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과 부활절 달걀

조회수 2018. 4. 2. 15: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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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이스터 에그, 뭐가 있을까?


※ 주의: 본 칼럼에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는 만우절과 기독교의 명절 중 하나인 부활절이 겹쳤습니다. 부활절은 춘분 후 만월이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이므로 매년 다릅니다만, 어쨌든 부활절에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의미로 색을 입힌 달걀을 이용합니다. 이것을 바로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부활절에 이스터 버니(부활절 토끼)가 이스터에 그를 이곳저곳에 숨겨놓는다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게임에서 숨겨진 요소들을 이스터 에그라고 합니다. 

▶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도 부활절은 몰라도 이런 건 아실 겁니다

지난 3월 28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70~80년대에 소년이었던 이들을 위한 헌정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 게임에 개발자가 숨겨놓은 3개의 미션을 깨서 “이스터 에그”를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제작자가 남겨놓은 막대한 부를 얻는 한편, 오아시스를 자기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도 얻게 됩니다. 

▶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번 꿈꿔볼 만한 ‘겜잘알’이 지배하는 세상?
▶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 게임이 영화의 주 무대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수많은 서브 컬처들의 요소들이 녹아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나오는 크레딧 마지막에는 작품에 출연해도 괜찮다고 허가해준 카메오 리스트가 한참 동안 나옵니다. 건담이나 아이언 자이언트, 영화 <샤이닝>,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안처럼 큼직하게 나오는 것들도 있지만, 대사 한마디, 복장 하나에 녹아 있는 패러디와 오마주를 찾는 것도 있어서, 카메오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모두 찾으려면 나중에 블루레이를 사서 정지 샷으로 봐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최근의 게이머들에게는 오버워치의 트레이서나 스타크래프트의 짐 레이너 등이 금방 눈에 띄는 요소이겠지만, 사실 이런 요소들은 젊은 관객을 잡기 위한 요소로 집어넣은 것일 뿐, 원작 소설은 70-80년대의 서브컬처 요소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바로 아타리입니다. 

▶ 어렸을 때부터 건담을 좋아했던 저는 건담 나오는 장면에서 그만 눈물을… 건담 실사화는 할리우드에서 해야 합니다!!! (G-SAVIOR라는 이름으로 이미 했지만 망했음)
▶ 이외에도 트레이서, 춘리, 스파르탄(헤일로) 등 유명한 캐릭터도 다수 등장합니다. 대부분은 잠깐 지나가는 역할이지만요
▶ 영화도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 스티븐 킹 원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이 아예 게임 스테이지로 등장하기도 하죠.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오아시스의 제작자, 할리데이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세대입니다만(가상의 인물이지만), 미국에서 70-80년대를 소년으로 보낸 사람과 결정적인 큰 차이가 있으니, 바로 아타리 2600의 존재입니다. 필자는 1983년, 국내에 오락실이 퍼지며 갤러그가 유행하던 때에 처음으로 게임을 접했으니 할리데이와 비교해보면 거의 7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아타리 2600은 1977년 발매된 콘솔 게임기로, 4K 해상도를 지원하는 지금의 게임기와 비교해보면 겨우 160X192의 해상도에 램은 128바이트 밖에 안 되는 게임기지만, 그때 기준으로는 오락실에 있던 벽돌 깨기나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의 게임을 즐길 수 있어 본토인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컬러 TV가 1980년대 들어서야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했죠. 어지간히 부자가 아니면 즐겨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아타리 게임기는 1992년까지 판매되었으므로 이후에 즐겨본 분은 있겠죠?)

▶ 아타리 2600을 70년대 말~80년대 초에 만져본 분들은 상당히 부자 또는 외국인 친구가 있지 않았을까요?
<스포일러 주의> 다음의 글들은 영화를 본 분들을 위주로 작성되었습니다.

오아시스를 점령하기 위한 마지막 미션은 아타리 2600의 게임 들 중 하나에 숨어있었습니다. 오아시스의 패권을 잡으려는 회사, IOI에 고용된 게이머들이 아타리의 게임들을 하나하나 플레이합니다만, 모두 실패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게임 사상 최초의 이스터 에그가 바로 <어드벤처(1979)>라는 게임에 숨어있었다는 걸 기억해내고 어드벤처의 이스터 에그를 찾아 미션을 클리어하죠. 어드벤처의 이스터 에그는, 제작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금지했던 아타리의 정책상, 자신이 만든 게임을 자랑할 수 없자 제작자 워렌 로비넷이 게임 속에 자신의 이름을 숨겨둔 것일 뿐이었습니다. 찾아봤자 그저 제작자의 이름이 떡하니 뜰 뿐이었죠.


