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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속에서 날아오는 날치를 보는 듯

조회수 2021. 1. 7. 10: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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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tax Monitor PWR 1959 스피커

패스트 패션 엘탁스

엘탁스 제품을 마주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 - 브랜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랜 동안, 꽤 여러 번 엘탁스 제품과 마주쳐왔지만 한 번도 같은 디자인, 어떤 전형적인 엘탁스 스타일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때 그때 다르다. 그래서 필자는 엘탁스의 디자인을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최신의 트렌드를 따라 제작된 그런 패스트 패션이 아니고 제품 사이클을 길게 잡지 않는 인스턴트식 디자인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엘탁스는 제품이 눈에 뜨였을 때 사지 않으면 다시는 같은 제품을 못 구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엘탁스의 사운드이다. 스쳐가듯 출몰하는 이 회사의 제품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시청해본 오디오파일이라면 쉽게 그 사운드에 끌렸던 기억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외모가 크게 어필한다거나 고급스러운 시그너춰로 눈길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서 일단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사운드지표적 완성도가 높으며 시청자를 음악 본연의 세계로 쉽게 끌어들인다. 천연덕스럽고 명쾌하며 음악적 뉘앙스 표현에 능한 60년 전통의 덴마크 브랜드이다. 얼마전 프랑스의 AV 인더스트리 그룹에 흡수되어 엘립송, 탄젠트 등의 브랜드와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사실 이 때부터 뭔가 엘탁스 스타일을 갖추려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었는데 2020년 말이 되어 이번엔 별안간 대형 박스형 클래식 디자인의 PWR 1959 가 나타났다.


의미심장한 이름 PWR 1959

본 제품의 정확한 명칭은 엘탁스 모니터 PWR 1959 이다. PWR이 무슨 이니셜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고 1959는 엘탁스를 설립한 해이다. 작년에 60주년을 맞이했던 엘탁스의 출범 원년을 기념하고 있어 보인다. 제품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3웨이 4유닛이다. 하단의 스트랩을 당겨 대형 더스트 그릴을 벗기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푸짐하다. 하단에 베이스 유닛과 상단에 미드레인지를 두고 그 사이에 트위터를 둔, 마치 90년대의 명기 스펜더의 S100을 보고 있는 듯한 레이아웃이다.

본 제품을 대면하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사실상 제품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15인치 대구경 우퍼이다. 전체 디자인도 그렇고 시청을 하기 전까지는 양감을 앞세운 제품일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다. 설계상의 이유와 재질에 따른 디자인이겠지만 이 넓은 콘의 디자인이 심심할 정도로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다. 이 콘의 재질은 셀룰로스, 그러니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마스크팩 소재와 같은 고분자 섬유사로 제작되었다. 성형과 효과에 유리해서 대구경 우퍼에 종종 쓰이는 펄프에 비해서 얇게 제작할 수 있어서 가볍고 밀도가 높아 단단한 소재이다.

6.2인치 구경의 미드레인지 또한 우퍼와 동일한 셀룰로스로 제작되었는데 미드레인지에는 오히려 외곽으로 가면서 주름을 주어 제작되어 있다. 시청을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대구경 우퍼와 트윈 트위터를 사용한 본 제품에서 미드레인지가 전체 대역에서 묻히지 않도록 상당히 배려가 되어있다. 이에 따라 미드레인지 유닛은 별도의 인클로저를 두어 독립시켜놓았다. 박스형 캐비닛 구조에 대구경 우퍼의 리플랙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미드레인지의 정동작을 위한 배려로 보인다.

다른 스피커에서 찾아보기 힘든, 본 제품의 가장 독특한 설계는 동일한 트위터를 가로로 두 개를 배치한 트윈 트위터 구성이라는 점이다. 프론트 배플 하단의 덕트와 거의 수평으로 동일하게 상단에 배치한 또 다른 두 개의 홀을 보고 순간 덕트가 4개인가 의아하게 만들었을 만큼 독특한 구성이다. 1인치 구경의 본 트위터는 중앙에 페이즈 플러그를 배치한 구조로 되어있어서 완전개방형의 컴프레션 혼 등과는 음압이나 질감 표현이 많이 다르다. 다만 시청 이전에 필자가 의아했던 건 이렇게 트위터를 수평으로 두 개를 두면 어떻게 들릴까 싶은 거였는데 일체감이나 전체 대역에서 뭔가 특이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 페이즈 플러그를 두어 가늘어진 고역에 대한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한 방식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바인딩 포스트는 싱글와이어링용 한 조 구성이며 인클로저는 반듯한 육면체 월넛 비니어 마감이다. 제품의 칼라나 마감에서 독특한 뭔가를 굳이 두지 않으려 한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역시 필자가 느끼는 엘탁스이다. 시청을 하면서 알게되었지만 본 제품은 이 평범한 이면에 브레이싱을 꽤나 단단히 받쳐서 설계했다. 15인치 우퍼에서 외곽도 짐작되지 않는 대책없는 베이스를 들으라고 만든 스피커가 아니다.

