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워쉽 속 강철의 괴물들 – 역사와 함께 한 특별한 군함들

조회수 2017. 5. 31. 16: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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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쉽에 등장하는 역사와 함께 한 특별한 군함들을 소개합니다
워게이밍넷의 ‘월드 오브 워쉽’에는 다양한 국가의 군함이 등장한다. 이 중에는 군함으로서의 성능이 아니라, 20세기 역사에 족적을 남긴 특별한 군함도 있다.

이번 시간에는 20세기 역사와 함께 한 특별한 군함들을 살펴본다.

기구한 운명을 겪은 폴란드 ‘브위스카비차(Błyskawica)’ 구축함 

월드 오브 워쉽에 7티어 프리미엄 함선으로 폴란드의 ‘브위스카비차’ 구축함이 등장한다. 


브위스카비차는 1935년 폴란드 해군이 계획한 ‘그롬(Grom)급 구축함’ 2번함이다. 4.7인치(120mm) 주포 7문을 탑재하고 있으며, 최고 속도는 39노트(72km/h)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가장 빠르고 화력이 강력한 구축함 중 하나였다. 

▲ 북해에서 작전 중인 브위스카비차(Błyskawica) 구축함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폴란드는 다시 한 번 독립을 얻었다. 이 때 폴란드 해군도 함께 창설되었는데, 폴란드 해군의 첫 군함은 6척의 어뢰정이 전부였다.

이후 폴란드는 해군의 현대화 사업에 착수한다. 2척의 순양함과 12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갖추는 야심 찬 계획이었지만, 전 세계적인 대공황이 불어 닥치며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폴란드 해군은 가상 주적인 소련 발틱 함대에 저항해 폴란드 연안을 지키는 소박한 목표로 수정했고, 이를 위해 고속 잠수함과 중무장 구축함의 도입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폴란드인들은 잠수함을 위해 국민 성금까지 모으며 해군의 건설에 나섰다. 부족한 전력은 기뢰 부설 등으로 메꾸기로 했다.


이 목적을 위해 폴란드 해군은 1935년 봄, 영국에 두 척의 신형 구축함을 주문했다. 이것이 바로 그롬급 구축함이다. 1번함 그롬과 2번함 브위스카비차는 1935년 가을 진수되었고, 1937년 취역했다.

앞서 설명했듯 그롬급 구축함은 당대 구축함 중에서는 매우 강력한 화력을 지녔고, 빠른 속도를 자랑했는데, 이는 예산이 한정된 폴란드 해군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 아돌프 히틀러

그러나 갓 태어난 브위스카비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롬과 함께 그녀의 조국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웃 독일이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 체제의 파기와 재무장을 공공연히 부르짖기 시작했다. 유럽을 둘러싼 정세는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본래 폴란드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독일을 포위하는 형국이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건설하기 시작하자 폴란드의 안보상황은 불안해졌다.

폴란드 지도층은 유사시, 특히 독일과의 전쟁에 프랑스가 과연 개입할까 하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런 우려는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정확히 재현된다.)


집권에 막 성공한 히틀러도 장차 프랑스와의 전쟁을 상정하고 있었기에 재무장에 앞서 프랑스와 폴란드를 분열시켜야 했고, 양 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1934년 1월 폴란드와 독일은 향후 5년간의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독일은 영토분쟁이 있던 폴란드의 국경을 인정하기로 했고, 폴란드는 독일의 재무장을 용인하기로 약속했다.
▲ 1934년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 체결 후 바르샤바에서 만난 양측 고위인사들.

