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직장인, "사직서" 쓰다 그만둔 썰

조회수 2020. 3. 14. 12: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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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온 문장 읽고 사직서 접음 ㅇㅇ

만 5년 8개월을 일했다. 

눈만 껌뻑일 줄 알던 ‘생명체’가 글도 배우고 사람들도 사귀며 대략 ‘사람’이 되는 시간.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워드에 깜빡이는 커서조차 막막한 신입사원에서 말귀도 좀 알아듣고,


일도 어느 정도 하고, 무슨 일이든 대리해서 할 수 있다 하여 ‘대리’로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깜빡이는 커서 앞에 작아진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직장인 사춘기인가.

할 만큼 해봤다.

일이 쏟아지니 업무 플래너에는 할 일이 가득 적혀 있었다.  


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을 처리하고 가끔은 야근도 하고, 특근도 달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헐떡이며 일을 해도 어째 평가는 나아지지 않았다.  

네 연차에는 그 정도만 하면 됐다고 하면서도

왜 네 연차에도 이런 것 하나 못하냐고 눈을 흘기는 상사들은 원망스러웠다.


성과를 더 내야겠다는 생각에 업무와 관련된 인강을 신청해 들었다.  


가끔은 ASMR이 될지언정 강의 차수를 빼놓진 않았다.  

교육과 세미나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런데 열심히는 들었는데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라서 종종 난감해지곤 했다.  

현상은 알겠다 이거야, 근데 이거 어디다 쓰지...? 애를 써도 결과물은 시원찮았다. 


‘좀 쉬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 


‘일 안 하고 놀 돈은 있고?’ ‘이 상황을 피하기만 한다고 뭐가 달라져?’ 

뇌는 시시때때로 치사하고 구체적인 말로 나를 일깨워댔다. 


답답한 마음에 퇴근길 광화문역에서 방향을 틀어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자존감을 키우고 내 마음을 위로해줄 에세이나 한 권 사고 싶었다. 


그런데 에세이 코너도 아닌 곳에 내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 있었다. 


‘연차는 쌓이는데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다면’  

뭐, 뭐야? 누가 내 마음 갖다 써놨어?! 

‘열심히 하는 것 대신 잘하고 싶다면’ 

맞다... 내가 원하는 거.

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건 처음입니다.

제목도 마음을 후벼 판다... 


생각해보면 만 6년이 가깝도록 누구 하나 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좋아서 업계에 들어왔지만 첫 직장엔 사수가 없었고, 상사들은 어려웠다.  


뭘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몰라서 못 물어본 것도 태반이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아는 척 눙치고 넘어간 것들도 많았다.  

그렇게 껍데기만 있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혹시 내 사춘기의 이유는 이것 때문인가. 


첫 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 일을 언제까지 끝낼까는 생각해봤어도

일의 목적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부터 해야 한단다.

일의 순서는 목적지 정하기,

목적지까지 가는 지도 그리기,

목적지까지 걷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부분 단계를 건너뛰고 ‘걷기’부터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끝났다는 해방감이 좋았을 뿐 달리는 과정이 즐겁거나 한 걸음 한 걸음에 의미를 느끼진 못했던 것이다. 


완독했다.

책에는 좀체 안 하는 일인데 밑줄도 그었다. 여기저기 형광펜 자국이 났다. 

회사 생활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조언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세상 모든 일은 일상적이고 규칙적인 루틴. 그러니 반복하면 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2. 루틴의 양을 늘리면 업무의 질이 향상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루틴이나 습관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뭐? 일을 습관처럼 하라고? 미친 거 아냐?!’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다음 깨달았다.  

일을 습관처럼 하는 것은 상사에게, 회사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 좋은 방법이었다.  


일을 빠르게 완벽하게 끝내 시간과 마음에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베테랑’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3. 쉬운 일, 어려운 일이 아니라 시간으로 일의 기준을 정하자.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그리고 저자의 말마따나 ‘오브제’처럼 각자 다르게 생긴 일을 정사각형의 테트리스 블록으로 만들 수 있나 의심도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예측력을 발휘해 일을 시간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계획대로 일을 착착 진행할 수 있다.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감정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법이었다.  


이는 업무에 가장 먼저 적용한 방법이다. 덕분에 정신없던 플래너에 새로운 체계가 생겼다.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서 숨 고를 새 없이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시 밑줄을 그었다. 

책을 덮으며 저자와 같은 생각.

일을 제대로 시작하고 마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말로만 떠들지 않아 결코 ‘공허하지 않은’ 일의 의미를 찾게 해준 책이었다. 


회사 생활은 분명 쉽지 않다.  

여기에 연차가 짧고 길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개선 여지와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상황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누군가 나처럼 직장인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다면 

속는 셈 치고 한 권 사서 읽어봤으면 좋겠다.  


특히 자기계발서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나 역시 이런 책과 가깝지 않았지만 에세이보다도 더 큰 위로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꼬아서 듣고 싶지? 니들 마음 다 안다’라는 혜안(?)을 보여줘 피식 웃었던 페이지들을 첨부하며.

다 그만두려다.


책 한 권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


직장인의 첫 번째 긴 리뷰 끝.


■ '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건 처음입니다'를 읽고 독자가 직접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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