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가 밝히는 교실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아이

조회수 2019. 8. 5. 15: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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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형석이 울어요.

곧 새학기가 시작됩니다. 부모님들은 학교에 간 아이가 걱정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은 잘 할 지, 친구들은 잘 사귈지, 선생님 말씀은 잘 들을지...


그러나 사실 초등학교 담임인 제게 가장 힘든 아이는 '말 안 듣는 아이'가 아닙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아이를 마주할 때, 저는 담임으로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형석이라는 아이가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담임인 저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심부름을 시키는 척, 이름을 불러도 대답 없이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부끄러움을 많은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단지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 고개를 숙인 채 책상에 혼자 가만히 있었습니다다.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린 채로요.


그러다 어느 날, 사회 수업을 하던 중에 형석이 짝꿍이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형석이 울어요.

순간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형석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번에 몰린 시선에 형석이는 그대로 책상 위로 엎어졌습니다. 무슨 일이냐 물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형석이와 짝꿍을 화장실로 보내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오늘 형석이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와 싸운 것도, 놀림을 받은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에 형석이는 눈물은 그쳤지만 밥과 국물만 조금씩 떠먹고 있었습니다. 형석이의 눈물은 잊어버린 듯, 떠들석한 아이들 사이에서 형석이는 마치 혼자 멈춰버린 동상 같았습니다.


말 없이 다가가 형석이의 귓가에 대고 '형석아', 하고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쓰다듬어주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정신없이 교실에서 나가는데 형석이가 뚜벅뚜벅 제 앞으로 걸어오더군요. 혹시 무슨 말을 할까 싶어 기다렸지만, 그저 인사하고 교실 문을 나갔습니다. 평소보다 더욱 깊이 고개 숙여서요.


그날 오후, 형석이 어머님과 잠시 통화를 하며 형석이가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오늘 아침, 아이가 너무나 굼뜨게 행동해 답답함에 큰 소리를 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느려터져서 나중에 밥 벌어먹겠냐는 말을 하고, 종일 후회하셨다고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필 오늘 사회시간에 여러 직업에 대한 수업을 했는데, 형석이는 자책하며 어떤 직업도 갖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밥 벌어먹는 일도 못할 존재인 자신이 한심스러웠을테지요.


형석이 어머님께 숙제를 드렸습니다. 일단 학교에서 울었던 일에 대해서 캐묻지 말고, 그보다는 먼저 형석이에게 오늘 하루가 지나기 전에 ‘미안하다’고 반드시 사과할 것을요. 그리고 최소 일주일 동안 이유 없이 형석이 이름을 자주 불러주어야 한다고요.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이승욱 정신분석가는 저서 《포기하는 용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존재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의 ‘바라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인간은 스스로 존재함을 자각하기에 한없이 부족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지극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눈동자가 없다면 아이는 스스로를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의 존재감을 길러주는 법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들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잊힌 존재가 아니라는 듯 조용히 이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이의 존재감을 깍아내리는 것도 이토록 쉽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한마디면 아이는 존재감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어른에게는 별일 아닌 듯 보일지라도요.


한 번 무너진 존재감을 다시 쌓아올리려면 정성이 필요합니다. 진심을 담은 사과와 함께, 그 사과가 진정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도록 자주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아이의 존재감을 위해, 조용히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마주하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어른들의 생각보다 존재감은 아이들에게 생존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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