    

이스터 에그의 발단은 이렇게 게임의 플레이와 상관없는 숨겨진 재미있는 요소 정도였습니다. 이보다 먼저 나온 이스터 에그는 어드벤처의 제작자에게 영향을 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인 거대한 동굴 모험(Colossal Cave Adventure, 1976)에 특정 지역을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숨겨진 명령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스터 에그를 넣는 것은 게임 속에 유행처럼 번져서,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자신의 게임에 이스터 에그를 넣게 됩니다. 

▶ 아타리 2600용 <어드벤처>
▶ 지금 보면 픽셀 몇 개 일 뿐이지만,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용사이고, 드래곤이고, 악마가 사는 던전이었을 것입니다.

이스터 에그의 종류

이스터 에그는 어드벤처의 그것처럼 단순한 정보 전달의 것도 있지만, 이후에 이스터 에그는 장난을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게임 진행에 유리해지는 치트 코드까지 다양해집니다. 이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이스터 에그들을 찾아 분류해보겠습니다. 

전통의 코나미 커맨드 – 치트 키

일본의 제작사 코나미는 ↑↑↓↓←→←→BA의 일명 코나미 커맨드로 유명합니다. 패미컴용 슈팅게임 <그라디우스>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코나미 커맨드는 스피드업을 제외한 모든 파워업을 다 해주는 커맨드로 유명했는데요, 죽지 않고 파워업을 잘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한 번이라도 죽으면 게임이 굉장히 어려워지는 그라디우스 시리즈인 만큼 매우 유용했습니다.


   

하지만 코나미 커맨드가 언제나 유용한 것은 아니라서, 사용하면 아예 파워업이 사라진다거나(파로디우스), 뭐 하는 짓이냐고 농담하는 메시지가 나온다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효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나미 커맨드는 이후 다른 회사의 게임들에서도 채용되어 여러 가지 이스터 에그를 불러오는데 사용된,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스터 에그 중 하나입니다.


    

코나미 커맨드처럼 특수한 커맨드를 입력하는 이스터 에그들은 게임을 더 쉽게, 재밌게 만들어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Show me the money’ 같은 예를 들어볼 수 있겠네요. 

▶ 코나미 커맨드가 최초로 채택된 패미컴 용 그라디우스 II
게임 속 도시전설 이스터 에그 – 그런 거 없다니까?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아재 게이머라면 기억하실 만한 것.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춘리로 특정 조건을 만족해서 깨면 옷을 벗는다는 루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실존하지 않는 도시전설이었죠.


   

이런 식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믿었던 이스터 에그도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디아블로 시리즈의 카우방입니다. 디아블로 1 당시에 ‘소를 100번 클릭하면 카우방에 들어갈 수 있다’ 같은 루머가 있었지만 그건 진짜로 루머였죠. 많은 게이머들이 여러 가지 방식을 모두 시도해봤지만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정보의 출처는 블리자드가 낚시로 퍼뜨린 정보가 시초라고 합니다.


   

그런데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2에 진짜 카우방을 넣었죠. 카우방은 몬스터의 밀집도가 좋아서 레벨업에 최적이었기 때문에 본 게임은 안 하고 카우방만 도는 플레이가 성행했습니다. 디아블로 3의 알록달록 동산도 카우방의 연장이며, 확장팩에서는 진짜 카우방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블리자드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디아블로 1의 확장팩인 헬파이어에는 카우 레벨 관련 퀘스트가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 스트리트 파이터 2 춘리의 엔딩. 여기서 옷을 벗는다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멀쩡한 청소년용 게임이 홀라당 벗을 일이 없잖아?(하지만 당시 일본 게임 중엔 은근 야한 게임도 있었으니 그럴싸하다는 아재의 추억…)
▶ 디아블로 2 개발 중에 최초로 공개된 카우 레벨의 스크린 샷. 그때는 그냥 블리자드가 또 장난치는구나 하는 분위기였는데 진짜 들어갔다!!
날 죽이고 싶나…?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게임을 개발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엔딩을 보기 전까지는 스탭롤을 볼 수 없고, 요즘은 아예 스탭롤이 없는 게임도 있습니다.


   

어쨌든 죽어서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인 걸까요. 어드벤처의 이스터 에그가 그랬듯, 이름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들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것을 넘어서, 개발자들이 아예 캐릭터로 등장하는 일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파이널 판타지 4의 숨겨진 개발실에는 개발 스탭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개발실 종류는 많은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이 좀 다르게 표출된 게임들도 있죠. 개발자와 싸우고 죽여야 하는 게임들이 대표적입니다. 고전 FPS 게임 <둠 II>의 마지막 맵을 깨기 위해서는 거대한 악마 두상의 구멍에 로켓 런처 3방을 맞춰야 하는데, 이게 실질적으로는 뒤쪽에 숨겨진 ‘존 로메로의 잘린 머리’에 맞아야 대미지를 받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존 로메로의 머리를 확인할 수 없지만,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치트키를 쓰면 찾을 수 있습니다. 