1934년 5월, 독일에 이어 소련도 폴란드와 불가침 조약을 갱신했다. 폴란드는 당분간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는 물론 전통적인 적인 독일과 소련과도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시기 폴란드도 미래를 위해 군비를 증강하기 시작했고, 그롬급 구축함도 소수 정예로 ‘가상 적국’ 소련을 저지하기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브위스카비차의 취역 이후 이런 정세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독일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1차대전을 일으킨 프러시아 군인놈들’보다는 ‘오스트리아의 촌뜨기’가 더 나으리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오스트리아의 촌뜨기가 이제 외교적 수완으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히틀러는 이제 공공연히 동방으로의 진출을 들먹거리고 있었다. 그 다음은 폴란드였다. 히틀러는 1938년 가을 폴란드에 단치히(Danzig, 그단스크 Gdańsk)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단치히 자유도시를 독일에 넘겨준다면 폴란드와의 국경을 완전히 확정하겠다는 식이었다. 폴란드는 당연히 거절했고, 히틀러는 1939년 4월 불가침 조약을 파기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1939년 8월 23일에는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은 폴란드에 발틱해에 주둔하고 있던 해군을 도피시킬 것을 권했다. 폴란드 해군이 도저히 독일 해군을 막을 수 없으니 개전하기 전에 영국으로 도피시켰다가 훗날을 도모하라는 권고였다.


압도적인 독일 해군과 폴란드 해군의 전력차를 감안한 폴란드도 이에 동의했고, 개전 직전인 8월 29일 오후 폴란드 해군의 탈출인 ‘페킹(Peking, 지금의 베이징을 뜻한다)’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롬, 브위스카비차, 부르자(Burza) 총 3척의 폴란드 구축함이 영국 에든버러로 향했다. 탈출 도중 독일 경순양함 쾨니히스베르크와 마주치기도 했지만, 개전하기 전이라 무사히 넘어갔다.
▲ 그롬급 구축함 1번함 그롬

예상대로 독일은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개시했고, 폴란드는 5주만에 독일과 소련에 항복했다. 폴란드 침공 기간 동안 남아 있던 나머지 수상함은 모두 격침 당했고, 잠수함 2척은 간신히 살아남아 영국으로 탈출했다.

전쟁을 앞두고 급하게 건조 중이던 ‘차세대’ 그롬 구축함도 그대로 독일에 압류당했다.


조국을 잃은 폴란드 해군의 불행은 계속되었다. 그롬급 구축함 1번함 그롬은 1940년 5월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과정에서 폭격기의 폭격을 받고 59명의 승조원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영국이 대여해 준 구축함 오르칸(Orkan)도 1943년 바렌츠 해에서 유보트에 격침 당했다. 브위스카비차를 비롯해 살아 남은 폴란드 해군은 조국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나치독일과 싸웠다.
▲ 브위스카비차는 끝까지 살아남아 기념함이 되어 지금도 그다니아에서 전시중이다.

브위스카비차와 부르자는 수송선단 호위는 물론,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굵직한 해전에도 참여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그 날 까지 살아남았다.

브위스카비차와 부르자는 해방된 조국 폴란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브위스카비차는 1976년 퇴역해 폴란드 그다니아(Gdynia)에서 기념함이 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월드 오브 워쉽에 등장하는 브위스카비차는 동 티어 구축함과 비교했을 때 주포의 구경 자체는 4.7인치(120mm)로 다소 작은 편이지만, 7문이라는 막강한 포의 숫자로 이를 커버한다.

최고 속도 39노트(72km/h)라는 기동력과 동 티어 구축함 중 가장 높은 체력도 강점이다. 아직 다른 폴란드 함선이 게임에 구현되어 있지 않아 프리미엄 함선의 용도 중 하나인 함장 육성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러시아 역사의 산 증인, ‘오로라(Aurora)’ 순양함 

월드 오브 워쉽에 3티어 소련 프리미어 함선으로 등장하는 ‘오로라’ 순양함은 군함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의 활약보다는 역사의 산 증인으로 명성이 높다. 


러-일전쟁에 참가해 러시아 발틱 함대의 전멸을 목격했고, 러시아 혁명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제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도 살아남아 조국을 지켰다. 

▲ 월드 오브 워쉽에 등장하는 오로라 순양함

오로라 순양함은 1899년, 러시아 제국 해군의 팔라다(Pallada)급 방호 순양함(Protected Cruiser) 3번함으로 취역했다. 취역 직후 오로라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오로라는 취역 초기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수리를 위해 이 곳 저 곳을 전전해야 했다. 1904년 러-일 전쟁이 개전했을 당시 오로라는 아프리카 지부티에 머무르고 있었다.


