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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4년 차 패션 에디터의 이야기

안미은 기자는 왜 매번 야근하면서도 즐겁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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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리는 패션 에디터의 삶이 마냥 찬란하고 반짝반짝 빛나지만은 않는다지만, 여전히 내게는 약간의 '환상'이 있다. 패션 에디터는 남보다 옷을 잘 입지 않을까, 명품을 사랑하거나 사치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독종 편집장 메릴 스트립을 만나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눈엔 그녀가 늘씬하니 멋있어 보였다. 궁금한데 돌아갈 것 없지 않은가. 패션에 대해 궁금할 때면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4년 차 패션 에디터 안미은 기자의 전화번호가 내 폰에 있으니 말이다. 늘 흐물흐물한 이야기만 나누다가 처음으로 각 잡고 인터뷰를 청했다. 이번 달 잡지 마감으로 바쁘디 바쁜 안 기자를 편집장처럼 독촉해가며 들은 패션 에디터의 삶.

촬영을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찰칵.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첫 질문부터 센데요? 나는 누구인가. 꽤 철학적인 질문이잖아요. 인간은 살아있는 유기체예요. 매일매일 달라져요. 어제의 내가 어떤 표정으로 나를 대하고 다른 사람과 사물을 접했는지 알기 어려워요. 스스로에겐 ‘낯선 사람’이지만 직업은 친근한 편이에요. 미용실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여성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어요. 패션을 중심으로 문화, 산업 전반의 분야에서 기사를 다룹니다. 4년 차지만 아직도 막내예요. 찡긋.

표정이 살아있는 모델과의 작업은 언제나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 어쩌다 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나요.

대학 졸업하고 몇몇 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1~2년 정도 지나니까 넘을 수 없는 한계점이 보이더라고요. 당시 국내 패션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였거든요. 이에 대항하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동대문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어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마음 맞는 대학 동기를 찾아 온라인 쇼핑몰을 론칭했어요. 홍보용으로 뉴스레터를 만들어 발송했는데, 글 쓰고 화보 촬영하면서 콘텐츠 작업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 대학 때 전공이 이쪽 계열이었나요.

아주 연관이 없진 않아요. 패션 에디터는 트렌드를 분석하고 선별한 뒤 보기 좋게 가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요. 이 과정에서 높은 식견과 패션 감도가 요구됩니다.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패션 에디터가 되기 취한 초석을 다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예쁘게 포장해서 말하자면요. 솔직히 대학 친구들은 ‘이단아’ 취급하던데요?


# 롤 모델이 있나요.

따로 없어요. 다만 같은 직종에 있는 선후배 모두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하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잖아요.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으로도 동지애를 느껴요.

안 에디터의 화보는 딱 그만의 컬러가 묻어나는 것이 특징. 언제 어디서 펼쳐 봐도 알아챌 수 있다.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고전 중의 고전인데 이걸 보고 패션지 에디터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상과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요.

음… 캣워크 모델이 됐다고 상상해보세요. 섹시한 킬 힐 아래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발가락을 떠올리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실 거예요. 패션 화보 하나가 탄생하려면 열 명 정도의 전문 스태프의 손길이 필요해요. 에디터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스태프 섭외부터 촬영 디렉팅과 편집 작업까지 쉬어갈 틈이 없어요. 촬영이 끝나고 모두가 집을 향할 때 사무실로 돌아와 원고를 작성하거나 다음 촬영 준비를 해요. 고단한 삶이에요. 즐겁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요.  

포토그래퍼에게 콘셉트를 폭풍 설명하는 중.

# 하루 일과... 보다는 월간지인 만큼 한 달 일과가 궁금해요.

철저하게 ‘마감일’을 기준으로 돌아가요. 매달 21일이 마감일이라고 가정하면 첫째 주는 시안 디자인, 둘째 주는 촬영과 원고 작성, 셋째 주는 대지(기사의 초판이 되는 필름 전 단계의 종이) 마무리 작업을 해요. 책이 발간되면 비로소 자유를 얻어요. 사나흘부터 길게는 일주일까지 쉬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나면? 다시 한 달 시작이에요. 책 12권 만들다 보면 1년이 후다닥 지나가요.

그의 느낌이 살아있는 패션 화보.

# 패션 에디터로 자부심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될 때?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미지가 현실로 튀어나오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껴요. ‘엉거주춤’ ‘까치발’ ‘쭈구리’ ‘쩍벌’ 등 코믹한 자세로 셔터를 누르는 포토그래퍼가 가장 멋져 보이는 순간이에요.

여성동아 표지 모델인 배우 김규리와 함께 촬영 중이다. 이날 안 에디터는 촬영부터 인터뷰까지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요. 

표지는 그 달의 얼굴이자, 간판이에요. 지금껏 2년 넘게 표지 기사를 담당해왔는데요. 스스로 납득할 만큼 매력적인 컷이 표지에 담길 때 가장 뿌듯해요. 요즘은 인스타그램으로 기사 반응을 체크해요. 함께 작업한 연예인, 포토그래퍼,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패션 스타일리스트로부터 ‘태깅(Tagging)’ 당할 땐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지던데요?  

2017년 12월 호 여성동아 표지를 장식한 배우 최아라의 감각적인 화보.

시작이 반이라고 하던가. 잡지는 시안이 반이다.

# 이것만큼은 내가 잘 한다!

모든 콘텐츠 비주얼 라이징(Visualizing). 특히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패션 화보에 자신 있어요.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예술가적인 시선으로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그 속에 숨은 가치를 찾아내려고 해요. 어쩌면 이런 작업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진행했던 화보들.

