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대신 종이에 '슥슥'..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

조회수 2018. 6. 24.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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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이 종이 위에 올라가서 그림이 됩니다. 일반 물감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질감과 색감,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오묘한 색 변화까지.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화장품 그림’은 버려지는 재료를 이용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새활용)이라는 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미승 작가는 화장품 그림으로 주목 받고 있는 신예 화가입니다. 작은 스케치북을 펼쳐 보인 김 작가는 환하게 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모아놓은 게 화장품 그림”이라 말했습니다.

- 화장품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시게 된 계기는?


중3때 예고입시하느라 미술학원에 다녔어요. 입시용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동양화를 그렸고 대학 전공은 아동미술교육 쪽으로 정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그림’과는 좀 거리가 있었어요. 나만의 무언가를 계속 찾다가 안 쓰고 버려지는 화장품을 재활용해서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해서 시도하게 됐습니다.


- 평상시에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화장품 회사 같은 기업으로부터 외주를 받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강의도 가끔 합니다.


- 20대에 주목 받은 게 흔한 일은 아닌데 부담감은 없으신지


사실 저는 되게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좋은 쪽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편이거든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결국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다행히 부모님도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셔서 응원을 많이 해 주세요. 거실을 작업실처럼 쓰면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 화장품이 가진 (일반 물감과 다른) 특징이나 장점, 매력이 있다면?


아무래도 원래 종이에 그림 그리는 용도는 아니다 보니 가루날림이나 펄(반짝이) 떨어짐 같은 애로사항이 있어요. 장점이라면 역시 질감도 다 다르고 각도에 따라 빛 반사되는 것도 달라져서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 정해진 사용법대로 쓰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시도를 해 가며 쓰는 법을 연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 소재,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딱 봤을 때 기억에 남는 것들이요. 영화 장면,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모델을 주로 그리고 요즘엔 꽃에 관심이 많이 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합쳐놓은 게 화장품 그림이네요. 그림도 좋아하고, 화장품도 좋아하고, 멋진 사람들도 좋아하니까요.

출처: 김미승 작가 인스타그램

- 그림 그리면서 즐거웠던 점과 힘들었던 점이 궁금해요.


그림 그리는 데 쓰라고 화장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중에서도 처음으로 보내주신 분이 기억에 남아요. 제 전시회에도 와 주시고 많이 격려해 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심지어 알고 보니 나이도 또래라서 지금은 친구가 되었죠.


제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하기도 해요. 화장품을 안 쓰면 그냥 버려지는데 이런 것들로 그림을 그려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좋게 봐 주시는 분들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모습에서 자기도 용기를 받았다면서 메시지를 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러면 저도 너무 행복하죠.


어려운 점은… 많이 알려질수록 부정적인 관심도 늘어나더라고요. ‘화장품도 유통기한이 있는데, 그림이 몇 년 뒤 변질되면 어떡할 거냐’, ‘이색 재료로 관심 끌려고 하지 말고 실력으로 승부해라’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해요. 저도 사람이라 그런 걸 보면 좀 기운 빠지기는 하는데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뷰티 브랜드들에서 협업 제안이 왔을 것 같은데… 콜라보하는 곳 있으신가요. 완성작 전시회라든가 판매계획은?


몇 번 제안이 오기는 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콜라보랑은 좀 다른 경우가 많았어요. 그림 한 점 완성하는 데 길면 한두 달도 걸리는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전체적으로 찍은 다음 빨리감기해서 영상을 만들고 싶다거나 하는 제안이 있었거든요. 제 작업 방식하고는 맞지 않아서 아쉽지만 하지 못 했습니다.


전시회는 올해 두 번 했고요. 인사동에서 ‘Young Creative Korea’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고 카페에서 전시도 합니다. 작품 실물을 판매할 계획은 아직 없어요. 제 마음가짐이 변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있고, 화장품으로 그림 그리기 시작한 지 4년 정도 됐기 때문에 세월이 더 지나면 그림 색이 변할지 안 변할지 아직 확신할 수도 없는 상태이기도 하고요.

출처: 김미승 작가 인스타그램

- 이후 작품활동 계획은?


지금까지는 화장품이 사람 얼굴에 주로 쓰는 물건이다 보니 그림도 인물 위주로, 실제 사람과 비슷하게 많이 그려왔는데요. 이제는 저만의 화풍을 탐색하는 기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꽃이라든가 추상적 주제를 그려 보고 싶기도 하고요. 


또 제가 유기묘나 유기견 보호활동에 관심이 있거든요. 이런 사회적 캠페인 쪽에 제 그림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화가로서 목표가 있다면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거예요. 제 화실을 꾸리고 화장품 그림의 선두주자가 돼서 근심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웃음).


김미승 화가는 최근 큰 인상을 받은 말이 있다며 미국의 미술비평가 제리 살츠(Jerry Saltz·67)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가난한 삶을 살 것인가, 지루한 삶을 살 것인가. 예술가는 가난하게 살겠지만 그 삶이 절대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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