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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0% 아니라 90% 싸게 팝니다.

싸게 팔면 우리한테 이득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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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0% 아니라
80%, 90% 싸게 팝니다.

책, 싸게 팔면 정말 우리에겐 이득 아닌가요?

[도서정가제 개악을 우려하며]

위원석, '딸기책방' 책방지기


만 원짜리 새 책, 단돈 이천 원에 팔리던 시절

아주 오래전 풍경입니다. 전철역 한쪽 바닥이나 버스 정류장 한구석에 책들이 넓게 펼쳐져 있곤 했습니다. <카네기 인간론>, <인생 삼십육계>, <실전 손자병법> 같은 처세서, 낚시나 당구, 볼링 등 취미생활에 대한 실용서, 유행어나 유머를 모아 놓은 우스개 책에서 가정백과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배차가 자주 될 때도 아니니 전차나 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쭉 깔려 있는 책들을 펼쳐 들고 읽다가 마음에 드는 한 권씩 구입해 출퇴근 차 안에서 읽기도 했습니다.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이니 책의 효용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지요.

그런데 이 책 가격들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분명 새 책인데도 10,000원짜리 책은 2,000원 팔리고 25,000원짜리 사전은 6,000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아무리 비싸도 책 뒤에 찍혀 있는 정가의 50%를 넘지 않게 팔렸습니다. 최소 50% 할인해 준 셈이죠.


당시 독자들은 그 책들을 엄청나게 싼 가격에 샀으니 큰 이득을 얻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 책들의 적정한 가격은 독자들이 지불했던 바로 그 가격이었으니까요.

그 책들은 대부분 일본 도서들을 저작권 계약 없이 무단 번역해 출간한 책들이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번역자들이 급하게 번역한 문장이었기에 이해하기 힘든 번역 투 문장이 많았고, 편집자의 적절한 편집도 이루어지지 않아 비문과 오자가 많은 책들이었어요. 모르긴 해도 디자인에도 큰 투자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10,000원짜리 책을 2,000원에 사고, 25,000원짜리 사전을 6,000원에 산 것이 아니라 2,000원짜리 책에 10,000원짜리 정가를 붙이고 6,000원짜리 사전에 25,000원의 정가를 붙인 것입니다. 그래도 70% 할인, 80% 할인이라는 말은 기분 좋았을까요?

어쨌든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이런 책 좌판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도서정가제 들어봤나요?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신간을 발행할 때 한번 정가를 표기하면 이 가격에 책이 유통되어야 한다는 제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터무니없는 할인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 책을 만드는 쪽과 책을 사는 쪽이 서로 신뢰하며 책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2014년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유지된 도서정가제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가격경쟁력이 있는 대형 온라인 서점들의 이해가 반영되면서 배송비 무료, 10% 할인, 5% 마일리지가 허용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작가, 출판사와 서점, 독자들에게는 완전 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한적 도서정가제가 시행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들은 상당했습니다. 그 전보다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었고, 동네마다 다양한 느낌의 책방들이 들어섰으며, 젊은이들의 출판사 창업과 젊고 개성 있는 작가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서정가제의 주무부서인 문체부에서 현행 도서정가제를 지금보다 완화된 형태, 악화된 형태로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사람도 얼마 없는 나라에서 책값을 적게 받든 많게 받든 그게 무슨 큰 문제일까 싶습니다만 도서정가제를 더 나쁘게 고치려는 시도는 우리 모두에게 큰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 문화의 다양성을 크게 해하는 일일 뿐 아니라, 소수의 대형 포탈, 서점, 출판사들의 이익을 위해 적정 규모의 출판사, 서점들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출판사와 서점이라고 해도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전국 서점 1,001개사에 전화 면접조사를 한 결과 도서정제의 강화나 유지를 원하는 답변은 92.7%이고 출판사의 경우 강화나 유지를 원하는 답변은 71.6%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압도적 다수가 현행 도서 정가제의 개악을 반대하고 있지만, 소수 의견이나마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이 있는 셈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약해지거나 없어지면 누가 이익을 보게 될까요?

