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방위대 후뢰시맨'과 '무적 파워레인저', 당신의 '파워레인저'는 무엇?
우리는 종종 같은 콘텐츠지만 이름이 달라서 혼동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캡콤의 횡스크롤 액션 게임 '록맨'은 일본에서는 '록맨', 해외에서는 '메가맨'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국에서는 록맨과 메가맨 둘다 자주 쓰이고 있어서 유저들끼리 "록맨이 먼저다.", "아니다, 메가맨이 먼저다." 같은 이상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죠.
우리의 어릴 적 영웅인 '파워레인저'도 그렇습니다. 앞선 록맨, 메가맨 논란과 다르게 이름은 같지만 콘텐츠 내용이 다른 경우죠. 국내 출시된 파워레인저IP 활용 게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슈트 모양은 같지만 '파워레인저 대시'라는 게임에서는 '티라노 레인저'라는 이름인데, '파워레인저: 레거시 워'라는 게임에서는 '제이슨 리 스콧'이라는 이름이죠.
왜 같은 '파워레인저'인데 속은 이렇게 다른 걸까요? 이번 시간에는 어디서부터 이런 혼란이 시작된 것인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파워 레인저의 기원, 슈퍼전대 시리즈
우리가 아는 '파워레인저'의 기원은 일본 토에이의 특수 촬영 드라마 '슈퍼전대 시리즈'입니다. 1975년 방영된 '비밀전대 고레인저'를 시작으로, 현재 방영 중인 '쾌도전대 루팡레인저 VS 경찰전대 패트레인저'까지 무려 43년 동안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죠.
우리가 파워레인저 하면 생각하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분홍의 쫄쫄이 슈트, '조드'로 대표되는 메카들도 매 시리즈마다 공룡, 동물, 첩보원, 경찰, 닌자, 권법가, 마법사, 기차 등 다양한 콘셉트를 접목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특징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슈퍼전대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층도 두텁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본적으로는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지만, 성인이 봐도 손색없는 깊이를 보여주는 때도 있죠.
- 공룡전대 쥬레인저가 미국에서 파워레인저로 재탄생
파워레인저는 1993년 미국에서 시작했습니다. 슈퍼전대 시리즈의 16번째 작품인 '공룡전대 쥬레인저'를 미국에 맞게 각색한 '마이티 몰핀 파워레인저'가 그 처음이었죠. 메카나 슈트 디자인은 쥬레인저와 동일했지만, 등장 캐릭터와 메카의 이름, 배경, 음악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여줍니다. 특히,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오프닝은 지금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있죠.
또, 새로운 전대가 나올 때마다 세계관이나 등장인물이 달라지는 슈퍼전대 시리즈와 달리, 선역, 악역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이 크게 변하지 않고 슈퍼전대 시리즈의 새로운 슈트 디자인, 메카를 가져오는 등 원작과는 다른 오리지널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완전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죠.
- 일본에서는 슈퍼전대 시리즈, 미국에서는 파워레인저, 한국에서는?
앞선 내용을 정리하면, 일본에서 시작된 '슈퍼전대 시리즈'가 미국으로 넘어가 각색된 것이 '파워레인저'이며, 각각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큰 차이를 보여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좀 복잡합니다.
'슈퍼전대 시리즈', '파워레인저' 중에 한국에 먼저 소개된 것은 슈퍼전대 시리즈였습니다. 1989년 한국의 기업 '대영팬더(당시 대영비디오 프러덕션)'가 '초신성 플래시맨'을 시작으로 총 6편의 슈퍼전대 시리즈를 수입, 비디오로 출시했죠. 일본 문화 개방이 다 이뤄지지 않았던 때라 제목이나 캐릭터 이름, 목소리 등 모두 현지화를 거쳐 출시됐습니다.
초신성 플래시맨은 한국에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돼 비디오 대여점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에 따르면 1989년 9월 어린이가 가장 많이 본 비디오 전체 4위, 1991년 8월 어린이가 가장 많이 본 비디오 4위 이내, 1994년 8월 대여 순위 3위 이내를 기록했을 정도래요. 지금도 많은 이가 후뢰시맨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대영팬더가 '슈퍼전대 시리즈'를 국내에 소개하고 있던 가운데, 1994년에는 KBS가 북미에서 방영된 '마이티 몰핀 파워레인저'를 '무적 파워레인저'라는 이름으로 현지화해 방영했습니다. 이미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이 비디오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던 만큼, '무적 파워레인저' 역시 최고 시청률 56.4%를 달성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역대 한국 만화 시청률 중에는 날아라 슈퍼보드(56.9%) 다음으로 2위라고 해요.
'지구방위대 후뢰시맨'과 '무적 파워레인저'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만큼, 이를 탐탁치 않게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은 '수입금지 일본비디오 활개', '국교생들 저질 폭력비디오 즐겨'와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비판 대상이 되었고, '무적 파워레인저'는 YMCA에게 "'무적 파워레인저'는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을 모방한 작품이다."라는 황당한 비판을 듣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워레인저를 비롯한 해외의 특수 촬영 드라마는 꾸준히 국내에 수입, 방영됐습니다. 대표적으로 SBS는 '마이티 몰핀 파워레인저'의 후속작인 '파워레인저 지오', '파워레인저 인 스페이스', '파워레인저 와일드 포스'를 각각 '지오레인저', '메가레인저', '파워포스레인저'라는 이름으로 방영하기도 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슈퍼전대 시리즈'와 '파워레인저'는 나름 구분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워레인저'는 그대로 파워레인저였고, '슈퍼전대 시리즈' 역시 이름이 바뀌긴 했어도 그 뉘앙스가 바뀌진 않았거든요. 무슨 전사 무슨 맨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던 중에 2004년 7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투니버스'를 통해 방영된 '파워레인저 다이노썬더'를 시작으로 한국에 방영되는 '슈퍼전대 시리즈' 기반의 특수 촬영 드라마도 '파워레인저'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이름 때문에 미국판 파워레인저를 생각하는 이도 많았지만, 실제로는 슈퍼전대 시리즈의 27번째 작품 '폭룡전대 아바레인저'를 현지화한 작품이었어요.
'파워레인저 다이노썬더'가 인기를 끌면서 SBS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주인공 금나라(박신양 분)가 열창한 것으로 유명한 '파워레인저 매직포스(원작 마법전대 마지레인저)', 전대미문의 완구 대란을 일으킨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원작 수전전대 쿄류저)',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파워레인저 갤럭시포스(원작 우주전대 큐레인저)'까지 매년 일본의 슈퍼전대 시리즈가 '파워레인저'라는 이름을 달고 한국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 한국의 '파워레인저' = 슈퍼전대 시리즈 or 파워레인저 시리즈
지금까지 '파워레인저'의 파란만장한 이름 변천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정리하면, 현재 한국에서 '파워레인저'라 불리는 작품은 일본의 슈퍼전대 시리즈를 가져온 '파워레인저'와 미국의 파워레인저 시리즈를 가져온 '파워레인저'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2004년 이후로 국내에서의 미국 파워레인저 시리즈는 맥이 끊긴 상황이고, 슈퍼전대 시리즈가 벌써 10년 이상 파워레인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만큼, 요즘 파워레인저라고 한다면 전자의 의미가 강하겠네요.
끝으로 국내에 출시되는 파워레인저 게임이 슈퍼전대 시리즈 기반인지 파워레인저 시리즈 기반인지 확인하는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