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조장 마룻바닥에 나온 시집의 정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저항시인 윤동주
그는 27세 젊은 나이에
'서시', '별 헤는 밤' 등 31편의 시를
남기고 1945년 2월 16일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 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남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일본의 탄압 속에서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한 사람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시인 윤동주의
절친한 글벗이자 대학 후배인
정병욱
윤동주와 정병욱은 1940년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
첫 인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지 못했던 시대
1941년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발간해도 검열에 걸릴 것이라는
연희전문학교 교수의 반대로 인해
발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윤동주는 그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발간하지 못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병욱에게 맡기고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윤동주의 시집을 받아 든 정병욱은
급히 고향인 광양으로 내려갔습니다
정병욱 자신도 강제징용을 앞둔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소중한 것이니
잘 간수해 주세요"
이 말을 마치 유언처럼 남기고
그는 강제징용을 떠납니다
정병욱의 본가는 광양 망덕포구에서
주조장을 운영했습니다
어머니 박아지 여사는
일제의 철저한 감시 속에
주조장의 마룻바닥을 뜯어
윤동주의 시집을 보관하게 됩니다
7년 동안
광양 망덕포구의 한 주조장에
숨겨졌던 윤동주의 육필원고는
해방 이후인 1948년
정병욱과 대학 은사의
손을 거쳐 출간됩니다
윤동주는 숨을 거뒀지만
그의 시 31편은 세상에 남아
빛을 발한 겁니다
지자체는 윤동주와 정병욱
두 글벗의 우정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시인 '윤동주'에게
정병욱이 없었다면
광양 외딴 주조장 마룻바닥이 아니었다면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대로 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