟아지는 걱정에 손사래를 치지만 지지자들의 희망과 기대에 부응하는 건 만만치 않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역대 최고령 연방대법관 기록(90세)을 깨고 최소 91세까지 은퇴를 미뤄야 합니다.


긴즈버그는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건네준 편지에서 틀린 글자를 발견하고는 그냥 넘기지 못하고 주석을 달아 오류가 있음을 표기했을 정도입니다. 아마 그는 자신의 은퇴 시기도 특유의 치밀함과 꼼꼼함으로 저울질하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 대법원 내 헬스장에는 긴즈버그가 좋아하는 오페라 아리아가 자주 흘러나옵니다. 장엄한 아리아를 들으며 그의 숭고하고 간절한 팔굽혀펴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기재 국제부 기자 record@donga.com



※ 이 기사는 동아일보 <85세 여성 대법관의 간절한 팔굽혀펴기
>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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