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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게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조회수 2019. 3. 26. 15: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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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게임의 창궐

사골은 우릴수록 맛이 깊어진다. 그래서 맛집으로 소문난 국밥집의 가마솥은 불을 끄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은 우릴수록 맛이 없다. 더욱이 하나의 IP를 마구 돌려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돈꽃이 흩날리고 어둠이 드리웠다

90년대 초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게임 수입하던 국가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게임개발은 활성화된다.

그러던 중 ‘리니지’라는 MMORPG 게임이 등장한다. 당시 패키지 게임이 장악하고 있던 게임업계에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도전은 누구도 예상 못 한 결과를 낳았다. 전무후무한 대박을 기록했던 것이다. 리니지가 대박을 치는 동안 패키지 게임은 복돌이의 창궐과 개발력의 부재로 인해 내리막을 걷게 된다.

▶ 리니지의 성공은 패키지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전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진은 ‘리니지 리마스터’.

리니지의 성공으로 게임산업에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산업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온라인 게임은 황금기를 향해갔다. 많은 게임회사들이 생겨났다. 그중 몇몇 기업은 기틀을 닦고 대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인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게임개발은 신사업 동력으로써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리니지를 필두로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서든어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박을 치는 게임이 탄생했으며 세계 최초로 e스포츠가 생겨나 스타 프로게이머를 배출하며 게임한류를 불러 일으켰다.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으며 북미나 일본처럼 게임 대국이 되어가는 듯싶었다.

▶ e스포츠의 탄생은 게임한류를 일으켰다. – 출처 게임동아

돈꽃이 마구 흩날리자 이내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온라인게임에서 부분 유료화라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부분 유료화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게임에 대한 엉뚱한 인식을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은 콘텐츠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게임 진행에서 발생하는 절대적인 걸림돌을 해결하는데 지갑을 열게 되었다.

  

가뜩이나 문화 콘텐츠를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인식이 희박한 소비자들에게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제로가 됐다. 이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부분유료 모델을 처음으로 도입한 넥슨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청사진을 자랑했다.

  

유저는 게임이 어려워지거나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게임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지갑을 열어 결제를 함으로써 해결했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은 것이다.

  

게임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의 즐거움 그 자체가 게임의 본질임에도 그것을 망각하고 너무 멀리 나가버렸다. 왕조가 흥망성쇠를 겪듯 PC온라인 게임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연히 이윤에만 매달려 찍어내듯 똑같은 게임만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심 차게 출시되었던 대작 게임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PC게임도 쇠락기를 맞는다.

  

그렇게 돈꽃은 빠르게 졌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PC게임이 쇠락하자, 모바일 게임이 그 자리를 메웠다. ‘드래곤 플라이트’와 ‘헬로 히어로’의 성공은 그동안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있던 게임업계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 드래곤 플라이트와 헬로 히어로의 성공은 모바일 시장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었다.

빠르게 모바일로 태세 전환한 넷마블이 매출 1조를 넘기자 한국 게임 진형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모바일 환경은 PC 온라인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낙원이었다. 온라인게임이 요구했던 자본과 규모보다 훨씬 적은 재화로도 PC 온라인을 넘어서는 과실을 탐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자본과 인력이 모여들었다. PC 때보다 더 많은 개발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또다시 대한민국 게임의 봄이 오는 듯했다. 슈팅, RPG, 리듬 게임, 퍼즐, SNG 등 게임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의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더욱이 유니티, 언리얼 엔진 등의 게임엔진 보급과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로 대변되는 잘 짜여진 시장은 규모가 있는 게임 개발사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개발사에게도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너도나도 모바일로 항로를 잡다 보니 게임은 그야말로 꽃놀이 나온 차들 마냥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경쟁은 극심해졌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개발사들은 PC나 콘솔 등의 다른 플랫폼 게임이나, 기발한 아이디어의 게임을 만드는 것 대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RPG, 특히 수집형 RPG로 몰려들었다. 중소 개발사들이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문제는 대형 개발사들이었다. 그들은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장서 이 어둠의 대열을 이끌었다. 시장은 급속하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저들은 쏟아져 나오는 고만고만한 수집형 RPG에 피로감을 느꼈다.

