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 남미 배낭여행, 창업으로 이어졌죠"

조회수 2018. 4. 18.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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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링크 고귀현 대표 인터뷰

서로 다른 색실들이 하나의 매듭으로 만나 독특한 개성을 발산하는 팔찌가 된다. 색감 못지않게 이름도 특이하다. ‘프리다’, ‘우유니’, ‘네루다’, ‘체’… 이름만큼이나 남미 감성을 물씬 풍기는 이 팔찌들은 남미 저소득층 여성들이 전통 매듭공예 기술을 살려 만들었다. 경제력을 갖게 된 여성들은 더 나은 소득은 물론 아이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울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됐다.


남미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크래프트링크 고귀현 대표. 크래프트링크는 현재 코리아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미혼모들이 만든 팔찌도 판매 중이다.

크래프트링크 고귀현 대표. 사진=동아닷컴 조준수

크래프트링크를 창업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2년 초 남미로 70일간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여행 당시에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마냥 즐겁게 지내다가 왔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을 다시 보다 보니 배경에 찍혀 있는 현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저소득층 여성들이나 구걸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같은 여행자들은 그저 즐겁게 놀다 오는 곳이지만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으셨나요.


원래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면 ‘NGO’같은 이미지였어요.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일, 남의 일이라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마침 대학교 친구들 중 사업하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있었고 학교 강연회 같은 곳에서 사회적 기업 관련 내용을 들으면서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사업 시작하셨을 때 막막하진 않으셨나요.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처음 사업 시작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여섯 명으로 팀을 꾸려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여해 실제로 사업 계획서도 써 보고 상담도 받으며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습니다. 여기서 입상해서 상금 1000만 원을 받았고요. 정부에서 진행하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해서 1년 동안 멘토 상담을 받은 것이 초반 사업아이디어 구체화에 도움이 됐습니다.

출처: 크래프트링크

디자인, 현지 생산자와 연락, 유통 등 신경 쓸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조직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그렇죠. 다행히 인액터스(Enactus) 과테말라 지부 쪽과 연이 닿아서 현지 파트너 단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현지분들과 의사소통하기에는 언어적 장벽도 있고 기술적 장벽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공예품 만드시는 현지 분들은 메신저나 컴퓨터를 낯설어하시는 건 물론이고 상당수는 은행 계좌조차 없어서 직접 입금해 드리기도 어려워요.


현재는 제 또래 젊은 사람들과 소수 인원으로 운영 중입니다. 직원 중 최연소로 스무 살 직원이 있는데,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온 친구입니다. 크래프트링크의 베스트셀러인 ‘프리다’ 팔찌 디자인과 기획에도 이 직원이 큰 기여를 했습니다.

출처: 크래프트링크
‘프리다(FRIDA)’ 팔찌.

사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처음 사업 시작할 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법대 들어가서 나름대로 미래가 보장됐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굳이 어려운 길을 가겠다 하니 반대가 크셨어요. ‘좋은 일을 하는 건 좋은데, 굳이 그걸 네가 해야 하냐’라는 식이셨죠. 특히 아버지는 IMF때 구조조정을 경험하셨던 분이라 ‘안정적인 직장’을 중요시하셨어요. 


부모님 세대는 TV나 신문에 나오고 어디 큰 기관에서 상을 받고 그런 걸 중요시하시는 경향이 있잖아요. 열심히 설득을 해서 조금 긍정적으로 바뀌신 것 같다가도 밖에서 친구분들 만나고 오시면 또 금세 걱정이 많아지곤 하셨죠. 그래서 부모님과 말다툼도 잦아지고 힘들어서 한동안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갔던 적도 있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든든하게 응원해 주시지만요.


카이스트에서 사회적기업 MBA과정을 수료했는데, 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부모님께 ‘이렇게 이름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걸 보여드림으로써 걱정을 잠재워 드리고 싶어서였던 것도 있습니다.

크래프트링크 고귀현 대표. 사진=동아닷컴 조준수

힘들게 시작하신 만큼 사업하는 보람을 느낀 순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럼요. 제가 작년(2017년)에 결혼을 했는데, 같이 일하던 미혼모 중 한 분이 결혼 축하선물로 비누를 만들어 주셨어요. 주말에 아이하고 놀러 갈 때도 일부러 입장료 없는 곳만 골라 다니실 정도로 절약하면서 사시는 걸 제가 다 알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을 써 주시니 정말로 감사했고 보람 있었죠. 


그리고 공예품 만드는 분들 중 공예가 적성에 맞아서 아예 전문적으로 공부하시고 공예작가로 활동하게 된 분도 있어요. 그 분이 주축이 돼서 수공예 전시회도 열렸고 지금은 다른 미혼모들에게 매듭공예를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계세요. 이 분은 신제품인 브로치 라인 기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하셨어요. 


또 매듭공예로 시작해서 빵이나 비누 만들기처럼 다른 수공예 분야에 적성이 있다는 걸 발견한 분도 있어요. 이렇게 저희와 함께 일하면서 자기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고 더 즐거운 삶을 살게 되신 분들을 보면 행복합니다.

출처: 크래프트링크
크래프트링크의 ‘코리아 컬렉션’중 하나인 ‘동이’ 팔찌. 코리아 컬렉션은 매듭공예를 배운 한국 미혼모들이 수제작하고 있다.

이후 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실 예정인가요.


지금은 남미 저소득층 여성, 한국 미혼모 여성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환경과 동물윤리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하려고 ‘마리스 파인애플’을 만들었습니다. 파인애플 생산국인 필리핀에서 버려지고 있는 파인애플 부산물로 인조 가죽을 만들고 이 인조가죽으로 카드지갑이나 가방을 만들어 파는 거예요. 필리핀에서 나온 원재료를 스페인에서 가죽으로 가공하고, 그 인조가죽을 다시 한국으로 가져와서 제품으로 만듭니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자기 마음을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울리는 ‘주제’를 찾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내가 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싶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이걸 그냥 단순하게만 보지 말고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할 때, 이 분들이 엄청 많이 주워도 하루에 몇천 원 벌기 힘드니까 내가 비싸게 사 드려야겠다. 도움을 드려야겠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낮은 폐지 가격 뒤에는 그 폐지를 사 가는 제지회사들의 담합이 있기 때문이에요. 담합하면 정부에서 벌금을 물리지만 이 회사들이 돌아가면서 벌금을 내서 손해를 줄입니다. 이런 구조를 해결하지 못 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되고 맙니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있다면 구조적으로 생각하고, 사업 계획이 현실성 있는지 따져 보고 서툴더라도 계획서를 써 봐야 해요. 


그리고 일반 기업들도 마찬가지지만 사회적 기업은 특히 브랜딩(branding)이 중요합니다. 가격 경쟁력, 즉 ‘가성비’로만 따지면 대형 업체를 이길 수 없어요.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자가 갖고 싶은 물건을 만들려면 물건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크래프트링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가치 없는 제품을 소비자들에 권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소재의 질이나 디자인, AS등 제품 생산부터 고객 관리에 이르기까지 타협하지 않고 최선을 추구하겠다는 고귀현 대표. 그는 주변 사람이나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직업인의 모습이라 생각한다며 밝게 미소지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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