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탈리아 캐비닛에서 불어온 브리티시 사운드 - Falcon비닛에서 불어온 브리티시 사운드 - Falcon Acoustics RAM Studio 30 스피커

조회수 2021. 3. 10. 12: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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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국경없는 시대에 ‘이탈리아 캐비닛’은 뭐고, ‘브리티시 사운드’가 웬 말이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필자 역시 브리티시 사운드, 아메리칸 사운드, 이런 얘기는 구시대 오디오 평론의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는 차라리 실연에 근접한 하이파이 사운드, 실연에 훨씬 못미친 로우파이 사운드, 실연 또는 실연 이상의 하이엔드 사운드, 이런 구분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 브랜드는 어쩔 수 없이 그 국적이나 사운드의 기풍 같은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이번 시청기인 팔콘 어쿠스틱스(Falcon Acoustics)의 RAM Studio 30 스피커가 꼭 그렇다. 가죽 배플과 교체 가능한 측면 배플 등 겉모습은 분명 이탈리아 스피커 스타일인데, 돔 타입 미드를 투입한 유닛 구성이나 푸근하고 편안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소리는 역시나 영국 스피커였던 것이다.


팔콘 어쿠스틱스와 말콤 존스, KEF, BBC LS3/5a, RAM

▲ Falcon Acoustics의 설립자 말콤 존스(사진 가운데)

팔콘 어쿠스틱스는 스피커 엔지니어 말콤 존스(Malcolm Jones)가 1972년 영국 서식스주 벡스힐에 설립했다. 말콤 존스는 1961년부터 KEF에서 ‘KEF 1호 직원’으로 일하며 그 유명한 BBC LS3/5a 유닛들을 설계했다. LS3/5a 스피커에 투입된 19mm SP1032 마일라 돔 트위터와 110mm SP1003 벡스트렌 콘 미드우퍼가 바로 그것이다.

▲ Falcon Acoustics LS3/5a

 팔콘 어쿠스틱스가 2014년에 “오리지널 LS3/5a에 가장 근접한 모니터 스피커”라며 오리지널 LS3/5a와 동일한 공칭 임피던스 15옴짜리 LS3/5a를 내놓은 배경이다. 이 스피커는 말콤 존스가 유닛부터 크로스오버(FL6/23 필터 네트워크), 심지어 트위터 그릴과 코팅 재료, 사각 펠트, 벨크로 디자인까지 당시 KEF 및 BBC 스펙에 맞춰 설계했다.


이처럼 일반 유저들에게는 LS3/5a 스피커로 알려진 팔콘 어쿠스틱스이지만, 처음 출발은 스피커 DIY 제작자들을 위한 유닛이나 네트워크 회로 부품들을 판매하는 회사였다. 특히 이들이 직접 개발한 페라이트 코어 코일은 한때 영국 스피커 제작자들의 3분2가 사용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팔콘 어쿠스틱스는 지금도 별도 직판 사이트를 통해 덴마크 SB어쿠스틱스(SB Acoustics)나 영국 볼트(Volt) 유닛 등을 판매하는 영국 디스트리뷰터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팔콘 어쿠스틱스가 1974년부터 밀접하게 지내온 또다른 영국 스피커 제작사가 있다. 바로 이 해에 팔콘 어쿠스틱스 인근 노리치에 설립된 RAM 일렉트로닉스(Reflex Acoustic Monitors Electronics)다. 열혈 오디오 애호가인 빈스 제닝스(Vince Jennings)가 설립한 RAM 일렉트로닉스는 자신들의 네트워크 회로를 말콤 존스에게 맡겼을 정도로 팔콘 어쿠스틱스와 가깝게 지냈다.


말콤 존스와 빈스 제닝스의 인연은 이 뿐만이 아니다. RAM 일렉트로닉스가 1979년에 BBC 라이엔스를 받고 LS3/5a 스피커를 제작했는데, 이때 말콤 존스가 개발에 참여했다. 이 스피커는 RAM 일렉트로닉스가 사업을 접은 1983년까지 수백조가 생산됐다. 참고로, LS3/5a 스피커를 제작할 수 있는 BBC 라이센스는 동시기 평균 3곳에만 주어지는데 당시 차트웰(Chartwell)이 라이센스를 반납하자 RAM 일렉트로닉스가 이를 곧바로 취득하게 된 배경이 있다. 팔콘 어쿠스틱스는 2011년에 RAM 일렉트로닉스 브랜드를 인수했다. 

