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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비 매치’를 아십니까?

‘피파 온라인 4’로 보는 축구의 역사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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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라이벌전은 언제나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특히 축구에서 라이벌전은 거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라이벌끼리 펼치는 매치를 더비 매치라고 한다.

   

더비 매치(Derby match)는 같은 도시나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끼리의 경기다. 이는 19세기 중엽 영국의 소도시 더비(Derby)에서 기독교 사순절 기간에 성 베드로(St. Peters)팀과 올 세인트(All Saints)팀이 치열한 축구 경기를 벌인 데서 유래한 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발췌)

    

사전에도 쓰여 있듯이 더비 매치는 그야말로 치열하다. 때로는 불상사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기도 하다(심지어 축국 결과 때문에 살인까지 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일반 경기보다 더 큰 기대와 재미를 준다. 더비 매치가 평범한 경기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피파 온라인 4’에서의 더비 매치를 어떻게 치뤄야 할지 그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 매치를 알아보자.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 AS로마 VS SS라치오

수도 더비를 뜻하는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하는 두 팀 AS로마와 라치오 간의 경기를 말한다. 흔히들 세리에 A의 대표적인 더비를 꼽으라 하면 AC밀란과 인테르 간의 밀라노 더비를 꼽는다. 하지만 수도 더비의 격렬함에 비하면 밀라노 더비는 그냥 애들 장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 이탈리아 최고의 더비 매치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1920년대 초 이탈리아는 비록 통일된 나라였지만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고 있었다. 공업화를 이뤄 부유했던 북부 이탈리아에 비해 남부 이탈리아는 구조적인 차별과 빈곤, 이민 문제에 허덕이고 있었다. 북부인들은 남부인들을 후진적이라고 비난 했으며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통합이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파시즘을 앞세운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쇼 정당이 쿠데타에 성공하게 된다.

   

무솔리니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남부 이탈리아의 축구팀을 ‘단결, 결속’을 뜻하는 파시즘의 캐치프레이즈 아래 합병했다. 이는 당시 세리아 A를 평정하고 있었던 밀라노, 토리노, 제노아로 대표되는 북부 클럽들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1927년 로마를 연고로 한 팀은 SS라치오, 알바(Alba), 포르티투도(Fortitudo), 로만(Roman) 이었다. 알바, 포르티투도, 로만 3개의 클럽이 AS 로마(Associazione Sportiva Roma, 로마 연합)라는 이름으로 합병했고 이 과정에서 SS라치오는 통합을 거절한다.

    

SS라치오의 팬들은 27년이나 늦은 AS로마가 자신을 제치고 로마를 대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AS로마의 팬들은 SS라치오가 통합에 반대한 세력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는 격렬해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파시즘에 있다. 두 팀의 서포터들은 경기장 안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나치식 경례를 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경기 전 짐 검사에서 칼, 도끼 등의 흉기는 물론 사제폭탄까지 적발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팬들간의 무력충돌은 다반사였고 1979년 빈센조 파파렐리 라는 라치오의 팬이 AS로마의 팬이 발사한 홍염에 맞고 사망하기까지 한다.

▶ 폭력사태, 나치 경례는 물론 각종 연장(?)들이 적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가 열리는 날은 수도 로마 전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서로를 향해 욕설을 퍼붓던 양팀의 팬들을 일순간 하나로 단결(?)시킨 싸이. 불행하게도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경기장에 나타난 동양인에 대한 야유가 그 이유였다

수페르클라시코 : 보카 주니어스 VS 리버 플레이트

▶ 남미 최대의 더비 매치 수페르클라시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고로 하는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더비 경기를 뜻하는 수페르클라시코는 남미 최고의 더비 매치로 손꼽힌다. 노동자 계층이 살고 있는 ‘보카’ 지역에 기반을 둔 보카 주니어스와 부르주아 계층이 살고 있는 ‘누녜스’지역에 기반을 둔 리버 플레이트의 경기는 평범한 축구경기를 넘어선 계층적 갈등도 내포하고 있다.

    

보카와 리버의 팬들은 서로를 닭과 돼지로 조롱한다. 보카는 리버를 ‘닭(Gallinas, 닭이라는 뜻과 더불어 겁쟁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이라고 조롱하며 리버는 보카 팬에게 냄새 난다는 의미로 ‘돼지’라 조롱한다. 실제로 카를로스 테베즈는 골 세리머니로 닭 흉내를 내다가 퇴장 당하기도 했다.

▶ 보카 주니어스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리버 플레이트 응원석에는 돼지 풍선이 둥둥 떠다닌다

영국의 옵서버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50가지 스포츠 이벤트’중 수페르클라시코를 첫 번째로 꼽았다. 경기장 양분한 인차(hinchadas, 팬)들의 불꽃, 꽃가루, 깃발, 휴지폭탄 퍼포먼스는 어디서도 보지 못할 장관을 연출하며 욕설과 살인태클, 경기당 평균 2장 이상의 레드카드가 난무한다. 또한 팬들간의 난투극도 심심찮게 벌어지기 때문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찰 2,000여명이 투입된다. 한마디로 남미 특유의 광란(?)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수페르클라시코다. 현재는 계층간의 갈등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냥 서로를 싫어한다.