작가로 치자면,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가격할인을 무기로 가자면 박리다매해야 하고 널리 팔자면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제대로 팔아먹을 한 권에 올인하게 되는 겁니다. 반면 새로운 시도, 참신한 시도, 신인 작가들의 책은 출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출판사로 치자면, 대형 출판사들은 한층 더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계약할 수 있는 것도, 물량 공세로 광고를 하고, 가격 할인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출판사들에겐 도서정가제 폐지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러 작은 출판사들에서 재고 도서들을 판매하는데 도서정가제가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만 그런 문제라면 지금 제도를 개선해야 할 상황이지 도서정가제 자체를 개악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대부분 중소규모 출판사들이 꿈꾸는 적정한 투자와 적정한 이윤을 통한 지속가능성의 기반은 사라질 것입니다.

책방으로 치자면, 이미 가격경쟁력으로 오프라인 서점을 초토화한 경험이 있는 온라인 서점과 새로운 콘텐츠로 웹툰, 웹소설, 전자책을 장착한 포털이나 플랫폼 사업자들입니다. 실제로 지역단위에서 독자들과 만나며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며 독서문화를 만들어 가는 동네책방들은 곧 폐업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동네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책을 만나게 해주는 곳, 새로운 독자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곳은 지역사회의 도서관과 동네책방입니다. 동네책방의 주인들은 독서 문화와 지역 문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은 크지만, 책방의 유지조차 힘겨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정가제까지 무너진다면 상당수의 동네책방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거예요.


그렇다면 '책 사는 나'의 이익은?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러하답니다. 하지만 논의의 핵심은 독자의 이익이겠지요. 도서정가제를 반대한다는 주장의 주근거는 ‘독자의 후생’이랍니다. 독자의 후생이란 것이 책을 싸게 사는 것에서만 얻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의 앞에서 말씀드렸듯 도서정가제 없는 상황에서 10,000원짜리 책에 20,000원을 붙여 파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어차피 책의 정가는 출판사에서 정하는 일이니까요. 30,000원도 50,000원도 정가를 붙일 수 있습니다. 50% 뿐 아니라 80%, 90% 할인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가격이 형성되는 도서 시장이 독자의 후생을 위해 바람직할까요?

어디를 가나 똑같은 책들, 팔릴 만한 베스트셀러들만 빼곡한 출판시장이 독자의 후생을 위해 바람직할까요?

이제 겨우 지역 사회에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 동네책방, 독서모임도 하고, 워크숍도 하며 마음 맞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간을 잃는 것이 독자 후생을 위해 바람직할까요?

아이와 손잡고 찾아가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 한 권을 고르는 재미 대신 차가운 모니터 속에서 미리보기를 클릭하며 아이가 볼 그림책을 고르는 것이 독자 후생을 위해 바람직할까요?

책을 사는 행위는 구매일 뿐입니다. 독서는 단지 책의 구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책을 고르고 읽고 그 생각을 나누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독자의 후생을 위해 도서 정가제를 반대한다는 주장은 독자를 책을 사는 구매자, 소비자로만 이해할 뿐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이해하지 못하는 발상입니다.

날마다 수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를 가니 마니 하는 이 시국에, 대한의사협회의 파업으로 군의관들을 민간병원 투입하고 있는 이 국면에, 태풍 바비가 지나가고 초속 47미터 매우 강한 마이삭이 다가오는, 또 새로운 태풍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 상황에, 한가롭게 라떼 시절까지 들먹이며 책값에 대해 말하려는 이유는 절박합니다.

한 사회가 가진 문화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다양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문화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정가제는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 지금 출판과 독서 현장에서 시도되는 다양성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발판, 그리고 그 다양성을 지키는 것을 소명으로 아는 서점인, 출판인, 작가들을 위한 최소한의 생명줄입니다. 많은 문화선진국에서 도서정가제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독자 경력 50년, 출판 경력 20년, 책방 경력 3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도서정가제는 독자에게 이익입니다. 완전도서정가제 응원해 주세요!

해당 콘텐츠는 인천in 기고글 그 책의 적정한 가격은 얼마? 원저작자 위원석 대표의 허락 후 재편집하여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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