 팔콘 어쿠스틱스의 RAM Studio 시리즈는 RAM 일렉트로닉스 인수 후 처음 내놓은 결과물. 알파벳 R 2개를 형상화한 RAM 일렉트로닉스 스피커의 로고가 RAM 스튜디오 시리즈에도 훈장처럼 박혔다. 플로어스탠딩 Studio 30과 스탠드마운트 Studio 20, Studio 10으로 짜였는데, 실제 설계를 프로악(ProAc) 출신의 그래엄 브리지스(Graeme Bridges)가 맡은 점이 흥미롭다. 한마디로 RAM 시리즈와 연관된 3개의 브랜드, 3명의 엔지니어가 모두 영국산인 셈이다.


한편 말콤 존스는 2009년 회사 경영권을 제리 블룸필드(Jerry Bloomfield)에게 넘기고 현재 팔콘 어쿠스틱스의 기술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RAM Studio 30 본격 탐구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실물을 처음 접한 RAM Studio 30은 전면과 후면, 상판에 검은색 가죽을 두른 위풍 당당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였다. 얇은 무늬목으로 이뤄진 양 측면 패널을 월넛, 버 월넛 등에서 고를 수 있다. 가죽 마감과 측면 패널 교체는 다분히 이탈리아 소너스 파베르 스피커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RAM 시리즈의 인클로저는 전량 이탈리아에서 제작된다.


RAM Studio 30은 기본적으로 3웨이, 4유닛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이며 베이스 리플레스 포트는 인클로저 밑바닥에 큼지막하게 나있다. 스테인레스 스틸 플린스에 달린 4점 지지 스파이크로 이격된 바닥을 향해 우퍼 유닛 후면파를 방사하는 다운파이어링 구조인 것이다. 스피커케이블 연결을 위한 니켈 도금 싱글 바인딩포스트는 두께 2mm의 알루미늄 패널에 장착됐다. 

 유닛은 위부터 1인치(25mm) 소프트 돔 트위터, 2인치(50mm) 소프트 돔 미드레인지, 6인치(170mm) 폴리프로필렌 콘 우퍼 2발로 구성됐다. 흔히 스쿼커(squawker)라고 불리는 돔 타입 미드레인지 유닛을 3웨이에 투입하는 것은 사람 목소리가 포진한 중역대를 중시하겠다는 뜻으로, PMC나 ATC가 상급기에서 즐겨 사용하는 유닛 배치다. 이 또한 영국 스타일인 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트위터 위치가 오프셋(offset)이라는 것. 즉, 트위터 중심축이 다른 유닛들의 중심축과 어긋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오프셋 설계는 배플로 인한 회절(diffraction) 왜곡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프로악 스피커 등이 즐겨 구사하고 있다. 오프셋 트위터는 스탠드마운트 Studio 20 모델에도 채택됐다.


스펙을 보면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89dB, 주파수응답특성은 20Hz~35kHz를 보인다. 몇 dB 기준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파수응답특성이 믿기지 않을 만큼 광대역하다. 인클로저 재질은 MDF이며, 유닛이 장착되는 전면은 보다 두꺼운 24mm, 다른 면은 18mm를 보인다. 높이는 1100mm, 가로폭은 215mm, 안길이는 300mm, 무게는 35kg이다.


한편 스탠드마운트 2개 모델을 잠깐 짚고 넘어가면, Studio 20은 6.5인치 미드우퍼, Studio 10은 5인치 미드우퍼를 채택했다. 트위터는 모두 1인치 소프트 돔 타입이며, 위에서 언급했든 Studio 20은 오프셋 배치다. 주파수응답특성은 Studio 20이 30Hz~35kHz, Studio 10이 35Hz~35kHz를 보인다. 공칭 임피던스는 모두 8옴이며, 감도는 각각 88dB, 89dB를 보인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세 모델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


시청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오렌더의 A30, 인티앰프로 유니슨리서치의 Unico 150을 동원했다. 유니코 150은 8옴에서 150W, 4옴에서 220W를 내는 하이브리드(입력단 및 드라이브단 진공관, 출력단 트랜지스터) 인티앰프다. 음원은 오렌더 앱을 통해 주로 타이달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Keith Jarrett ‘Mandala’(My Song)

