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관계, 외롭다면 꼭 필요하다는 '이것'

조회수 2020. 6. 20. 15: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나만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미술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를 좋아합니다.


검정 망토를 걸친 남자가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그림의 풍경은 현실 세상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안개에 둘러싸여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 속 바위들이 불확실하고 위험한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림 속 남자는 바위 위에 서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이지만 편하게 자기 몸을 둘 곳은 없습니다. 그가 편히 속할 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멀리 보고 길게 보고 있지만 고독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40대 중반의 은행원 이야기입니다.

“애들은 유학 보냈습니다. 공부를 곧잘 하는 첫째는 유학을 가고 싶다고 자기가 먼저 말하더군요. 성적이 좋지 않은 둘째는 한국에 있으면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은 못 가겠다 싶어 형하고 같이 미국으로 보냈지요. 집에는 아내와 저만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아내는 월급이 자신보다 많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50평대 아파트에 사는 그는 집에 자기 서재도 있고 자녀들도 다 유학 가서 빈방도 있는데 주말만 되면 PC방에 간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집에 있으면 불안하고 안정이 안 돼요. 아내와 단둘이 있으면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서먹하고 불편해요.”

마흔이 넘어서도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그에게 아내는 나잇값 좀 하라고 핀잔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PC방을 끊지 못합니다.


“PC방에 가면 눈치 볼 필요 없잖아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사람도 없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어요. PC방에서 비로소 나를 되찾는 듯해요.”

넓은 집을 두고 PC방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40대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집에는 내 마음을 편히 놓을 자리가 없어요. 어쩌면 저는 늘 제가 속할 어떤 자리를 세상 속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공간은 인간의 삶을 투영합니다.

공간은 인간의 삶을 투영합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자리에 대한 묘사를 잘 들어봐야 합니다.


그곳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삶을 더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결혼을 공간의 관점에서 다르게 정의하면 부부가 공유할 공간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누추하든 상관없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뿌리 내리고 속한 곳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그곳에서 특별한 존재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죠.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면 근원적 불안에 시달리고 자신의 공간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우울증을 앓던 중년 남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내가 없어요. 아내는 즐기며 살겠다고 밖으로 돕니다. 큰아들도 컸다고 밤늦게까지 친구 만나고 돌아다녀요. 딸은 학원 갔다 늦게 돌아오고요. 퇴근하고 오면 아무도 없어요. 어두운 집에 불 켜고 들어오는 첫 번째 사람이 저예요. 그때 기분이 얼마나 처량한지 아십니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라면 끓여 먹을 때는 정말 외롭습니다.”

자기 자리라고 여겼던 공간에서 거부당하면 트라우마를 입습니다. 존재 기반을 잃어버립니다. 인격이 통째로 무시당하는 겁니다. 애초에 어머니의 자궁에 자기 자리를 갖고 있던 인간은 태어나면서 그것을 잃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잃었던 자기 공간을 찾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생 후 어디에도 속할 수 없게 된 존재가 자기 자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지요.

슬픈 현실은 자신을 위한 공간을 얻지 못한 채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거예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공간에서도 말이죠. 심지어 가정에서도 소외됩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실존은 ‘거기에 있음’입니다. ‘거기’란 하나의 자리, 공간입니다.


자신이 속해야 할 공간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 세상 그 어디라도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곳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공간의 자리는 정체성의 표상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장소, 즉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공간을 갖는 것입니다.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입니다. 남겨진 자리가 확고하다고 느끼면 자신이 사라지는 죽음도 덜 두렵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그런 자리가 있습니까?


유독 불안한 마흔,
마음 공부가 필요한 시간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