▶ 수많은 수집형 RPG가 피고 졌으며 지금도 개발되고 있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투자해서 튼튼한 토양을 다지는 대신, 비료만 잔뜩 뿌려버린 것이다. 이미 토지는 그 힘을 다해가고 있었지만 당장의 이윤에 급급해 내실을 다질 생각조차 안 했다. 되는 아이템이다 싶으면 모조리 달려들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웹툰’이었다.

  

모바일게임은 확실한 캐릭터성과 이슈몰이가 필요했다. 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던 웹툰은 게임이 필요로 하는 캐릭터성과 홍보성을 모두 충족시켜주었다.

  

‘갓 오브 하이스쿨’과 ‘와라 편의점’ 등 웹툰 IP를 이용한 게임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모바일 게임은 웹툰 IP 천국이 되어버렸다. 게임으로 만들기에는 누가 봐도 무리일 것 같은 ‘마음의 소리’도 최정상의 웹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게임성이다. 하나의 웹툰 IP를 여러 군데의 개발사가 사들여 개발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성한 사람 하나 발견한 좀비 떼 마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IP 하나를 물고 빨았다.

▶ 다른 이유는 없다! 웹툰 1위의 유명세 그거면 된다!

한국영화나 음악이 인디를 지원하며 작품성과 다양성에 신경을 썼던 반면 게임은 잭팟만을 기대하는 도박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임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업종에서도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그들은 자신의 캐시카우로 쓰기 위해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나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까 하는 개발자들의 고민에는 1도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웹툰 IP를 이용한 게임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웹툰 IP를 따오면 대박은 손 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했다. 웹툰 IP는 하나의 임시방편일 뿐이다. 임시방편은 말 그대로 임시이기 때문에 영구적일 수 없다. 당연히 게임 개발에 대한 철학이 없이 웹툰 IP만 바라보던 게임들은 모조리 무너지기 시작했다.

게임 IP 우려먹기! 그들 만의 리그

웹툰 IP의 시대가 서해바다 낙조처럼 급하게 사라지자 이제는 과거 히트친 게임 IP의 시대가 도래했다. 게임 IP는 웹툰 IP 게임보다 더 심각하다. 그나마 웹툰 IP는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물론 거대자본이 가져갈 확률이 매우 높지만 어쨌든 어떤 개발사이건 IP를 따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게임 IP는 그 IP를 가진 자가 바로 개발사 본인이다. 그들 만의 리그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한 술 더 떠 이제는 자사의 게임 IP를 마구 남발하고 있다. 올해 출시예정인 ‘테라 클래식’의 경우 테라라는 IP로 중국 개발사가 게임을 만들어 카카오가 서비스했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뮤 오리진’도 같은 식이다.

  

넥슨도 ‘테일즈 위버’, ‘크레이지 아케이드 BnB’, ‘바람의 나라’, ‘마비노기’ 등 IP게임을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리니지M의 타노스급 매출로 인해 달콤한 인생을 맞은 엔씨소프트는 IP 우리기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리니지’ IP 게임은 6가지나 되며 ‘아이온’, ‘블레이드 앤 소울’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모바일화 되고 있거나 될 예정이다. 자체개발, 외주개발 가릴 것 없이 IP를 마구 뿌려 대고 있으며, 하나의 게임 IP를 가지고 몇 개의 팀에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 지금까지 이런 복제는 없었다. 이것은 게임인가 사골인가.

대형 IP를 가진 기업은 승승장구했고 업계는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중간지대는 중국 개발사 차지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IP 사골만 우리고 있을 때 중국은 거대한 인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국내 게임시장을 잠식했다. 오히려 ‘소녀전선’, ‘붕괴3rd’ 등 참신한 IP들을 중국 개발사가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정형화된 게임에서 요구되는 것은 수많은 캐릭터 혹은 가챠요소다. 장르적 특성이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 영화 같은 시나리오 따위는 필요가 없다. 이미 게임산업은 노동집약적인 1차산업화로 변질되었으며 똑같은 게임 시스템에 밤낮없이 캐릭터만 찍어내는 공장형 산업이 되었다. 우리가 10명이 죽어라 찍어내는 동안 중국은 100명 아니 그 이상의 인력으로 찍어냈다. 당연히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IP빨로 버티고 있지만 이런 식의 시장이 계속 유지된다면 머지않아 중국산 게임이 국내 게임업계를 집어삼킬 수 있다.