오프셋 트위터 스피커를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무대 펼침이라든가 악기들이 입체적으로 배치되는 모습은 온셋 트위터 스피커와는 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다. 현재 RAM 스튜디오 30은 오프셋 트위터가 안쪽을 향하도록 배치한 상태. 이 경우 사운드스테이지는 다소 좁아지지만 음상은 보다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다. 일단 사운드의 첫인상은 해상력을 담보하면서도 편안하다는 것인데, 이는 소프트 돔 타입의 트위터와 스쿼커 덕분으로 보인다. 6인치 폴리프로필렌 우퍼 2발은 저역의 압력을 과하지 않게 전해준다. 전체적으로 음수가 풍성하고 누긋한 타입이지만 결코 느릿하거나 눅눅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스피커다.

Collegium Vocale ‘Cum Sancto Spiritu’(Bach Mass in B minor)

다이애나 크롤의 ‘Desperado’에서는 목소리가 약간 굵다고 느껴질 정도로 중역대가 두툼하게 나왔다. 온기감도 상당한 편. 보컬과 피아노 반주와의 레이어도 잘 느껴진다. 하여간 야윈 음을 내는 스피커가 있다면 RAM 스튜디오 30은 그와 가장 먼 대척점에 있는 스피커다. 따라서 앰프는 댐핑이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바흐 미사곡에서는 이 스피커의 새로운 면모를 봤는데, 그것은 입자감이 곱고 나오는 음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무대도 가죽을 아낌없이 투입한 외관과는 다르게 제법 투명하다. 결국 모나거나 튀지 않는 수더분한 음을 내주면서도 SN비와 해상력 등 현대 스피커가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춘 스피커라 할 수 있다.

Rage Against The Machine ‘Take The Power Back’(RATM)

드럼이 주도하는 저역은 탄력적이며 타격감이 있다. 물컹한 저역은 절대 아니다. 밴드 보컬의 발음은 리퀴드하고 대충 물타기 하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드럼 심벌즈가 내는 금속성 사운드 역시 잘 들리는 것을 보면, 역시 스쿼커를 포함해 4개 유닛이나 투입한 이유가 분명하다. 스피드도 좋다. 하지만 램 오브 갓의 ‘Ashes of the Wake’를 들어보면 저역이 돌덩이처럼 아주 단단하거나 쓰나미처럼 파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다. 인클로저에서도 약간의 공진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곡이 끝날 때까지 혼탁해지거나 폼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50년을 넘긴 팔콘 어쿠스틱스의 저력이나 프로악 출신 엔지니어의 기예는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4악장 초반 팀파니 연타가 선명하다. 역시 첫인상 때와 마찬가지로 RAM 스튜디오 30 스피커는 해상력과 분해능, 타격감 같은 덕목에서도 어디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사실, 클래식 대편성곡을 이 정도로 소화해내면 게임은 끝났다. 2인치 소프트 돔 미드를 투입한 이유, 6인치 우퍼를 2발이나 슨 이유일 것이다. 물론 3000만원대 이상의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전하는 실연 같은 음까지는 아니지만 재생음의 완성도는 이 가격대에서도 톱 클래스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사운드스테이지가 넓은 것은 역시 오프셋 트위터의 특권. 웬만한 소형 스피커라면 자지러지기 십상인 3분15초 무렵의 총주도 매끄럽게 소화했다.


총평

지난 2018년에 팔콘 어쿠스틱스의 LS3/5a 스피커를 리뷰한 적이 있다. 당시 미세한 뉘앙스 표현이라든가, 부족함을 못느낀 저역의 양과 질에서 밀폐형 모니터 스피커의 매력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차이가 많다. RAM 스튜디오 30은 우선 가죽 배플을 두르고 측면을 무늬목으로 마감함으로써 비주얼적인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굳이 이탈리아에서 인클로저를 제작한 큰 이유일 것이다.


RAM 스튜디오 30은 또한 클래식 대편성에서 3웨이, 4유닛 스피커의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 워낙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은 장르인 만큼 광대역의 스피커가 유리한데, 이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2웨이보다는 3웨이가 정답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드레인지 유닛의 직경을 2인치로 한정하고 콘이 아니라 돔 타입을 취한 것은 그만큼 중고역대의 질감을 살리겠다는 의도다. 멋진 이탈리아 캐비닛에서 불어온 두툼한 브리티시 사운드에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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