본 제품의 대역은 30Hz-22kHz - 상당히 넓은 편이다. 대구경 우퍼라서 보장되는 영역이 아니고 베이스의 품질까지도 뛰어나게 제작되었다는 의미이다. 96dB의 능률도 녹녹한 편이라서 스피커가 비교적 쉽게 움직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품질이 다 드러난다는 의미는 아니라서 주변기기 특히 앰프의 선정에 따라서 다양한 품질의 사운드를 들려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소리를 내주는 지 들어보기로 하자.


사운드 품질

설마했는데 정말 멋진 소리가 울려나온다. 전술한 이유로 필자가 엘탁스 제품을 시청할 때는 묘한 기대감이 흐르고 있다. 필자가 아는 전형적인 풀바디 사운드 - 부스팅이 거의 없다는 게 놀라운 기본적으로 15인치 베이스에서 울려오는 중후한 저음이 스피커로부터 멀어졌다 해서 서로를 놓치지 않고 탄력있게 결합되어 있다. 흔한 정체성 없는 저가 스피커의 실종된 품격이 아니다. 엘탁스가 그럴 리가 없지만 PWR 1959 또한 음악이 어떻게 들려야 하는 지 알고 만든 제품이다. 가격의 타협을 하는 과정에서 음악성을 내던지지 않았다. 응집력 있는 고탄력 베이스, 현악합주의 질감과 분해력도 짙은 감성으로 호소한다. 뭉치거나 날리지 않는다. 간혹, 트윈으로 구성한 높은 대역의 에너지가 가늘면서도 뾰족하게 날아오곤 한다. 왜곡이 생기는 일이 없어서 거칠어지거나 귀를 아프게 하지는 않지만, 베이스나 미드레인지와 다소 위화감이 있을 때가 있다. 마치 짙은 물 속에서 뛰어올라 반듯이 날아오는 입이 뾰족한 물고기를 보고 있는 듯 하다.

Alan Parsons Project - The Turn of a Friendly Card pt.1

하지만 그런 것을 의식하기 이전에, 낮은 중역대 - 우리가 아는 저음이 두터운 인클로저로 만든 제품처럼 - 가 단단한 밀도감으로 전해오는 감동이 크다. 높은 대역에서의 선명한 반짝임이 전면에 나서는, 이 대역에서의 다이나믹스 하나만으로도 이 스피커에 쉽게 매료될 것으로 보인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The Turn of a Friendly Card pt.1’ 도입부의 건반 연주는 실로 멋지게 반짝인다. 잠시 빠져들어 있는 동안, 이어서 섬세하고 심금을 울리는 에릭 울프슨의 보컬이 흘러들어온다. 특히 이 곡에서의 느낌은 특별했다. 처음에 제품을 너무 얕보아서였을까? 대체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올까 싶을 만큼 그랬으니까. 베이스 드럼의 임팩트있는 펀치감은 페이퍼 콘의 터치에 밀도감이 강화된 소리다. 최근의 고분자나 비싼 특수재질에 비하면 음의 마감이 살짝 둔탁한 듯 하지만 크게 의식되는 수준은 아니다.

