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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 그가 출산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

조회수 2020. 2. 24. 14: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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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빠가 되었습니다

봉태규, 그가 출산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

원지가 둘째를 출산하였다.

남편인 나는 별로 할 게 없었다.


임신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이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드디어 아빠가 된다는’ 괜한 기분만 냈을 뿐 출산의 전 과정은 온전히 원지의 몫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지켜봐주고 진통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끔 말벗을 해주는 게 전부였다.

봉태규 에세이 |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중에서

그럼에도 긴장감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 과정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하는 원지의 몸이 걱정되는 게 컸다.


출산이라는 과정이 숭고하다 해도 의학적인 견해로 봤을 때 자연분만은 변수가 굉장히 많은, 아주 안전하기만 한 방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산모들은 기꺼이 안전하지만은 않은 이 방법을 감내한다.


모든 산모가 그렇진 않겠지만, 행여나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에게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걸 못 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 죄책감을 누가 심어주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런 부담감을 갖게 한다는 건 산모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분만의 과정과 제왕절개의 과정 모두 정작 산모 본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해도 된다, 안 된다’라는 의사 진단의 문제인 것이다. 그 어디에도 죄책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자정이 되어서 진통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서둘러 짐을 챙기고 급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을 하면서 생각했다.


‘임신은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든 결과물인데 난 아무렇지 않게 지금 운전을 할 수 있고 원지는 옆에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맞는 건가? 고작 괜찮아, 조금만 참아, 정도의 안심밖에 줄 수 없는 건가?’

누군가에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문제를 꽤나 진지하게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었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해서 급하게 원지를 분만실에 들여보내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겨우 한숨 돌리고 나니 출산하기 전까지 산모가 대기하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한 칸이 전부인, 커튼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있는 좁은 공간. 보호자 단 한 명만 옆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좁디좁다.


진통의 간격을 체크하는 의료기기 소리만 얇은 커튼으로 둘러진 우리 공간을 가득 메웠다. 커튼 벽 너머로 간호사와 의사들의 신발 끄는 소리가 찌- 익 찌- 익 우리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다.

원지는 행여나 주변의 다른 산모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아주 작게 조심히 말했다. 다른 사면의 공간에 있는 산모들도 원지와 같은 마음이라는 게 그들의 소곤거림을 통해 느껴졌다.


커튼으로 둘러싸인 사면의 속삭임에 내가 속상하고 마음이 아픈 건 결혼 전에 우연히 본 TV프로그램 때문이다.


산모가 느끼는 진통의 크기를 숫자로 표시하여 얼마나 참기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팔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10으로 본다면 진통의 시작과 끝은 6~10을 반복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산모들은 그 극심한 고통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


 “악!!!” 하고 아프다고 소리라도 마음껏 칠 수 있다면 그나마 진통으로 받는 아픔이 덜하지 않을까? 두 번째 출산에서 비로소 남편인 내가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지 자책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원지에게는 더 많은 보호자가 필요해 보였다. 남편인 나는 그 안에서도 아내가 챙겨줘야 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자신의 진통을 나누기보다 나 이제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줘야 되는 그런 존재……. 그럴 때 원지의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혹은 아빠, 여동생이 함께 있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통증에 투정도 부리고 ‘이것 좀 나누자’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산모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타당한 이유로 보호자의 출입을 한 명으로 통제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 생각한다.

원지는 너무도 씩씩하게 모든 과정을 다 이겨내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란 듯이 울어대던 아이는 여자였다.


남자 아빠인 나는 우리 둘째 아이에게 무엇을 얘기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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