오로라는 러시아 제국 ‘발틱 함대’와 합류했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전에 참전해 일본 제국 해군과 대결했다. 그러나 이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는 총 21척 이상이 격침 당하며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오로라도 함장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고, 중립국인 미국령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 1903년의 오로라 순양함
▲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를 지휘하고 있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이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는 전멸한다.

필리핀에 억류되어 있던 오로라는 1906년에야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오로라는 연습함으로 러시아 제국 해군 사관 생도들을 태우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오로라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실시하고 현역으로 복귀했다. 152mm 14문 주포로 무장하고 해안 포격과 발트해의 순찰을 담당했다.


1916년 말, 오로라는 다시 대대적인 수리를 위해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항했고 이후 러시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 시기 러시아 제국은 혼란스러웠다.

대외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일 패전하고 있었고, 전선의 병사들과 러시아 국내의 시민들은 물자 부족 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대대적인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과 군은 강경진압을 시도했지만 사병들은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고, 페트로그라드는 해방구가 되었다.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니콜라이 2세가 혁명위원회가 요구한 황제 퇴위에 동의하면서 러시아 제국은 붕괴했다. 이것이 러시아 2월 혁명이다.
페트로그라드에 정박해 있던 오로라의 승무원들도 2월 혁명에 고스란히 휘말렸다. 오로라호의 함장은 강경진압에 나서려 했다가 오로라호의 수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오로라호에는 수병들이 주축이 된 혁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볼셰비키를 지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역사를 바꿔놓는다.


2월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러시아의 정치 상황은 계속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만 내부는 치열한 정치투쟁이 한창이었다.

차르가 벌여 놓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발을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도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아 노동자와 병사들은 계속 고통을 받고 있었다. 10월에 접어들자 불만은 극에 달했고, 볼셰비키는 임시정부 정권을 뒤엎기로 결정한다.
▲ 오로라가 쏜 포탄 한 발이 러시아 역사를 바꿔놓았다.
▲ 임시정부의 거점인 겨울궁전으로 진격하는 볼셰비키

1917년 10월 25일 밤, 오로라호는 공포탄 한 발을 발사했다. 러시아 10월 혁명이다. 이를 신호로 볼셰비키가 ‘겨울궁전’으로 진격해 임시정부를 뒤엎고 인민위원회 수립에 성공했다. 훗날 소련이 되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의 승리로 오로라호는 러시아 역사에 영원히 남았다.


이후 오로라호는 신생 소련 해군의 훈련함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전간기 동안 독일, 스웨덴을 비롯한 해외를 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1년 독-소 전쟁이 발발하며 오로라호는 두 번째의 세계대전을 겪게 된다.

독일군은 이제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뀐 페트로그라드를 포위했다. 오로라호의 함포는 레닌그라드 방어를 위해 철거되어 육지로 보내졌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오로라 순양함의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관광지로 꼽힌다.

함체만 덩그러니 남겨진 오로라는 그대로 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독일군의 포격으로 침몰했다. 그러나 수심이 얕은 곳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고, 고철 비슷한 상태로 물에 반쯤 잠겨 있는 상태로 남아있었다.

오로라의 선체는 레닌그라드 포위가 풀린 후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해군 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은 10월 혁명을 기념 하에 오로라를 레닌그라드에 영구히 남겨두기로 했다. 대대적인 수리를 받은 오로라는 1957년 그대로 해상 박물관이 되었고, 지금까지 그 곳에 남아있다.

소련이 붕괴하자 도시의 이름은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지만 오로라호는 러시아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 수많은 방문객을 맞고 있다.
▲ 월드 오브 워쉽에 등장하는 오로라. 딱 봐도 낡은 디자인이다.

월드 오브 워쉽에 등장하는 오로라는 3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두터운 장갑과 152mm 함포 14문을 장착하고 있다.

그러나 오로라는 현실처럼 게임에서도 일종의 기념함에 가까운 위치다. 애초에 3티어인데다가, 1899년 취역 한 구식함인 만큼 속도부터 19노트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다른 6~8티어 프리미엄 함선도 구입하면 바로 탑승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오로라를 탈 이유는 없다.

