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가?

조회수 2019. 2. 8.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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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세계 최고의 정치 연구가이자
미국 정치 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 그룹’ 회장 이안 브레머 Ian Bremmer
글로벌 정치 리스크 연구 및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의 설립자 겸 회장.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최연소로 후버연구소 교수로 임명되었고, 200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영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월스트리트 최초의 정치 리스크 인덱스(GPRI)를 만들었으며, 국제 정치 질서에서 리더가 사라지는 ‘G-Zero(지-제로)’ 개념, 특정 국가의 개방성과 안정성과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J-Curve(제이 커브)’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경제포럼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관한 글로벌 의제 협의회’ 창립 위원장이자 활발한 대중 강연가이기도 하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전(前) 편집장으로, 현재까지도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하는 유명 칼럼리스트이며,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포린어페어스>에도 기고하고 있다. CBS, CNN 등 전미 주요 언론사 뉴스의 주요 패널로 국제 정치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고, CNBC, 폭스뉴스, 블룸버그TV,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BBC 등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한다. 저서로는 《리더가 사라진 세계》,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이 있다.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가?
관심을 끌기 위해서인가?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아니면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서?

그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는 자신들이 참을 만큼 참았고, 더는 무시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자신들도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투표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부인들은 그들의 상황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변화의 기회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돌을 던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조만간 전 세계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도처에서 노동자들이 세계 경제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 때문에 도태되어 일자리를 잃고, 생계 수단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다. 각 나라에서 국민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라의 얼굴과 목소리를 바꾸는 이방인들이 물밀듯이 유입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능력이나 의사가 없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분노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보도록,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도록, 그래서 자신들의 심정을 느끼도록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구조 신호에 응답이 온다.

도널드 트럼프가 열광하는 인파를 향해 소리친다. 

"내가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을 주시하고 있어요. 오로지 나만이 여러분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어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말한다. 대기업과 월스트리트의 은행이 그들의 돈을 뒤에서 갈취하고 있다고 말이다.

브렉시트 옹호자들은 유권자들을 향해 소리친다.

“영국의 국경을 되찾읍시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강요하는 법과 규칙을 거부하자고 말한다.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은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애국자들의 선봉에 서서 외국인과 세계주의자들을 향해 돌진하겠다고 말한다. 


이 지도자들은 정부의 규모를 확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세금을 줄이거나 정부의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과연 ‘엘리트들’이 우리의 삶을 둘러싼 규칙을 정할 자격이 있냐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국민들이 지금까지 속임수에 걸려 성공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미디어가 그 농단의 공범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고통 받던 자에게는 안락을, 안락했던 자에게는 고통을 주고 권력의 온상을 불태워버리겠다고 약속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포퓰리스트들을 공격하고, 조롱하고,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고, 또 많은 사람이 ‘세계주의’와 ‘세계화’ 때문에 자신의 삶을 망쳤다고 믿고 있는 현실 역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재주가 있어 모범 시민이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권력을 등에 업은 도둑, 혹은 탐욕에 눈이 먼 도둑에게 맞서야 한다는 분열의 이미지를 그럴싸하게 제시하면서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만든다. ‘그들’은 국가와 시점에 따라 부자나 빈자가 될 수도 있고, 외국인이 될 수도 있고, 소수 종교·인종·민족 집단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라이벌 정당의 지지자가 될 수도 있고, 국내의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정치인, 은행가, 기자가 될 수도 있다. 그 표적이 누구든 간에 이것은 이미 실효성이 검증된 정치적 수단이다. 


이 책 『우리 대 그들』은 그들이 던지는 돌멩이나 그들이 입히는 피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돌멩이는 좌절감을 표출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서 그런 좌절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그에 대해 각국 정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리고 정치 지도자, 각급 기관, 기업, 학교, 시민이 어떻게 협력해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내가 자란 매사추세츠주 첼시는 가난한 도시였지만, 어린 시절 거리에 나가면 별세계가 펼쳐졌다. 저 멀리 보이는 초록빛과 황금빛으로 빛나는 보스턴의 스카이라인에는 부유함이 서려 있었고, 그 마천루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자꾸만 관심이 갔다. 어떻게 해야만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내게도 미약한 기회가 주어졌다. ‘미국 직업의 이해’라는 프로그램의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그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청운의 꿈을 품은 우리는 재킷 안에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발 디딜 틈 없는 번화가로 걸어 나갔다. 정장 차림의 신사들을 스치고 높은 유리문을 지나서, 마침내 조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미끄러지듯 위를 향하던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멈춰 섰고, 우리는 복도에서 잠시 기다린 후 회사 중역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곳은 은행이었는데, 바닥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는 ‘팀’이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와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팀은 한 사람씩 힘차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의 눈에서 우리를 향해 뿜어내는 열의를 읽을 수 있었다. 그가 물었다.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우리 중 한 명이 “네”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여러분을 막을 수 없어요. 누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그냥 무시해버려요. 성공하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돼요. 모두 자기 하기 나름이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공공 임대주택에 살던 내가 장학금을 받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따고, 사업을 구상하고, 회사를 세우고, 돈을 벌고, TV에 출연하고, 책도 여러 권이나 썼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휘황한 도시의 누추한 변두리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손에 자란 내가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불굴의 의지로 두아들이 도처에 깔린 함정을 넘어 출셋길에 오를 수 있게 이끌어주셨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 작은 사례를 만드신 것이다.

