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자동사냥의 민낯, 스피릿위시에 대한 단상
모바일 게임, 특히 모바일 MMORPG에서 자동사냥(오토) 기능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이것이 게임이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없으면 오히려 불편하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당연한 기능이 되었다.
하지만 자동사냥을 둘러싼 논란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자동사냥이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자, 이번에는 자동사냥을 과할 정도로 집어넣은 모바일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동사냥에만 의존하고, 게이머의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 게임은 과연 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것을 게임이라 부른다면 거기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 1월 17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넥슨의 모바일 MMORPG, ‘스피릿위시’를 하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전략설정?!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하자.
자동사냥이 알파요, 오메가
그 동안 직업(?)때문에 수많은 모바일 MMORPG를 체험해 봤지만, ‘스피릿위시’는 그 중에서도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게임이다. 그 동안 유행해 왔던 자동사냥 기능이 어디까지 게임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방점'을 찍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 ‘스피릿위시’는 A부터 Z까지 모두 자동사냥에 맞춰져 있다.
‘스피릿위시’는 모바일 MMORPG로 자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방치형 게임’에 훨씬 가깝다. 플레이타임의 90%는 별 다른 조작 필요 없이 그저 켜 놓고 다른 일을 하면 된다. 퀘스트 진행이나 가방 정리, 장비 교체 정도만 신경 써주면 된다.
스킬과 공격을 자동으로 진행하는 ‘오토’, 기본 공격만 자동으로 실행하는 ‘세미 오토’, ‘수동’ 전투를 모두 지원한다. 또 3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개별 또는 전체로 조작하는 멀티 캐릭터 전투도 지원하기는 한다.
한마디로 '전략'이라는 이름 하에 거의 매크로 수준으로 상세하게 자동사냥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멍청한’ 자동사냥 대신 상세한 행동 패턴을 설정해 게임 내에서 좀 더 효율적인 자동사냥을 이용할 수 있다. 나쁘게 말하면 모바일 MMORPG를 자칭하는 ‘스피릿위시’의 본질을 말해주는 기능이기도 하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의 모든 부분이 자동사냥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은 심지어 유료 아이템 판매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스피릿위시’는 ‘프리미엄 서비스’라는 아이템을 팔고 있다. 28일 사용 조건으로 1만 1천원을 받는 아이템이다. 전투 상태에서 게임을 종료하면 최대 24시간 동안 캐릭터의 자동 사냥이 가능한 서비스다.
이 아이템의 핵심은 게임이 꺼져 있을 때도 알아서 자동사냥을 진행해 주는 것이다. 개발사 측에선 해당 서비스는 유저들의 게임 환경에 따라 스피릿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돕기 의한 의도로 기획됐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냥 방치형 게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스피릿위시’라는 게임의 모든 부분이 노골적으로 자동 사냥에 맞춰져 있다. 때문에 레트로 감성의 그래픽이나, 세로 모드도 가능하다는 점 등의 나름 독특해 보이는 부분은 빛이 바랜다. 어차피 자동사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데 레트로 ‘감성’ 그래픽인지, 아니면 양산형 3D 그래픽인지 알 바가 무엇인가? 세로 모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게임의 유일한 컨텐츠는 자동사냥 뿐이다.
‘방치형 게임’이라는 장르가 유행할 정도로 여기에 나름 재미를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스피릿위시’에서는 공허함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읽지도 않을 스크립트를 스킵 해가며 그저 다음 퀘스트 진행을 눌러주는 정도가 나의 역할이라면 이것이 어째서 모바일 MMORPG인가라는 회의감만 든다.
차라리 모바일 MMORPG라 ‘자칭’하지 말자. 아예 퀘스트까지 자동진행 하고, 인벤토리도 알아서 비워주는 기능을 집어넣었다면 완벽한 ‘방치형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 편이 오히려 ‘방치형 게임’이라는 장르 적인 측면에서 훨씬 완성도 있는 모습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사냥으로 구성되어 있는 ‘스피릿위시’의 노골적인 모습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을 연상케 한다. 파이프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는 그림이다. ‘스피릿위시’는 그 반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이 아닌 것 밑에 ‘이것은 게임이다’라고 적혀 있는 모습 말이다.
물론 개발사 말대로 난이도 높은 던전에서는 어느정도 수동조작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플레이 시간을 스마트폰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니 현자타임이 왔다. 요즘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MMORPG의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