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간다면 당신은 뭘 가지고 가겠습니까?" 무인도 여행 체험기

조회수 2020. 4. 3. 16: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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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 어웨이 체험기

세상 가장
고독한 여행
D E S E R T I S L AND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빈슨이 맨손으로 뗏목을 만들어 기어이 탈출하는 곳,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척이 배구공에 ‘윌슨’이라 이름 붙여 대화할 정도로 외로움의 정점인 곳. 그렇다면 무인도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영화 <캐스트 어웨이> 한장면
1.

처음 무인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때는 동생과 부루마블 게임을 하면서였다. 무인도에 걸렸을 때 3번이나 쉬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도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경쟁할 대상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편해졌다. 


또 무인도를 탈출하려고 애쓸 일도 없겠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이 편해졌다. 계속 똑같은 게임판을 여러 바퀴 도는 말이 꼭 내 처지와 같아 처량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만화나 영화에 나온 무인도는 실제론 어디에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무인도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인도에 간다면 당신은 뭘 가지고 가겠습니까?”

이 질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실업과 부정부패와 지역감정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책, 컴퓨터 두 가지만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얼마 전 라디오 방송에서는 한 연예인이 베어 그릴스(생존 전문가)와 동행하겠다고 했고, 무인도를 특집으로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선 칼과 텐트를 들고 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나에게 무인도는 어떤 선택이었을까?

2.

무인도에 가는 일은 무無의 상태에서 차근차근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건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는 일이기도 했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일이었다. 대개 그렇듯 나도 무인도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으니 검색부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구석구석 정보를 찾은 결과, 우리나라에도 섬이 3,500여 개이고 그중 2,800여 개가 무인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도를 보니 가까운 서해안에도 섬이 많았고 그중에 무인도가 하나쯤 있겠지 싶었다. 여기까지 조사하자마자 가장 기본적인 짐만 챙겨서 바로 서해안으로 갔다.

태안에 내려 항구로 간 다음, 무작정 어부 아저씨를 붙잡고 사람이 안 사는 섬에 내려다 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아저씨는 흔쾌히 배에 태워 무인도에 내려주시며 5일 뒤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섬은 내가 상상한 무인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맑은 물과 해변, 나무, 열매도 있고 숲 속을 가로지르는 산책길이 있어야 하는데 서해의 갯벌이 섞인 흐린 물, 쓰레기와 몇 그루 없는 나무에 해변이라 할 수 없는 자갈밭이 전부였다.

밤이 되자 어둡기도 하고 라면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나뭇가지를 조금 꺾어 모닥불을 피웠다.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 얼마 후에 갑자기 암흑 같은 바다 위에서 소리도 없이 붉은 사이렌이 깜빡이며 다가왔다. 알고 보니 섬 주변 일대를 관할하는 분이었다.


무인도라 할지라도 주인이 있거나, 지자체 또는 해상국립공원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무단 침입을 한 것임을 이 때 알았다.

게다가 나뭇가지를 꺾어 불을 피우면 산림법에 위반된단다. 물속에 뭔가를 잡으려고 들어가는 것도 금지된 행위란다.

해프닝처럼 마무리된 첫 무인도 여행은 나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우선 문제의 소지가 없는 섬을 골라야 했다. 더불어 내 취향에 맞는 이상적인 무인도를 찾아야 했다. 구글 지도를 확대해가며 전 세계를 뒤져 마침내 동남아시아 군도에서 그런 섬을 찾아냈다.


위성으로 보아도 푸른 바닷물과 해변을 보고 떠난 것이 무인도 탐험의 시작이었다.

3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 뭘 할지를 한참이나 고민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유리병에 담아 코르크 마개로 막아 던져보기(해양 오염의 주범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는데 다행히 15분 뒤 다시 떠내려 왔다), 다 벗고 수영해보기, 땔감 구하기, 집짓기, 낚시하기, 사냥 도구 만들기, 뗏목 만들기, 불 피우기 등을 두고 고민했다.

한 시간이나 더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일단 움직이자’였다. 섬을 걸어서 한바퀴 돌아보려 했지만 길이 끊긴 부분이 많아 무인도에 타고 들어왔던 배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혹시 구조 요청할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지금 어느 바다의 가운데 있는지를 알아야 가능할 것 같았고 섬을 둘러본다면 구석구석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니 해변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 동굴, 야자수, 코코넛들이 있는 위치와 조개가 서식할 가능성이 큰 바위도 보였다.