그녀가 진행했던 화보들.

#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일기예보가 틀릴 때요. 야외 촬영 앞두고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면 정말 당황스럽죠. 마냥 기다릴 수도, 촬영을 접을 수도 없으니까요. 지난여름 경기도 화성에서 패션 화보를 촬영하는데 화성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얼른 시안을 비 오는 콘셉트로 바꿨어요. 원 없이 비 맞으면서 촬영했어요. 아찔한 상황이긴 한데, 그게 오히려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 최근 작업한 화보 중 재미있었던 작업과 그 촬영 뒷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리아 그랜마!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72세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 인터뷰 화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 생애 최초의 화보였어요. 70대 할머니를 카메라 앞에 세운 건 저도 처음이었어요. 저를 믿고 먼 걸음 해주신 할머니와 손녀 유라 씨에게 감사하면서도 혹시나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어깨가 묵직했어요. 촬영장에선 긴장한 티를 먼저 내는 사람이 지는 건데, 할머니를 보자마자 화석처럼 굳어버렸어요. 오히려 할머니께서 농담을 던지며 현장 분위기를 풀어주셨어요. 촬영하는 포토그래퍼를 향해 “유라야. 뭔 놈의 사진사가 엎어져서도 찍고, 의자에 올라가서도 찍고, 서커스만치 누워서도 찍고 한디야”라고 말씀하실 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다 났어요. 할머니의 화보 컷이 모니터에 띄워질 때마다 유라 씨는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어요. 부침개처럼 확 뒤집어진 할머니의 칠십 평생과 구수한 욕, 사투리를 인터뷰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요.


# 기자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나요.

마감 기간엔 체력 관리가 중요해요. 딱 한 번 감기 몸살로 앓아봤는데, 쉬지도 못하고 정말 서럽더라고요. 그때 때려치우고 싶었어요. (웃음).


# 기자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어울리며 가치 있는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에요. 배우는 것도 많고요.  

갑자기 떠난 부산 여행. 영화 '국제시장'의 무대였던 꽃분이네 앞에서 찰칵.

# 스트레스는 뭐로 푸는지.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현재의 것’에서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엔 여행을 자주 가요. 익숙한 것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되면, 지금 고민하던 것들이 한낱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돼요.


# 지금 가장 사고 싶은 것은.

컨템퍼러리 디자이너 브랜드 YAN13의 가죽 스타디움 점퍼요. 아버지가 가죽 재킷, 블루종 애호가였거든요. 옷장을 열면 가죽 냄새가 그윽하게 풍겨 나왔어요. 그 기억 때문인지 가죽 스타디움 점퍼만 보면 콜렉터 기질이 발휘돼요. 장바구니에 슬쩍 담아놨는데, 인터뷰 끝나면 구매하려고요.  

오늘은 모델에게 어떤 옷을 입힐까?

# 패션 테러리스트들에게 딱 하나의 아이템만 사라고 한다면? 

기본기가 중요해요. 스웨트 셔츠, 데님 팬츠, 스니커즈 같은 베이식한 아이템부터 시작해보세요.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어딘가 과하게 입었다는 뜻이거든요. 스타일 완급 조절을 잘 하면 패셔니스타로 거듭날 수 있어요.  

# 패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가성비’ 하면 액세서리죠. 덩치가 작다고 존재감을 무시하지 마세요. 같은 슈트 차림이라도 백 팩과 스니커즈를 매치하느냐, 핸드백과 부츠 힐을 매치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지니까요. 겨울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부하게 액세서리를 즐길 수 있잖아요. 당장 내일 아침 머플러부터 바꿔보시길 추천합니다.


# 패션 에디터는 애인의 패션과 스타일에 많이 관여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남자 친구를 멋스럽게 만드는 팁이 있을까요.

중이 제 머리를 어떻게 깎겠어요. (웃음). 사랑하는 사이라면, 스티브 잡스처럼 사계절 내내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를 고집한다고 해도 존중해줄 것 같은데요? 다만 취향이 없다면 답답할 수도 있겠네요. 내 방식대로 스타일링하는 것보다 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성향의 옷을 추천해줄 것 같아요. 양말 하나를 사더라도요.  

서울패션위크 가는 길.

# 패션 감각을 키우려면 뭘 보면 좋을까요. 책? 영화? 전시? 공연? 

다 보세요. 어떤 분야든 자신이 좋아하는 톤이나 무드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취향이 생길 거예요. 특정 브랜드를 점찍어 두고 매 시즌 열리는 컬렉션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할게요.


# 안 에디터의 또 다른 작품은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요?

홈페이지(anoffday.wordpress.com)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화보 촬영 비하인드가 궁금하시면 인스타그램(@andarse)을 방문해주세요.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사적인 공간(brunch.co.kr/@andarse)에 담아둘게요. 언제든 즐거운 제안은 환영이에요. labrida@naver.com

# 잡지 기자,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

잡지 기자의 특성. 1 밥 먹듯이 야근을 한다. 2 여러 사람을 상대하면서 성격이 사나워진다. 3 직업 특성상 오래 일하기가 어렵다. 4 세상의 쓰라린 단면을 종종 목격한다. 5 ‘박봉’이기까지 하다. 6 이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장점이 있다. 7 개인 역량을 강화시키면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8 유연성이 보장된다. 9 각계 인사들을 만나 대인관계를 쌓을 수 있다. 결론. 한 번쯤 해볼 만한 직업이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이 글은 구기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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