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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유럽이라 불리는 로맨틱한 상하이 산책 코스 추천

우리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상하이로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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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_영화 <암살>의 안옥윤 (전지현)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암살> 공식 스틸 이미지

2015년에 개봉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은 1930년대 독립투사들의 암살 작전을 다룬 영화이자 상하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우리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의 성지인'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상하이로 떠나볼까요?

상하이에서 우리의 역사 찾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데요.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위치한 이유는 당시 유일하게 일본의 군사력이 뻗치지 않은 도시였기 때문이죠.


앞서 3·1운동으로 항일의 의지를 공감한 중국인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들의 항일운동인 5·4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 중국 곳곳으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상하이는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일본의 직접적인 영향권을 벗어나 조계 항구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해요.


 - 신톈띠역 6번 출구에서 도보 200m 가격 20元 


윤봉길 기념관

1932년 4월 29일 홍코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는 물통 폭탄을 던져 일본의 수뇌부를 폭파시켰습니다.


당시 중국 주석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윤봉길이 해냈다”며 극찬하고 마오쩌둥도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어요. 이후 루쉰공원에는 윤봉길 의사의 아호를 넣은 기념관 매헌정이 세워졌어요.


- 홍코우주치우창역 3번 출구에서 도보 1.1km 가격 15元


오래 전부터 상하이는 독특한 거주 양식을 갖고 있어요.
함께 보면 더 재미있을 여행 영상!

<중국 여행의 편견을 없애 준 상하이의 반전 매력 8>
스쿠먼 롱탕

850~1904년대 상하이에 유럽식 주택기술이 전해지면서 겉은 유럽식으로, 내부는 중국식으로 지은 부자들의 주택입니다. 


출입구를 화강암이나 붉은 벽돌로 문틀과 기둥을 만들어 ‘돌로 만든 문'이라는 뜻의 스쿠먼이라고 부르며, 롱탕은 골목을 뜻하는 옛말이에요.


찡안비에수

80년이 넘은 올드 하우스. 난징시루에 연결된 정문으로 들어가면 살을 발라낸 생선가시 모양으로, 가운데 길을 두고 양쪽으로 좁은 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붉은 벽돌집들이 모여 있어요.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방이기 때문에 작고 좁은 방문을 열고 롱탕(골목)으로 나와 생활한다고 해요. 장기를 두거나, 채소를 다듬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널린 속옷가지를 거둬가는 풍경은 평화롭고 정겨워요.


- 난징시루역 4번 출구에서 도보 100m


화이하이중루 롱탕

번화가의 숨어있는 오피


상하이의 최대 쇼핑 거리 화이하이중루에서 명품 숍이 들어서 있는 건물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입구가 바로 화이하이중루 롱탕으로 통하는 길이에요.


골목길에 앉아 일상을 보내는 상하이런들의 하루가 고스란히 머무는 동네로, 비싼 화이하이중루의 임대료를 피해 롱탕 안에 카페를 내고 미니 숍을 내면서 입소문으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요. 아는 사람만이 찾는다는 롱탕 안으로 성큼 들어가봅시다!


- 화이하이중루역 1번 출구에서 도보 700m


신톈띠

세련된 유럽 느낌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뜻의 신톈띠.


홍콩 부호가 52만㎡의 면적에 스쿠먼 롱탕 이미지에다 프랑스 조계지의 유럽 이미지를 더해 재탄생시킨 곳이에요.


모던한 분위기의 신톈띠는 1850년대에서 1940년대 상하이에 들어온 유럽 스타일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어, 상하이의 유럽으로 불려요.


 - 황피난루역 2번 출구에서 도보 750m


신화비에수

외국인이 누리던 호사로운 생활 신화루는 짙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그림자가 지는 2.2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입니다.


1920년대 프랑스 조계지 중심가의 땅값이 오르자 조계지와 가까운 이곳에 외국인들이 터전을 잡으면서 지금의 신화루가 되었다고 해요.


 U자 모양으로 들어선 47채의 빌라는 스페인,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의 다양한 건축 스타일로 지어졌는데 당시 상하이의 최고 인기 건축가였던 헝가리인 우덱Hudec이 지은 것으로도 유명해요.


해가 갈수록 건물들이 낡고 초라해져 새롭게 다듬고 고치느라 예전의 모습은 희미해졌지만, 남아있는 건축물을 감상하며 거리를 거닐기에 너무 좋은 곳이에요~


 - 쟈퉁따쉬에역 5번 출구에서 바로


이 글은 여행 가이드북 <상하이> 내용을
참고하여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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