역사의 파도에 휘말려 아무 활약도 하지 못한 덩케르크(Dunkerque)급 전함 

제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전함은 중요한 전략병기였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독일 전함 티르피츠의 경우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적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였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 해군이 거의 전멸한 상황에서도 미 해군은 전함 야마토를 잡기 위해 대규모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보내 격침시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덩케르크(Dunkerque)급 전함은 이런 전략병기로 태어났음에도, 불행한 역사에 휘말려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덩케르크급 전함은 그 자체가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기간 동안 겪은 불행과 수난을 상징하는 군함과 마찬가지였다.

▲ 전함 덩케르크

1929년 2월, 독일은 장갑함 ‘도이칠란트’를 진수했다. 장갑함은 베르사유 조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1만톤 배수량을 준수하는 내에서 최대한의 화력을 추구한 독특한 함선이었다.

체급으로 따지면 타국의 중순양함과 비슷했지만, 280mm 3연장포 2기라는 극단적인 화력을 탑재하고 대신 장갑을 포기한 구조였다.


독일이 건조한 장갑함에 가장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곳은 역시 프랑스였다. 비록 장갑함이 베르사유 조약 위반은 아니었지만 (사실은 배수량을 위반하고 있었다)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뻔했기 때문이다.

장갑함의 최대한 경량화 한 선체는 강력한 엔진과 맞물려 최대 19000km라는 엄청난 항속거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독일이 장갑함의 긴 항속거리와 280mm 주포를 이용해 전쟁 상황에서 프랑스 본토와 식민지 보급로를 습격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프랑스는 장갑함에 대항할 새로운 고속전함의 개발을 서둘렀고, 이것이 덩케르크급 전함의 출발이다.

장갑함의 280mm 주포에 대항할 장갑과 화력, 그리고 장갑함의 최대 속도인 48km/h를 능가할 속도가 모두 필요했다.
▲ 독일 장갑함 '그라프 쉬페'

이 시기 프랑스를 포함한 구미 열강은 해군 군비경쟁이 새로운 세계대전의 불씨를 낳을까 우려하고 있고, 1921년 워싱턴 회의에서 주력함 제한에 대해서 이미 합의한 상태였다. 소위 ‘해군의 휴일’이라 불리던 기간이다.

1930년, 런던에서 보조함 등의 추가 군축을 논의하기 위한 해군 군축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등 5개 국가가 참가했다.


런던 해군 군축 회의는 난항을 겪었다. 보조함, 특히 순양함에 걸린 제한에 대해 프랑스는 독일 관련 규정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탈리아도 반대했다. 결국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회의에 불참하고, 1931년 해군 군축에 대해 별도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프랑스는 독일 장갑함을 견제하기 위해 330mm(약 13인치)주포 8문을 장착한 신형전함 ‘덩케르크’를 1932년 진수했다.
▲ 특유의 4연장 주포가 인상적이다

덩케르크급 전함은 철저히 독일 장갑함을 저격하기 위해 태어난 군함이었다. 배수량은 26500톤으로 장갑함의 두 배가 넘었다.

330mm 4연장 주포 2기를 장착해 주포가 앞쪽으로 몰려 있는 독특한 구조였고, 장갑은 독일 장갑함의 280mm에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최고속도는 58km/h로 장갑함보다 약 10km/h 빨랐다.


독일은 프랑스가 덩케르크급을 건조하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중순양함 체급인 장갑함으로는 덩케르크급 전함에 맞설 수 없었다. 히틀러는 1935년 영국과 해군 조약을 체결하고 진짜 전함의 건조에 나섰다.

이것이 지난 시간에 소개했던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 자매다. 하지만 두 독일 전함은 283mm 주포 장착에 그쳤고, 이 정도면 덩케르크급으로도 충분했다.
▲ 이탈리아의 리토리오급 전함 '로마'

덩케르크급에 놀란 나라는 독일만이 아니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도 프랑스의 이 신형전함을 크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381mm 주포 9문을 장착한 35000톤급 리토리오(Littorio)급의 건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프랑스도 곧 380mm 주포를 장착한 35000톤급 신형전함, 리슐리외급의 연구에 들어갔다.


