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몸을 '몸짱'으로 그린 최초의 작품은?

조회수 2020. 6. 3.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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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를 그리는 것을 중세 기독교는 불경한 행위로 여겼지만..

금욕주의에서 벗어난 인간 본연의 모습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발휘된 기념비적인 작품  '최후의 심판'


약 400명이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을 토대로 상의 종말을 맞이한 인류가 예수의 판결을 받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오른손을 올리고 사람들을 심판하는 예수를 중심으로, 벽 화 오른편에는 천국으로 날아가 불멸의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 왼편에는 지옥으로 떨어진 저주받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제는 성서를 기반으로 했으나 인물의 표현방식은 기존의 종교화와 확연히 다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임을 드러내듯 모든 인물이 단단한 근육질의 나체로 그려져 있는데요. 

근엄한 심판자인 예수 역시 마르고 병약한 모습으로 묘사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그리스 신화의 건강한 헤라클레스 같이 건강한 육체미를 뽐내는 젊은 영웅으로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나체를 그리는 것을 중세 기독교는 불경한 행위로 여겼으나 르네상스 시기에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수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최후의 심판〉은 공개된 이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아무리 인체의 아름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시대라지만 생생하다 못해 노골적인 나체 묘사가 교회의 심기를 건드린 거죠.   


체세나 曰
“교회가 아니라 목욕탕이나
술집에나 어울리는 그림”

이 그림을 보고 교황에 이어 교회에서 권력 2인자였던 의전장관 비아조 다 체세나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기독교의 금욕주의를 부정하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이나 부유한 메디치 가문의 의뢰를 받기는 했으나 그들의 구미에 맞게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에 확신이 넘치던 그는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추구하고자 하는 작품만 만들었지요.


르네상스 이전의 화가는 대부분 교회의 주문을 받아 작업했습니다. 사회적 인식 역시 신분이 낮은 기술직에 불과했죠.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부터 화가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확립하면서 예술가로 격상됩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와 같은 예술가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했지요.


뒤틀리고 과장된 매너리즘의 시대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린 르네상스 말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과 갈등으로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이 무렵부터 엄정한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르네상스 미술에서 조금씩 비켜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최후의 심판〉을 잘 살펴보세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가 먼저 그린 〈천지창조〉에 비해 인물의 신체가 뒤틀리고 과장되어 있습니다. 


손발과 몸의 비율도 어딘가 이질적이고요. 전체적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느낌마저 듭니다. 


16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유럽의 미술사는 매너리즘 시대로 이동합니다. 극단적으로 뒤틀린 포즈, 과장된 인체 비례, 비합리적인 공간 배치, 원근법의 파괴, 기괴한 분위기, 복잡한 구성, 왜곡된 원근법 등이 특징이죠. 


〈최후의심판〉에서 보이는 뒤틀린 듯한 인물들도 당시 유행하던 매너리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매너리즘>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기로 넘어가는 1520년경부터 1600년 사이를 풍미한 양식.

이 시기에 전개된 미술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가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미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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