▶ 꽃가루, 휴지폭탄 쇼 등 환상적인 경기장 분위기는 수페르클라시코의 트레이드 마크

슈퍼 매치 : FC 서울 VS 수원 삼성 블루윙즈

▶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슈퍼매치는 K리그 대표 더비 경기이다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라이벌 전으로 K리그 최대의 더비 매치다. FC 서울의 전신은 안양 LG 치타스다. 따라서 양 팀의 경기는 재계의 라이벌인 LG와 삼성의 대리전 양상을 띄기 시작했으며 수원 삼성의 코치로 있었던 조광래 코치가 안양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급격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조광래 감독은 수원 삼성의 김호 감독과의 불화로 수원을 나오게 되었기에 두 감독의 신경전도 더해졌다. 안양 프론트가 특별수당까지 약속하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조광래 감독의 지도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안양의 전력이 급상승 했다.

    

그로 인해 수원과의 매치가 더욱 박진감 넘쳐졌으며 안양이 서울로 연고를 옮김으로써 현재와 같은 슈퍼매치가 완성된다. 서울 서포터들의 서정원 선수의 유니폼 화형식이나 안정환 선수의 관중석 난입 등의 잔잔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과격하지 않게 더비 매치를 즐길 수 있다.

▶ K리그 관중이 많지 않지만 슈퍼매치는 예외다

노스웨스트 더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리버풀 FC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해 노스웨스트 더비로 불리며 레즈 더비로 불리기도 했다. 

▶ 지역 라이벌이자 프리미어리그 전통의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FC. 사진은 2010년 박지성 선수가 리버풀을 상대로 역전 헤딩골을 터뜨리는 장면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30마일 밖에 안 떨어져 있을 만큼 가까운 도시였으며 맨체스터의 공산품이 리버풀의 머지사이드 항구를 통해 해외로 수출되면서 두 도시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사이 좋은 이웃도시였다. 그러던 도중 늘어나는 물류비에 부담을 느낀 맨체스터가 리버풀을 통하지 않고 바로 아일랜드 해로 연결되는 운하를 건설했고 이 운하로 인해 리버풀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로 인해 두 도시 사이에 적대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감정이 노스웨스트 더비를 격렬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라이벌전은 언제나 격렬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약간의 영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노스웨스트 더비는 지역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오래 전부터 맨유와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놓고 늘 경쟁했지만 과거 맨유의 감독 맷 버스비 경과 빌 샹클리 리버풀 감독은 절친이었으며 맨유의 레전드 보비 찰튼경은 리버풀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따라서 노스웨스트 더비는 순수하게 라이벌로써의 경기라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 물론 악명 높은 훌리건들에 의해 험악한 상황이 연출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디어 번뜩이는 조롱거리(?)들로 재미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맨유 팬이 리버풀을 조롱하기 위해 띄운 경비행기. 유나이티드가 리그 우승을 20번 할 동안 제라드(리버풀의 대표선수)는 0번이라는 재기 발랄한 문구가 돋보인다

맨체스터 더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맨체스터 시티

▶ 리그 우승을 다투는 두 팀의 더비 매치는 항상 치열하다

같은 연고를 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더비 매치. 최근 떠오르고 있는 더비로써 맨시티 구단주 만수르의 천문학적인 투자로 맨시티의 전력이 리그 탑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지금의 쫄깃한 더비 매치가 되었다. 노스웨스트 더비나 북런던 더비(아스날 VS 토트넘) 같은 전통의 더비에 비해선 무게감이 떨어진다.

   

현재 맨체스터 더비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무리뉴와 과르디올라의 관계다. 맨유의 사령탑 무리뉴와 맨시티의 수장 과르디올라의 애증의 관계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다. 1996년 무리뉴가 바르샤의 코치 겸 통역으로 일할 때 과르디올라는 중원의 핵심선수로 뛰고 있었다. 그 시절 과르디올라와 무리뉴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96-97 시즌 빌바오 전이 끝난 후 무리뉴가 빌바오 감독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고 분노한 루이스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에게 다가갔을 때 과르디올라가 이를 막고 대신 싸워준 일화는 유명하다.

▶ 맨유의 감독 무리뉴와 맨시티의 감독 과르디올라 간의 애증의 관계는 맨체스터 더비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이렇게 친했던 두 사람의 우정은 2008년 FC 바르셀로나 감독 선임을 두고 틀어지게 된다. 무리뉴는 바르샤의 감독이 공석이 되자 바르샤의 감독직을 지원하였고 수석코치로 과르디올라를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르샤 수뇌부 생각은 달랐다. 바르샤는 카탈루냐 출신의 과르디올라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무리뉴는 크게 실망하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무리뉴의 거침없는 언행은 둘 사이를 더욱 틀어지게 하는데 일조한다. 2010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무리뉴의 인터밀란은 과르디올라의 FC 바르셀로나와 격돌하게 된다. 이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무리뉴는 캄프 누 경기장 안으로까지 들어와 격한 세리머니를 시전한다. 이 격한 세리머니로 인해 과르디올라는 물론 바르샤의 선수와 팬들도 무리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그 후 무리뉴가 FC 바르셀로나의 최대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선임되며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악명 높은 무리뉴의 언론플레이는 과르디올라도 예외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집요하고 심하게 압박했다. 오죽하면 무리뉴의 언론플레이에 화가 난 과르디올라가 인터뷰 중 욕설을 내뱉을 정도였을까.

