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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사 게임은 보기 힘들까?

조회수 2019. 10. 30. 17: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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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관심이 필요한 때!

최근 '시국'이라는 말이 참 자주 쓰이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 분쟁으로 인해 한국내 일본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일본에 여행을 떠나거나 대체가 가능함에도 일본산 물건을 사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국에...'라는 말이 항상 따라붙는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응원하고 죽을 각오로 임하는 게 한일전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던 것처럼, '시국'은 단순히 불매운동을 넘어 반일 감정에도 불을 붙였고, 이는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이 활발해지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3.1운동과 대한민국의 시초이기도 한 망명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며, 당시 관련이 깊은 사건, 인물을 다룬 이야기들이 재조명 받아 각종 매체에서 다뤄졌다.

▶ 영화에서는 [자전차왕 엄복동], [봉오동 전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고민이 담긴 작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것도 있다. 이런 '시국'과 관련한 게임 업계에서의 활동이 하나 둘 있을 법도 한데 꽤 조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 역사를 다룬 게임 자체를 보기 힘들 정도다. 아쉬웠다.

  

'한국사 게임은 왜 없을까?'

  

어딘가 한국사 게임을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보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인재단'을 찾았다.

  

1. 

'게임인재단'은 2013년 게임 산업의 발전과 미래 게임인 육성을 적극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초창기부터 모바일 게임 창업 지원과 미래 게임인재 육성을 위한 청소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한국사 게임 개발 활성화와 한국사 게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사 게임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놀랍게도 내 생각과 비슷했다. '왜 우리 역사를 다룬 게임은 없을까?'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 속 인물이 나오는 게임이 아니라,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게임이 있을 법도 한데, 유독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임이 없었다는 게 활동을 시작한 이유였다.

▶ 게임인재단 CI

 

2.
게임인재단은 여러 개발자와 게임업계 종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사 게임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분석했다.

  

먼저, 지금 게임을 만들고 있는 개발자들이 성장기를 보내던 시절은 일본, 미국의 대중 문화가 국내 문화의 주류이던 시절이었다. 또, 그들이 교육을 받던 시절 한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으므로, 한국사를 소재로 한 게임보다는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주로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사 게임 개발에 뜻이 있어도 다른 장벽이 있었다. 역사 자료가 충분한 신뢰성을 갖고 있는지, 해당 역사 자료를 게임 개발이라는 용도에 사용해도 괜찮을지, 그리고 해당 역사 자료와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의 유무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역사를 다루는 것에 정치를 끼워 맞추는 시각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게임인재단은 인디게임 개발팀 투캉 프로젝트가 만든 한국사를 소재로 한 RPG '난세의 영웅'을 예로 들었다. '난세의 영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대학생 두 명이 한국사를 놀면서 공부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한국사와 게임의 조합을 생각해 개발을 시작한 모바일 게임이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총 10편 분량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현대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각 시대의 퀘스트를 해결하는 게 목적이다.

출처: 난세의 영웅 공식 카페
▶ 투캉 프로젝트의 난세의 영웅. 현재 재 제작을 진행 중이다.

게임 스크립트 내에 한국사와 관련된 사건이나 인물, 물건 등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장점이며, 플레이어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1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화기를 다룬 파트의 출시를 앞두고 재 제작을 선언했다. 역사적 자료에 대한 신뢰성 확보, 저작권 유무 등을 확인하느라 게임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임인재단은 '난세의 영웅'의 사례에서 한국사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역사 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활용 가능 자료의 구분을 용이하게 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멘토'를 붙여주자는 발상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멘토를 찾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를 찾아갔다.

  

3.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역사연구회 같은 한국사 관련 단체들은 '한국사의 대중화'를 이 시대 역사 학회의 주요 화두로 삼고 있었다. 게임업계에서는, 특히 인디개발팀이나 중소개발사에서는 자기 복제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한정된 리소스로 어디서 본 듯한 게임을 자기 스타일대로 만드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소재가 고갈될 우려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소재와 게임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게임인재단은 한국사가 게임 개발에 쓸 수 있는 IP라고 봤다. IP의 본질은 누구나 알고 있고,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있다. 한국사는 이런 IP의 본질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한국 사람 누구나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으며, 이를 게임업계가 의미를 잘 살리는 건 물론 재미까지 줄 수 있다면 한국사 역시 IP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게임인재단은 '게임인 한국사 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사 게임 제작에 여러가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찾아 나섰다. 한국사를 알리고자 하는 역사 관련 기관과 단체를, 한국사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는 게임 개발자, 업체와 매칭해 걱정 없이 게임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 게임인 한국사 나눔 프로젝트가 지원한 첫 번째 게임이 앞서 소개한 '난세의 영웅', 두 번째가 인디게임개발팀 COSDOTS가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만들고 있는 '언폴디드'였다. 사진은 언폴디드의 개발 지원 협약식(사진 제공: 게임인재단)

  

4. 

