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중역 "한국 사람들, 일 할 때 '왜'라고 물으면 화 내"

조회수 2018. 7. 7.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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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님. 금쪽 같은 딸이 같은 그룹 다른 계열사에 취업했는데 매일 자정이 다 돼서야 집에 옵니다. ‘폭탄주 회식’에 절어 몸을 못 가눌 때도 적지 않습니다. 힘들어하는 딸을 볼 때마다 아버지로서 속이 상합니다.

 

‘도대체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딸네 회사 사장을 마주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내색할 수 없습니다. 재계에서 제법 화제가 됐던 이야기입니다.

출처: ⓒGettyImagesBank

이제 이런 에피소드는 옛 이야기로 기억될 것입니다. 7월부터 본격 시행된 근로시간 단축 덕분입니다. 과로로 탈이 났던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에 복귀하면서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향상시켜 기업 경쟁력도 높인다고 했습니다.


‘원조 과로사회’로 꼽혔던 이웃 일본도 일하는 방식 개혁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유명 광고회사 덴쓰에서 24세 신입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숨진 직원은 월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초과근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일본 의회는 최근 초과근로 시간을 월 100시간, 연 720시간으로 제한하는 ‘과로사 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다만 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저절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리서치회사인 갤럽은 각국 직장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는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열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한국 7%, 일본 6%에 불과했습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인이 일벌레라는 상식은 옛말이다. 주어진 일을 시키는 대로 하는 수동적 근면성은 높지만 주체적으로 일하는 자세가 부족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죠. ‘열정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직장인’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출처: ⓒGettyImagesBank

● “어…알아서 잘해 봐!” 일 시키는 사람도 잘 모른다


직원들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 혁신이 필수입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왜’라고 물어볼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 중역들에게 한국 기업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술이냐고 했더니 그건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럼 뭐가 힘드냐 했더니 ‘업무 할 때 왜?라고 물으면 한국 사람들은 불쾌해 한다’고 하더라고요. 일을 시킬 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겁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문화는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고위공직자 A씨는 옛 일화를 얘기하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청와대 지시를 장관도 잘 이해하지 못 한 채 밑으로 전달하고, 차관 국장 과장을 거쳐 사무관에게 최종 숙제가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사무관은 윗사람에게 감히 ‘왜’라고 묻지도 못 하고 더듬더듬 시나리오를 1안부터 4안까지 밤새 준비해 올립니다. 그렇게 제출한 방안이 ‘오답’으로 판명나면 이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일하는 방식 개혁에 나선 민간 출신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우수하다는 관료들이 하는 일의 70%가 자료 작성이더라”고 한탄했습니다.


불합리한 권위와 상명하복 문화, ‘알아서 잘 해 봐’ 문화가 고쳐지지 않으면 생산성 향상이건 지식경제건 공염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조직문화 혁신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



※ 이 글은 동아일보 기사 <[오늘과 내일/배극인]‘왜’라고 물으면 화내는 사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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