   

과르디올라 역시 무리뉴의 이런 언론플레이를 정면으로 받아 치기 시작했다. ‘이 바닥에서 경쟁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존재들이다’라는 무리뉴의 인터뷰에 대해 “그와 비슷하다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이라는 독설을 날렸다. 

▶ “아직 끝난게 아니야” 2010년 인테르와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선수와 대화 중 인테르 감독인 무리뉴가 다가와 한 말. 당시 인테르는 핵심 미드필더 티아고 모타가 퇴장 당했고 바르샤의 관중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결과는 인테르의 결승진출

무리뉴가 맨유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후 공교롭게도 과르디올라는 같은 연고의 맨시티의 사령탑이 되었다. 스페인에서의 전투(?)가 잉글랜드로 옮겨간 모양새가 된 맨체스터 더비. 앞으로 맨체스터 더비가 기대되는 이유다.

엘 클라시코 : 레알 마드리드 VS FC 바르셀로나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빅매치. 전세계 축구팬들이 죽기 전 반드시 직관(직접관람)을 꿈꾸는 꿈의 경기. 독자적인 TV중계권을 가지고 있으며 생중계 시청인구만 5억명에 이른다는 단일 경기 사상 전무후무한 더비 매치가 바로 엘 클라시코다. 엘 클라시코는 ‘고전의 승부’를 뜻하며 축구가 가장 유명해 축구 더비로 주로 기억되지만 농구나 다른 스포츠에도 전통의 라이벌 전에는 엘 클라시코를 붙인다. 

▶ 축구팬이 아니라 해도 엘 클라시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출처 – 정은지, 박신혜 인스타그램

엘 클라시코 역시 그 격렬함의 배경에는 정치적인 상황이 맞물려 있다. 1899년 스위스, 영국, 카탈루냐 팬들이 모여 FC 바르셀로나가 창단된다. 그리고 3년 후인 1902년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마드리드 FC가 창단된다. 카스티야 지방을 중심으로 스페인을 통일한 왕실은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방편으로 마드리드 FC를 적극 활용 하였다. 왕실은 마드리드 FC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1920년 알폰소 13세는 ‘REAL’이라는 칭호를 하사한다.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끝임 없이 독립을 주장했던 카탈루냐는 왕실로부터 탄압을 받았고 탄압은 쿠데타로 스페인을 집어 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에 이르러 절정에 치닫게 된다. 프랑코 정권은 카탈루냐 지역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준 것은 물론 카탈루냐기와 카탈루냐어 마저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

   

울분에 싸인 카탈루냐인들에게 캄프 누(FC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는 울분을 배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카탈루냐기를 흔들고 목이 터져라 카탈루냐어를 외쳤다. 대규모 소요사태를 우려한 프랑코 정권도 캄프 누에서의 이러한 행동을 막지는 못했다.

▶ FC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 캄푸 누는 카탈루냐인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와 같다

프랑코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태생적으로 남아있는 앙금은 여전히 경기장에서 격렬히 불타오르고 있다. 축구경기를 넘어서는 감정이 양팀 팬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래서 절대 질 수 없는 경기가 되었다. 리그 우승이 확정되었더라도 엘 클라시코에서 패배한 감독은 경질설에 휩싸일 정도인걸 보면 팬들의 마음에 엘 클라시코의 중요함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경기의 격렬함만으로는 5억명이나 시청하는 세계 최고의 더비 매치라는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엘 클라시코가 전세계인의 축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갈락티코’ 스페인어로 은하수를 뜻하는 이 말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정책을 상징하는 단어다. 은하수처럼 많은 스타를 영입하겠다는 어마어마한 포부를 가진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수집하듯이 영입했다. 지단, 호나우두, 베컴 등으로 시작한 갈락티고 1기에서부터 현재 호날두, 베일 등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몸값의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갔거나 현역으로 뛰고 있다.

   

반면 FC 바르셀로나는 ‘라 마시아’로 대표된다. ‘라 마시아’는 ‘농장’이라는 뜻으로 유소년 육성 정책을 의미한다. 특별한 모기업 없이 조합으로 운영되는 FC 바르셀로나는 높은 몸값을 지불하기 보다는 전세계의 유망한 유소년을 슈퍼스타로 키워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대성공을 거뒀으며, 메시, 이니에스타, 사비, 부스케츠 등의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을 육성했다.

▶ 현재 엘 클라시코를 대표하는 두 명의 신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지역적 감정과 더불어 탈 지구급 선수들이 선보이는 예술적 플레이에 스페인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 역시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엘 클라시코는 격렬함과 예술성이 혼재된 세기의 명작이다.

▶ 더비 매치, 키보드가 부서지더라도 모든 기술과 열정을 쏟아 부어 반드시 승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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