내가 아직 10대였을 때 아메리칸 드림은 전 세계가 상호의존관계가 되어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신념, 즉 ‘세계주의’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당시 나라는 가난한 소년에게, 또 내가 장래에 되길 희망하는 성공한 남자에게 번영의 길을 열어줄 것으로 보였다. 세계주의는 관대한 길,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게임으로 보였다.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장벽을 낮추고, 고용하고, 건설하고, 확장하자!

이미 성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자신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세계주의에 마음이 끌린다. 나 역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세계주의에 바쳤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시스템의 덕을 톡톡히 봤고, 전 세계 수억 명이 그 시스템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세계주의가 언젠가는 모든 사람에게 득이 될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으랴.

허나 아직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 회의장 앞에서 벌어진 닷새간의 시위는 그런 현실을 일찍이 우리 앞에 보여주었다. 이 시위는 본래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친노동자 성향 항의 집회로 시작됐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업, 반핵을 위시하는 각종 반대의 기치旗幟를 내건 무정부주의자들이 가세해 거리 공연을 펼쳐댔다. 평화로웠던 시위는 급기야 젊은이들은 고무탄을 피해 다니고, 경찰들은 돌멩이를 피해 다니는 난투극으로 돌변했다. 하지만 세계주의자들은 거기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경고 신호였다.

2008년 수년간 지속된 규제 완화, 은행 재정을 흔드는 위태로운 도박, 가계에 침투한 몹쓸 희망은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세계 최대 은행들 중 일부가 무너지면서 전 세계는 충격으로 휘청거렸다. 이어 2011년 뉴욕을 진앙지로 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시작되었다. 시위자들이 노숙도 불사하며 공식적으로 73일간 시위를 이어가자, 은행가들은 시위자들이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몸을 사렸다.

그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흥미진진’했다. 누구 하나 세계 경제가 얼마나 나빠질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은행에 구제금융이 실시되면서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 경제의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고, 전 세계의 엘리트들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으며, 월스트리트의 점령군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의 혁명인 ‘아랍의 봄’도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후 발발하는 내전, 사회 혼란과 경제 쇠퇴, 종교 간 대립의 고조로 ‘아랍의 겨울’이 찾아오면서 어마어마한 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곳의 사정이 우리 피부에 더욱 가까이 와 닿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세계주의의 폐단이 우리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영국인들이 투표로 EU 탈퇴를 결정했을 때였다. 이어서 도널드 J.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근의 화두는 불평등이다. 세상이 여전히 불공평하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그러나 전 세계 엘리트의 대부분은 다양한 증거를 내세우며 세계주의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라 믿는다. 하지만 엘리트들이 모여서 공론을 펼치는 동안 좌절하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내 고향 첼시의 주민들은 지금 화가 나 있다. 이제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들에겐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속았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수십 년간 말이다. 덕분에 내 동생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줬고,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그분 역시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어머니였다면 지난 30년간 워싱턴 정계에 한 순간이나마 발을 붙였던 사람에게는 절대로 표를 주지 않으셨을테니 말이다.

이런 분노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애팔래치아 지방(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아 산맥에 걸쳐 있는 지역.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교육, 교통, 일자리 등이 전반적으로 열악하다)에서, 가자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북아프리카에서, 동유럽에서. 세계주의자들이 겁을 먹었을까? 전혀 아니다. 미국과 세계경제는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급성장했고, 당장 세계적 혁명이나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우리 모두를 변화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대중의 분노라는 만성적 증상을 감내하면서 사는 법을 터득했다. 왜냐하면 현재의 시스템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 맞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무엇이라 말했던가? 그는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생계 수단을 잃은 사람들이 “울분에 찬 나머지 총기나 종교에 매달리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품거나, 반이민이나 반무역 정서에 기대는 것으로 좌절감을 표출한다”고 했다. 세계주의자들은 이 발언이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무역과 이민을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약속 파기의 문제는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 『우리 대 그들』은 이런 현상의 결과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위협을 느끼면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동맹을 찾는다. 우리는 실존하는 적이나 혹은 날조한 적을 이용해 아군을 모은다. 이 책은 현재 전 세계에서 정치·경제·기술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승자와 패자 사이에 어떤 식의 간극이 벌어질지 이야기한다.


또한, 사람들이 그런 위협 앞에서 어떻게 ‘우리’와 ‘그들’을 규정해 생존 투쟁을 벌일지 이야기한다. 정부가 외부자로부터 내부자를, 국민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장벽을 쌓을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내가 최고로 꼽는 지정학의 거두가 세계주의의 추락과 표퓰리즘의 부상을 불러온 요인을 과연 거장다운 예리함으로 분석한다."  

—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옵션 B》 저자 [애덤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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