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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부부관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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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면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됩니다.

무의 식에 숨겨져 있던 여성 속의 남성성, 남성 속의 여성성이 꿈틀 대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각각 아니무스animus, 아니마anima라고 합니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성스럽게 성장해야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성은 남성다운 외적 인격이 우세해지고 무의식의 아니마를 억압하게 됩니다. 여성은 아니무스를 억압하게 됩니다.

남성이 자신의 아니마를 의식화하지 못하면 중년이 되어 여성적인 특성이 미숙한 형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남성의 무의 식에서 억압되었던 분화되지 못한 아니마는 변덕스럽고 감성적인 기분, 허무함, 쓸쓸함, 과민성, 짜증, 때로는 폭발적인 분노로 표출됩니다.


아니마는 원래 남성 안에서 영감, 창조적 통찰, 예감, 섬세한 정감을 갖게 합니다. 아니마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남성은 융통성과 생동감, 창조성을 잃어버립니다. 완고하고 기계적으로 변합니다. 감정을 잃고 메마른 사람이 됩니다. 미성숙한 아니마에 자아가 사로잡혀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피로를 느끼고 책임감을 잃고 공허에 휩싸입니다. 소심해지고 불안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미성숙한 아니마가 다른 여성에 투사되면 그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색정적 환상을 유발합니다. 아내와는 완전히 다른 여성, 또는 전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타입의 여성에게 넋을 잃고 빠져버립니다.

내면의 아니마를 돌보는 작업은 섬세한 정서를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감정을 돌아보고 보살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정서가 요동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동안 합리와 이성에 과도하게 의지해왔다면 마흔 이후부터는 감각과 감성에 더 공을 들여야 합니다. 중년 남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마를 돌보고 성숙시켜나가면 생동감과 창조성이 되살아납니다. 아니마는 진짜 자기self에 닿기 위한 안내자가 됩니다.

여성이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아니무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억압해왔다면 미숙한 형태의 남성적 특징으로 표출됩니다. 여성의 내부에서 성숙하지 못한 아니무스는 비판적이고 논쟁적이며 경쟁적이고 공격적이고 고집스러운 자기주장으로 나타납니다. 미성숙한 아니무스가 따지는 버릇으로 나타나 이유 없이 논쟁적이 되거나 폭발적인 감정으로 표현됩니다. 


미성숙한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은 의견이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당신 말이 맞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 지 자기주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 가치를 깎아내리고, 비 관적인 생각에 자아가 사로잡혀버립니다. 만사가 귀찮고 사는 게 의미 없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아니무스입니다.


중년 여성은 자신의 내면에서 억압되었던 아니무스를 의식화해야 합니다. 먼저 외부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확신이 옳은지 되돌아보고 자기 의견과 다른 생각들을 비평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면의 아니무스가 성숙해갈수록 중년 여성의 용기와 지혜도 함께 자랍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내면의 아니무스는 자존감을 해치는 원인입니다. 하지만 아니무스가 의식화되어감에 따라 중년 여성의 자존감도 커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됩니다.

마흔 이후에는 밖으로 우세한 외적 인격과 안으로 억압되었던 내적 인격 간에 새로운 힘의 균형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남자는 정서와 관계성을 향한 욕구가 커지는 반면에 여자는 자율성과 자기실현을 향한 욕구가 커집니다. 아내가 더 이상 순종적이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면 남편은 당황합니다. 남편이 감성적・의존적으로 변하면 아내는 자신이 어떻게 남편을 대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집니다.

중년이 되어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아내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황하고 놀라면 거부하게 됩니다. 서로 상처받고 움츠러듭니다. 마흔이 넘으면 아니마, 아니무스를 돌봐야 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부부는 자신의 모습을 서로에게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통해 자기 모습을 봐야 합니다. 논쟁적이고 의심하며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아내 모습이 지금껏 자신이 아내에 게 보였던 태도가 아니었는지 하고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태도, 외롭다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면 내 안에 그런 특성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상대방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고쳐나가는 것이 마흔 이후 부부의 모습입니다.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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