▶ 죄악의 우상(Icon of Sin) 뒤에 숨겨져 있는 존 로메로의 머리는 치트를 쓰지 않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 디아블로 3에도 개발자 던전이 있습니다. 오리지널 때에는 액트 1에서 ‘개발 지옥’을 찾을 수 있었으며, 확장팩에서는 네팔렘의 차원 균열에서 랜덤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발자 몬스터를 해치우는 곳이죠.
너희들이 그런 걸 찾으니 내가 곤란하잖니

가끔은 의도하지 않은 사태에 의해 이스터 에그 아닌 이스터 에그가 나오기도 합니다. <GTA 산 안드레아스>는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만, 너무 야하다고 생각돼서 인지 발매 당시에는 그 요소를 빼 버렸습니다. 하지만 게이머들이 게임을 뜯어보다가 그 존재를 발견하고, 즐길 수 있도록 모드를 제작합니다. 이것이 일명 “핫 커피 모드” 사태입니다.


    

핫 커피 모드가 언론에도 보도되는 등 큰 물의를 일으키자, ESRB(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 는 게임의 등급을 18세 이상 이용제한가 등급인 AO등급으로 상향 조정했고, 이후 락스타는 해당 요소를 삭제한 버전을 재발매하면서 등급을 하향 조정합니다. 이때 락스타는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격도 당하고 법정 소송도 당하는 등 큰 곤란을 겪게 됩니다.


   

요즘은 게임 모드(MOD)가 많아지니 이후에 사용할 예정이었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도 그냥 넣어버리고 알아서 사용하라고 하는 게임들도 꽤 많아졌습니다. 

▶ 지금 보면 그래픽이 너무 구려서 하나도 안 야해 보이는데…??? (그래도 일단 가렸습니다)
코드가 너무 어려워서 개발자도 까먹었어!!!

SFC용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택틱스 오우거>는 심도 있는 스토리와 전략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타이틀이었습니다. 택틱스 오우거의 전작인 <전설의 오우거 배틀>에는 ‘카오스 프레임’이란 요소가 있어서,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따라서 플레이어의 성향이 결정되어 게임 진행과 엔딩, 유닛의 육성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후속작인 택틱스 오우거도 엔딩이 여러 가지인 이상, 분명 그런 요소가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죠. 알고 보니 카오스 프레임은 택틱스 오우거에도 숨겨진 수치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택틱스 오우거의 발매 후 무려 10년이 지난 2014년, 메인 기획자인 마츠노 야스미가 카오스 프레임을볼 수 있는 숨겨진 커맨드를 공개했습니다. 그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는 제품판에 그대로 들어갈 예정인 요소였지만, 그것만 의식하고 게임을 하는 걸 바라지 않아서 숨기고 삭제하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예 없애는 것보다는 숨겨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커맨드로 부를 수 있게 만들었으나 커맨드가 워낙 어려운 데에다가 적어둔 종이를 잃어버렸으며, 자신이 퀘스트(택틱스 오우거의 개발사)에서 스퀘어에닉스(당시의 스퀘어)로 이직하면서 자료도 두고 나왔어야 했다고 합니다. 

▶ 블록으로 이루어진 맵에 높낮이 개념 등이 도입된 SRPG <택틱스 오우거>
“숨겨진 비기라고 하면, SFC판 택틱스 오우거에는 민족별 카오스 프레임(주인공에 대한 호의를 표시하는 게이지)를 표시하는 ‘숨겨진 커맨드’가 있었는데, 적어둔 메모가 행방불명되어서 재현할 수가 없었다. 미나가와 디렉터(미나가와 히로시)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치트 이외에는 아무도 재현할 수가 없었다”

- 마츠노 야스미(택틱스 오우거 개발자)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정보도 빠르고, 게임 하나의 수명도 짧다 보니 게임 하나의 숨겨진 요소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에는 게임 하나를 사면 적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까지 즐기다 보니 숨겨진 요소들을 굳이 미리 공개할 필요도 없었죠. 그래서 개발자들이 미리 코드를 공개하거나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스터 에그를 직접 찾는 재미가 줄어든 셈이죠. 아예 개발자들이 몰래 퍼뜨리는 일도 있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개발자가 숨겨둔 미션을 5년이 지나도록 못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분명 오아시스는 한국에는 서버를 안 열어주었음이 확실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열었다면 한 달 내에 정복??), 또 한편으로는 택틱스 오우거처럼 개발자도 까먹을 정도의 숨겨진 요소였다면 5년이 아니라 10년도 못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글/ 곰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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