Sarah Mclaclan - Angel

전술했듯이 본 제품의 미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특성은 역시 포만감있는 베이스에 있다. 적당히 번져도 양감을 채우는 맛으로 듣는 저역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이면서도 공간을 가득 채워주는 일급의 베이스가 나온다. 사라 맥라클란의 ‘Angel’도 유사한 대역 구성과 패턴을 보인다. 도입부 건반과 베이스의 매우 듣기 좋은 포만감을 배경으로 컴팩트한 음상이 선명하게 뻗어올라온다. 두 대역이 서로 일체감있게 결합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대역간의 위화감은 없다. 듣기좋은 이 곡의 순간이다. 베이스에 묻히거나 뒤섞이지 않는 보컬이 기특하고 신기한 광경이다. 우퍼 구경이 크다고 해서 이 음악이 이렇게 들리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Dua Lipa - Break My Heart

비트를 조금 빨리 해보면 두아 리파의 ‘Break My Heart’ 의 베이스 또한 응집력 있고 동작이 분명한 풋웍이 좋다. 굼뜨지 않는다. 다만 양감이 많을 뿐이다. 넓은 공간일수록 이 밸런스는 좀더 효과적일 듯 하다. 호쾌하고 파워풀한 포만감이다. 높은 대역과의 배합이 듣기에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부스팅이 넘치는 어이없는 박스형 스피커와는 차원이 다르다.

Rene Jacobs - Bach Motet 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

전 대역에서 손색없는 해상도를 보인다. 악기수가 많고 성부가 여럿인 코러스를 들어봐도 혼탁해지는 순간이나 부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르네 야콥스가 RIAS 캄머콰이어를 지위한 바하의 모텟 첫 곡 ‘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를 들어보면 섬세하고 감촉이 좋은 이 곡 특유의 입자감을 선열하게 느껴지게 해줘서 좋다. 파트별로 개별적인 앰비언스가 만들어지면서 아름다운 음색으로 낱낱이 코러스를 들려준다. 스테이징의 묘사가 다소 덜 분명하긴 해서 입체적으로 피어오르는 묘사는 다소 평면적이지만 모호한 부분이란 거의 없다. 스테이징이 뛰어난 스피커들에 비하면 다소 평면적이라는 게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Mariss Jansons - Brahms Symphony No.1

마리스 얀손스가 바이에른 방송관현악단을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의 현악합주는 정말 멋진 중후함을 들려준다. 섬세하고 보풀거리는 질감의 감촉이 좋기도 하지만 해상도가 어떻고 실제 연주와의 싱크로율 이런 게 하나도 의식되지 않는 감성이 있다. 여기에 더해 이 곡에 잘 어울리는 품위와 감성을 들려준다. 감미롭고 정감어린 호소력으로 섬세한 현악합주와 반짝이는 관악합주를 들려준다. 베이스가 엉키거나 모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이 부문의 최고라 할 수 있는 탄노이가 부럽지 않다. 다만 트윈 트위터의 영향으로 보이는 바, 음상이 평소 듣던 스피커들에서보다 다소 특이하게 맺힌다.

제품의 시청은 오렌더의 A30과 빈센트의 SV237mk2 로 진행했는데, 이 스피커에는 아주 적절한 조합으로 생각된다. 본 제품을 구매해서 좀더 발전을 시켜본다면 앰프는 진공관일 수록 좀더 좋은 퍼포먼스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강성으로 드라이브를 할 필요도 없어 보이며, 출력을 높여서 상위 대역에 에너지를 강화시키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미드레인지를 좀더 적극적으로 들려주게 하고 높은 대역은 두터움을 줄 수록 좋을 듯 하다.


그리 큰 용기가 필요없는 안정감

본 제품의 소비자 가격은 150만원 남짓 정도이다. 기적같은 스피커는 아니지만, 참 재밌는 스피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제품을 시청하고 나니 다른 스피커들의 가격들이 다소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너희들은 얘보다 뭐가 그리 열 배, 백 배가 나은 것이냐? 라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수 백의 브랜드 중에서 그리고 자사의 제품들 중에서 그 다음을 만들다보니 비용이 들어가고 새로운 시도가 투입되고 해서 만들언낸 가격들이지, 음악을 들려주는 가격은 그 중에서 얼마만큼인지 스스로 한 번 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엘탁스 스피커는 다른 계절에는 어떨까 싶지만, 밖에 한설이 휘몰아치고 강이 얼어붙는 한겨울에 벽난로를 바라보며 베토벤과 브람스를 듣는 행복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제품이다. 푸짐한 사이즈가 그렇고 듣는 이의 감성을 채워주는 음악성이 그렇다. 트윈 트위터가 다소 특이하긴 하지만, 그 또한 덤덤하고 롤오프로 사라지는 끝을 보이는 고전적인 박스형 스피커보다는 생기가 있어서 좋다. 굳이 가격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면,이 스피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얘기가 될 것이다. 가격을 의식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훌륭한 엘탁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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