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상처는 가까운 사람이 줄까?

조회수 2018. 11. 9.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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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네요.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애초에 우린 서로 안 맞았는데, 그동안 억지로 맞추려고 너무 애써온 것 같습니다.”

결혼 8년 차인 영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영호 부부는 둘 다 변호사로, 부부상담을 하러 오긴 했지만 사실관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한 지 오래다. 이미 3년 전부터 각방을 쓴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동석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고서는 밥을 같이 먹는 일이 없다. 영호만 따로 상담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까지 무언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한 일은 없었어요. 사법고시 공부를 할 때보다 더 노력한 것 같아요. 저는 좋은 가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말 좋은 부부가 되고 싶었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죠.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절망스러워요. 상처밖에 남은 게 없거든요.” 

그가 상담하러 온 이유는 이혼을 앞두고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는 일종의 선언 같은 의미였다. 그는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 했다. 


받은 사람은 많은데
준 사람은 없는 '상처'

지금까지 당신에게 크게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인간관계를 주제로 강의나 워크숍을 할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대답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다. 부모와 배우자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친구, 애인, 형제자매, 직장 상사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하나같이 가까운 이들이다.


우리가 상처받기 쉽다는 말은 거꾸로 우리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존재라는 말과 같다. 당신도 얼마든지 상처를 주는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이라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이타적이기 짝이 없는 사람이거나 공감의 명수여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영호는 이 결혼에서 자기 혼자 너무 많이 노력한 게 억울했고, 자기 혼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기분에 먼저 신경 쓰고, 언제나 인내하고 양보하며, 다툰 뒤에도 먼저 사과하면서 대화를 시도한 사람은 늘 자신이었다.


과연 아내는 별로 힘들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 때문에 아내가 겪었을 고통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노력한 자신 앞에서 아내는 힘들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간혹 아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그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아내가 힘들다고 할 때 영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너 참 이기적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바운더리가 모호해질 때:
관계의 소유욕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상대를 ‘남’이 아니라 나의 일부처럼 여기는 습성이 있다. 사람의 자아에도 바운더리가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바운더리는 흐트러진다. 다시 말해 나의 경계가 일부 허물어지면서 ‘우리’라는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났지만 같은 관심사를 발견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추억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상대의 고통과 기쁨의 일부를 나의 고통과 기쁨으로 느끼게 된다. 친밀함이란 이렇게 ‘나’와 ‘너’가 만나 그사이에 ‘우리’라는 공유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공유 영역은 나와 너의 바운더리가 일부 허물어지며 생겨난 곳이라 어느 한 사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나’이면서 ‘너’인 ‘나-너I-You’의 영역이다. 누군가를 만나 이렇게 바운더리가 허물어지고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누군가와 자주 만나는데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경계가 명료하다면 그 관계는 형식적인 관계일 뿐이다.


문제는 이 친밀함의 양면성에서 생겨난다. 친밀함은 나에게 상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과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늘 또한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서로의 바운더리가 겹쳐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나와 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상대를 나의 일부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누가 뭐라고 해도 상대는 끝까지 내 편이기를 바라고, 상대가 내 생각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기를 바란다. 양상은 다르지만 결국 상대가 상대의 모습대로가 아니라 내 기대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커진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독립적인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관계의 소유욕’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 말은 참 근사하다.

그러나 ‘하나됨’은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우선 '건강한 하나됨'은 불완전한(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되 각자의 개별성을 유지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말한다.


다른 한쪽에는 '신경증적인 하나됨'이 있다. 후자의 중심에는 유아적 애착욕구가 있다. 갓난아이는 양육자가 잠시 떨어지는 것도 공포로 여기고, 양육자가 온전히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아주고 돌봐주기를 바란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안중에도 없다. 아이는 오직 자기 안위에만 신경을 쓴다.


애착이란 자기 생존을 위한 일방적인 집착과 의존을 말한다. 유아의 애착욕구는 정상이지만 성인의 애착욕구는 관계를 파국으로 끌고 가는 원인이 된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대가 자기만 바라봐주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고, 자기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그러고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상대의 개별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상대를 자기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랄 때:
결핍이 몰고 온 파국

인간관계 중에서도 특히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는 내담자들을 상담해보면 공통적으로 ‘상대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크다.

영호는 결혼 전에는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막상 결혼한 뒤에는 바라는 것이 점점 많아졌다. 이성적인 아내에게 따뜻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아내에게 집안일을 나서서 하는 맏며느리가 되기를 바라고, 말로 표현해줘야 이해하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않자 좌절하고 분노했다.

영호는 결핍이 많았다. 학교에 다니느라 일찍이 부모와 떨어져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었던 시절의 외로움도 컸고, 성인이 되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린 데 따른 혼란도 컸다. 그러한 결핍과 불만은 고스란히 아내를 향한 기대로 이어졌고, 이는 더 큰 갈등과 고통을 낳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아내를 좋아했던 그는 어느덧 자신의 기대대로 살아가는 아내를 원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영호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애썼지만 아내는 달랐다. 영호 부부와의 상담은 세 번 만에 중단되었다. 영호는 처음부터 부부갈등의 원인은 아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아내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상담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이 났다. 벌써 5년도 넘은 일이다. 그 뒤로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까? 

영호는 자신의 기대에 맞는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영호는 내면의 결핍을 다른 사람을 통해 해결하게 되었을까?

1. 내면의 결핍이나 삶의 불만을 관계를 통해 채우려고 한다.

2. 가까워지면 상대가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개별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3. 가까워질수록 상대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가 많아지고, 상대가 자기기대 대로 바뀌기를 요구한다. 상대가 바뀌지 않으면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며, 상대를 가해자로 자신을 피해자로 여긴다.

4. 자신을 늘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해주기를 바란다.

5. 비대칭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어, 정작 상대방이 자신에게는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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