주변 국가를 긴장시킨 덩케르크급이었지만, 실제 활약은 거의 하지 못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에는 보급선단의 호위와 독일 ‘통상파괴전’ 함대(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원양항해에서 덩케르크는 대서양의 악천후로 선체에 손상을 입고 만다.


1940년에는 이탈리아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지중해로 보내 졌다. 덩케르크는 알제리의 메르스엘케비르(Mers-el-Kébir)에 정박했다. 공교롭게도 덩케르크는 이 메르스엘케비르에서 본격적인 실전 전투를 겪게 된다.

덩케르크의 실질적인 첫 전투는 한 때의 동맹이던 영국 해군과 벌어졌다. 1940년 6월 프랑스는 6주만에 독일에 항복했다. 정부는 무너지고 비시 프랑스가 성립되었다.


독일은 프랑스 해군에는 손을 대지 않고 대기 상태로 둘 것을 약속했지만, 영국은 프랑스 해군 군함이 독일 손에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었다.

1940년 7월, 영국은 기동부대를 메르스엘케비르에 파견해 프랑스 함대가 영국에 가담하거나 제3국에서 무장해제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 메르스엘케비르에서 공격 받고 있는 프랑스 함대

메르스엘케비르에 있던 프랑스 해군은 내부적으로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협상 시한을 넘겨버렸고, 대기하던 영국 기동부대가 프랑스 해군을 공격하며 전투가 벌어졌다.

프랑스 해군도 항구에 대기하던 전함과 해안포로 맞섰다. 프랑스 전함 브르타뉴가 침몰했고, 덩케르크는 2번포탑을 상실했다. 전함 프로방스는 화재 때문에 고의로 좌초했다.


덩케르크급 전함 2번함 스트라스부르는 영국 해군의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프랑스 남부의 툴롱으로 도주했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해군 1300명이 목숨을 잃었고, 비시프랑스와 영국은 공식적으로 단교하고 만다.

영국에서 “우리는 더 잃을 친구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때 연합국을 구성했던 두 열강의 씁쓸한 이별이었다.


영국 해군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덩케르크는 임시로 수리를 받은 다음, 자매함 스트라스부르가 있는 툴롱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덩케르크는 툴롱에서 천천히 수리를 받지만, 다시 출동할 일은 없었다.
▲ 1944년 미군의 폭격을 받은 스트라스부르(앞쪽), 뒤쪽에는 순양함이 전복된 채 방치되어 있다

1942년 11월, 연합군이 ‘횃불 작전’을 통해 북아프리카에 상륙했다. 화가 난 히틀러는 이탈리아와 연합해 비시 프랑스의 남은 영역을 모두 점령해 버리라고 지시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독일은 프랑스 함대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 때문에 영국이 그렇게 우려하던 ‘독일의 프랑스 함대 접수’가 벌어질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프랑스 해군의 자존심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1942년 11월 27일, 툴롱에 남아 있던 덩케르크와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군에 접수되기 전 자침했다.

이후 이탈리아가 스트라스부르의 선체를 잠깐 인양했지만, 손상이 심해 그대로 방치되다가 1944년 미군의 폭격으로 다시 침몰했다. 덩케르크와 스트라스부르의 남아 있던 선체는 1950년대에 고철로 처리되었다.


역사의 파도에 휘말린 덩케르크급은 아무 활약도 하지 못했다. 덩케르크급의 사실상 유일한 활약은 전략병기로서 독일을 자극해 없는 살림을 짜내 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건조하도록 강요한 것뿐이다.

이후 프랑스의 무력함으로 덩케르크는 아무 활약도 해보지 못하고 비참한 운명을 맞고 말았다.
월드 오브 워쉽에 덩케르크급 전함은 프랑스 6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최고속도 29.5노트(54km/h)의 고속전함으로 모든 6티어 전함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또한, 전면에 330mm 4연장 포탑 2기가 배치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화력을 집중하기 좋다. 대신 주포탑이 2기밖에 없기 때문에, 포탑 손상이 오면 전투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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