  

자본은 보수적이다. 그래서 당장 이윤이 되지 않는 곳에는 발을 담그길 꺼려한다. 이제는 IP와 MMORPG가 아니면 자본이 들어오질 않는다. 그렇지만 개발사들은 그런 보수성을 깰 줄도 알아야 한다. 당장의 유행이 그렇다고 해서 뒤쫓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현재 가장 성공한 모바일 게임 회사 중 하나가 바로 슈퍼셀이다. ‘클래시 오브 클랜’, ‘클래시 로얄’, ‘브롤 스타즈’ 모두 비슷한 톤을 가지고 있으나 전혀 다른 방식의 게임이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IP로 파생된 클래시 로얄도 캐릭터성만 가져왔지 완전 다른 게임이다. 당장의 이윤에 함몰되어 게임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았기에 세계적으로 통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 톤은 비슷하지만 모두 개성 있는 게임이다.

한국에서도 좋은 기획의 게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컴투스에서 ‘댄스빌’이라는 게임이 출시되었다. MMORPG 천국인 우리나라에 단비와도 같은 게임이 출시되었다는 사실은 암울한 시대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댄스빌의 출시에서 볼 수 있듯이 시도를 하면 좋은 퀄리티의 다양한 게임이 생산될 수 있다. 물론 당장은 MMORPG에 익숙한 유저들의 관심을 끌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계속돼서 다양성이 높아진다면, 장기적으로 시장의 판이 넓어지고, 또 다른 이윤창출을 할 수 있다.

▶ IP와 MMORPG 홍수 속에서 출시된 재기발랄한 게임 댄스빌. 개인적으로 이런 게임은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획일화와 양산형이 가져온 재앙

▶ 오로지 이윤만을 좇으면 대재앙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1847년, 당시 아일랜드 전체 인구 800여만명 가운데 200여만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200여만 명은 먹을 것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훗날 ‘아일랜드 대기근’이라 불린 참사다. 아일랜드는 주식이었던 감자를 대량생산 가능하고 더 맛있는 품종으로 개량했다. 지속적인 품종개량은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한 감자만을 남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많은 감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하지만 유전자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인지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감자 역병의 출현은 손쓸 새도 없이 재앙이 되었다. 모든 감자가 순식간에 죽어버린 것이었다. 품종개량으로 하나의 유전자만 남은 상태였기에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굶어 죽었다.

  

지금의 게임판도 저 개량된 아일랜드 감자와 같다. 게임의 다양성은 무너진 지 오래며 업계는 대기업과 1인 개발의 극과 극의 상황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축소되면서 재앙이 찾아왔듯이 IP 장사만 남은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창출이라고 한다. 누구나 수긍하는 말이며 교과서적인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발사가 IP를 이용해 장사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유저들이 외면하는 장르나 플랫폼에 도전하는 것이 기업의 이윤 창출이라는 목표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항변할 수 있다.

  

골목식당으로 유명한 백종원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피 같은 레시피를 그리 쉽게 공개해도 괜찮나?’는 질문에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외식업이 부흥하게 되면 자신의 사업이 진출할 수 있는 바닥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돈을 버는 것에 투자하는 셈이라고 답했다.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이익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다양한 게임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활성화되고 건강해진다는 뜻이고 시장이 건강해야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과 능력이 지금 업계를 선도해 나가는 기업들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얄팍하게 자기복제나 일삼아 생기는 이익에 만족하지 말았으면 한다. 큰 그림을 그려 우리나라 게임판이 건강해지는데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야 말로 게임이 마약 따위로 치부되어 사회적 질타를 받는 말도 안되는 코미디를 보지 않는 길이며, 게임회사 사장이 국감장에 불려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혼나지 않는 길이다.

▶ 건강한 게임토양을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딴 소리나 들으며 개돼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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