집을 짓거나 불을 피우려 해도 일단 나무를 베어야 하니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섬을 한 바퀴 돌며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전체 지형을 파악한 것은 꽤나 잘한 일이었다.

마치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떤 문제에 당면했을 때 숨이 턱 막히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는 이런 방법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한 바퀴 쭉 둘러보고 나니 먹거리도 잠자리도 해결할 방법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문제 앞에서 끙끙대지 말고 한숨 자거나 잠시 바람을 쐬면 해결 방법이 보이거나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지곤 했다.


문제를 한 발짝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을 배운 셈이다.

4.

누군가가 묻는다. 그렇게 무인도에 다니는 이유가 뭐냐고. 나는 간절함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라 말하겠다. 


간절함.


나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을 느꼈고 그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물과 불을 구하는 일은 문명사회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무인도에서는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일이다.

먹을 물을 구하는 일은 번거롭고 어려웠다. 식물에 비닐을 씌워 이슬을 모아보거나 바닷물을 끓여 증류수도 먹어보고 나뭇잎과 숯, 모래와 자갈을 넣어 간이 정수기도 만들어 보았지만 어떻게 해도 깨끗한 물을 충분히 구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구한 물은 정말 간단히 목만 축일 수 있는 정도여서 무인도에선 늘 목이 말랐다.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코코넛을 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무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기에 하루 종일 세 번이나 도전해서 겨우겨우 코코넛을 딸 수 있었다.

처음엔 고작 절반을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오후가 되자 두 번째로 도전해 3분의 2정도까지 올랐다가 또 실패. 마지막으로 저 코코넛이 아니면 난 목이 타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나무에 올라 겨우 코코넛이 있는 곳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날 난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수진을 치고 눈앞에 거대하게 드리운 간절함과 조우했다.

불도 마찬가지였다. 장장 7시간 만에 불을 피웠다. 손이 덜덜 떨려 아무것도 잡지 못하게 될 정도까지 나무를 비비다가 결국 불을 피우게 된 것 역시 불을 피우지 못하면 섬에서는 살 수 없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중간 중간 연기가 피어오르고 타는 냄새가 나면서 불꽃이 보였던 것은 희망이었다.

그 작은 희망에 기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것.


나아가 불을 지키는 일은

불을 피우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는 것.

이후 어느 면접 자리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 가장 기쁘고 보람찼느냐는 질문에 무인도에서 살며 불을 피웠을 때라고 말해서 면접관들이 포복절도한 적도 있었다. 어찌됐든 인생에 한 번은 그런 간절함의 순간을 느껴본 것은 실로 거대한 경험이었다. 이 일을 겪기 전과 후의 내 태도는 분명 변화가 있었으니 말이다.

너무 극한이라 생각하진 마시라. 잠깐잠깐 낭만의 극치도 맛보게 된다.


무인도의 낭만 중에서 단연 압권은 탁 트인 바다와 밤이면 하늘을 파노라마로 뒤덮는 수많은 별들이다. 들여다보기만 해도 신비한 바닷속을 맨몸으로 누비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들. 처음엔 어색하지만 이곳보다 더 여유로운 곳을 찾기도 어렵다.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시간도 무인도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느낌을 준다. 돌아갈 곳이 있는 상태에서의 완전하고 온전한 홀로서기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이 안 되니 자연스레 걱정거리도 줄어드는 곳.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고, 보관만 해 놓고 듣지 못했던 음악을 무한 플레이할 수 있는 곳. 파도 소리와 새소리의 완벽한 화음이 아침을 알리는 곳.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면 외로움마저 낭만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살면서 한 번은 무인도에 가보는 것도 좋다.

이름 하여 ‘자발적 고립’.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간관계, 미디어, 디지털 기기들과의 잠시만 안녕.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너무 많은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고 불필요한 걱정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작은 것이 주는 감사함과 고마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세상을 헤쳐 나갈 힘도, 지혜도 생긴다고 믿는다. 오직 이곳 무인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무인도에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그냥 여행이 좋아서,
각자의 색깔로 떠난 여행에서 찾은
진짜 여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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