게임인재단은 현업 개발자를 위한 활동과 함께 미래의 게임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게임 소재로써의 한국사의 가치와 가능성을 알리고 있다. 시작은 2018년 7월 개최한 '2018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였다. 게임인재단은 한국사 강사 최태성 선생과 과거 [충무공전], [임진록], [천년의 신화] 같은 한국사 게임을 만들었던 조이시티 김태곤 CTO를 초청해 '역사 게임'을 주제로 발표와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한국사 게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2018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는 게임업계는 물론 정부와 교육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현장에 '3D 문화유산' 사업을 소개하는 시연대를 마련하고, 경기도에서는 한국사 콘서트를 진행할 장소를 지원했다. 경기도와 시교육청에서도 산하 학교에 공문을 통해 한국사 콘서트의 개최 소식을 알렸다.

  

참고로 한국사 콘서트에 교육계의 지원이 있었던 건 서울시 교육청 산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게임인 토크 콘서트'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게임인재단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 게임이 단순히 노는 문화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하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한국사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2018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 왼쪽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조이시티 김태곤 CTO, 한국사 강사 최태성 선생

2018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의 바통을 이은 건 6월 진행한 '2019 겜춘문예: 로드 투 코믹콘 서울'이었다. 겜춘문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다. 2017년 게임에 관련된 시, 시조, 랩, 영상을 만드는 '게임을 사랑하는 게임인 겜춘문예'를 시작으로 올해 3회차를 맞은 게임인재단의 정규 행사다.

  

게임인재단은 한국 역사 속 영웅을 모티브로 한 게임 캐릭터 공모전의 형식을 띠고 진행된 2019 겜춘문예를 통해 한국사 게임 캐릭터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나아가 게임을 만들 때 한국사를 게임의 소재로 한 번쯤 고민해 볼 계기를 마련했다.

▶ 2019 겜춘문예 대상 수상작 '우당 이회영'(이채연 作) (사진 제공: 게임인재단)

그리고 7월에는 한국사를 주제로 한 'BIC 게임잼(게임x한국사)'을 후원했다. BIC 게임잼은 참가자들이 무박 3일 동안 특정 주제를 가지고 게임을 만드는 청소년, 청년 대상 행사다.

  

게임인재단은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국역사연구회 역사공장의 도움을 받아 고려대학교 배석만 교수를 비롯한 부산지역의 주요 역사 연구자들로 멘토단을 꾸리고, 게임 제작에 앞서 부산 지역 근현대 역사현장 탐방을 지원했다.

▶ BIC 게임잼(게임x한국사) 행사 사진(사진 제공: 게임인재단)

 

5. 

지난 2년간 '게임인 한국사 나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게임인재단은 앞으로도 현업 개발자들과 미래의 게임인이 될 청소년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을 발전시키고 꾸준히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취재에서 게임인재단의 한국사 게임 관련 활동을 소개한 게임인재단 정석원 사무국장은 “한국사 혹은 한국사 속 인물이라는 소재는 이미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콘텐츠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한 좋은 IP로, 특히 올해는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 인 만큼 역사에 대한 일반 대중들에게 역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임인 입장에서는 한 번쯤 주목해 봐야하는 소재이고,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도 전세계 누구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닐까 싶다. 게임인 한국사 프로젝트에 게임인 여러분들은 물론 각 기관과 단체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라며, 한국사에 대한 게임인의 관심을 호소했다.

▶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의 디스커버리 투어

누군가는 "왜 우리는 해외의 게임 개발사처럼 하지 못하는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실 해외의 게임 개발사에게 '역사'는 이미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IP이다. 그들은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게임을 만들 때 자연스럽게 역사를 접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가 대표적이다. 특히,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에서 처음 등장한 '디스커버리 투어'는 역사를 소재로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하면 한국사 게임은 이제 막 걸음을 뗀 참이다. 해외의 게임사처럼 자연스럽게 한국사를 콘텐츠로 녹여내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지금이야 말로, 모든 게임업계 관계자의 관심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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