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살았는데.." 목공에 빠진 사람들
“평생 컴퓨터 자판 두드리고 서류 만지며 살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 내가 손 쓰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컨설팅업체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50)씨는 66m²(약 20평) 남짓한 사무실 절반을 목공 작업실로 꾸몄습니다. 수저와 도마는 물론 책상과 의자까지 작업실에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여름 휴가 때는 미국 메인 주에 사는 목공 장인을 찾아가 연수 받을 계획입니다.
이미 SNS를 통해 자기 작품을 판매하고 있는 김 씨는 “5~10년 안에 전문가 수준으로 기술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손맛 좀 아는’ 중년이 늘고 있습니다. 목공은 특히 5060 세대에게 인기가 많아 ‘취목족(취미로 목공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취미 목수’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는 회원 수 2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최근 목공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급증했어요. 목공교실 정원이 다 찼는데도 문의가 계속 이어져서 올해는 정원보다 더 많은 수강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유우성(61)씨 / 서울 양천구에서 목공교실 운영
“인생 후반전을 준비한다는 다짐으로 가구 공예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10년차입니다. 전시회를 열 정도까지 발전했어요. 은퇴 뒤에는 전문 목수가 되려고요.”
- 밴드 ‘크라잉넛’을 프로듀싱한 음반제작자 김웅(46)씨
● 5060세대 = 다시 태어나는 ‘리본(Re-born)’ 세대
50~64세 1070명 중 71%가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원한다”고 답했습니다(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라이나전성기재단 보고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5060세대가 원하는 것을 하며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어디서 배울 수 있나요? ‘전통공예건축학교’
6월 28일 저녁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 이곳에서는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전통공예건축학교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50, 60대 ‘아재’들이 스무 명 남짓 모여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저녁반 수강생들 중 절반 이상이 5~60대 직장인으로, 회사원·교수·건축가 등 직종도 다양합니다. 부부가 함께 공예를 배우기도 합니다.
건축가 문진호 씨(56)는 이곳에서 전통자수를 배우는 아내 김애현 씨(55)의 권유로 2017년부터 장롱, 탁자 등을 만드는 ‘소목’을 배우고 있습니다. 문 씨의 목표는 작은 한옥을 지어 자신이 만든 가구와 아내가 만든 자수 병풍으로 집을 꾸며 즐거운 노후를 보내는 것입니다.
옻칠과 나전칠기를 배우는 회사원 송세근 씨(59)는 IT업계에서 숨 가쁘게 살아오다 한 작품을 몇 달씩 걸려 만드는 삶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그는 “요즘 친구들에게 ‘술만 마시지 말고 나전칠기를 배워 보라’고 권합니다”라며 작업 중인 옻칠함을 들어 보였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중년, ‘리본 세대’의 수공예 취미는 더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수공예는 아날로그적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향수를 달래준다”며 “은퇴 후 삶이 길어지고, 주 52시간 근무제로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공예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그 종류도 한층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지운 easy@donga.com·유원모 기자
※ 이 글은 동아일보 기사 <“인생 2막 깎고 다듬고…” 목공에 빠진 5060>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