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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삶과 같다고?" 조현병 환자의 실제 머릿속 상황

조회수 2021. 1. 6. 15: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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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내적 여행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조현병 확자들이 겪는 통상적인 패턴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먼저 사회 질서와 맥락으로부터 탈피하거나 벗어난다. 이어서 시간상 뒤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내면으로 깊숙이 물러난다. 그곳에서 잇따라 뒤죽박죽이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고 나면 이윽고 (운이 좋을 경우) 중심을 잡아주고 충족감과 조화, 새로운 용기를 부여해주는 만남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돌아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이는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이 보편적으로 지니는 공식이기도 하다.


내 글에서는 그것을 1) 출발seperation 2) 입문initiation 3) 귀환return이라고 불렀다.

영웅은 평범한 일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초현실적 경이의 영역으로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화적 힘들과 조우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영웅은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해줄 힘을 얻어 그의 신비적인 모험에서 돌아온다.

이것이 신화의 패턴이자 정신적 공상의 패턴이기도 하다.

샤먼(남자든 여자든)은 청소년기 초기에 오늘날 정신증이라고 할 만한 심한 정신적 위기를 겪은 사람이다.


보통 아이의 가족이 걱정하며 나이 많은 샤먼을 불러 아이가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경험 많은 샤먼은 노래 등 적절한 수단을 써서 그렇게 해낸다.


실버맨 박사가 논문에서 언급하듯 “인생의 위기에 대한 독특한 해결책이 용인되는 원시 문화에서 상궤를 벗어나는 경험(샤머니즘)은 인지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개인에게 이득을 준다. 확장된 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같은 합리적 문화에서는, 또는 다시 한번 실버맨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종류의 위기를 이해하는 데에 참고할 것을 주지 못하는 문화에서는 개인(조현병 환자)은 원래 겪었던 불안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더욱 심화되는 경험을 한다”. 

실버맨 박사는 조현병을 두 가지 매우 다른 유형으로 분류했다.


하나는 ‘본질적 조현병’이고 또 하나는 ‘망상형 조현병’인데, 내가 말하는 ‘샤먼적 위기’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본질적 조현병뿐이다.  


본질적 조현병은 외부세계의 경험에서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다. 관심사와 초점이 좁아지고 객체 세계가 후퇴하며 무의식의 침입에 압도된다.  


반면 망상형 조현병을 앓는 사람은 세계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매우 민감하게 인식하되, 모든 것을 자신의 환상과 공포에 비추어 해석하고 공격당할 것이라고 느낀다. 실제로는 내부에서 가해지는 공격을 외부에 투영해 세상이 자신을 사방에서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실버맨 박사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조현병은 샤머니즘과 유사한 내적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망상형 조현병은 자기 내면세계의 강렬한 공포를 이해하지도 견디지도 못해 너무 일찍 외부세계로 주의를 돌리는 셈이다. 이런 유형은 위기 해결 시도에 실패해 내적 혼돈은 끝까지 겪어내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으며, 어쩌면 헤쳐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정신이상자는 자신이 투영한 무의식 영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조현병으로 인해 내면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환자 또한 개인의 경계를 초월해 우주와 합일하는 기쁨, 프로이트가 말하는 ‘대양감oceanic feeling’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온다. 전에는 수수께끼 같던 것이 이제는 완전히 이해된다.


조현병 환자들의 체험을 읽다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읽은 수십 개 사례는 신비주의자들의 통찰과 힌두교, 불교, 이집트 및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미지와 놀랄 만큼 흡사했다 

본질적 조현병 환자는 그 속에서 자신의 모든 관심과 존재를 바쳐 통제되지 않는 정신적 에너지의 공포스러운 형상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는 샤먼 후보가 신비적 여정을 하면서 하는 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으로 ‘본질적 조현병’ 환자가 처한 곤경과 트랜스 상태(일종의 ‘변형된 의식 상태’로 몽환 상태라고도 한다–옮긴이)에 쉽게 빠지는 샤먼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원시부족의 샤먼은 사회질서와 관례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사실상 이 관례들 덕분에 그는 이성적 의식을 되찾을 수 있다. 나아가 그가 이성적 의식을 되찾고 나면, 그의 내적・개인적 경험이 대물림된 관례를 재확인하고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강화해준다. 그의 개인적 꿈 상징이 그가 속한 문화의 상징체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정신이상자의 경우, 문화의 상징체계와 연결되기는커녕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조현병 환자에게 자신의 상상은 그저 생소하고 두려울 뿐이고 기존의 상징체계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원시부족 샤먼은 외적 삶과 내적 삶이 근본적으로 부합한다. 

정리하면 이런 이야기다.


신화의 영웅, 샤먼, 신비주의자, 조현병 환자의 내적 여행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의 귀환 또는 증세의 완화는 ‘재생’으로 체험된다. 다시 말해 현실의 지평에 더는 구속되지 않는 ‘거듭난’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 큰 자아가 반사된 것으로, 원형적 본능체계의 에너지가 현대 시공간의 일상적 상황에서 유익하게 작용하도록 기능한다. 이제 그는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이 낳은 아이인 사회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사회도 자연처럼 무시무시한 곳일뿐더러 그렇지 않고서는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새 자아는 이 모든 것과 합을 이루며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 증언하듯 삶은 전보다 풍요롭고 튼튼하고 즐거워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난파당하는 일 없이 항해를, 그것도 몇 번이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이상을 용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풍경을 보게 될지, 어떤 상대를 마주칠지 가르쳐야 한다. 또 정신이상을 인식하고 제압해 그 에너지를 흡수하는 일종의 공식을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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